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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크시론

더욱 치열해져야 할 삶 그리고 신앙

[유크시론 161호] 발행인 이창배 목사

차갑게 움츠려들었던 겨울, 마치 죽음과도 같이 모든 만물이 숨죽인 겨울을 넘어 봄이 이르는 길은 그야말로 치열한 투쟁의 현주소이듯 진정한 봄은 그렇게 우리에게 어느날 올 것이다.

부푼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이 지나고 2월의 시작이다. 시작되는 첫달은 한해 어떻게 살까를 내심 다지는 그런 시간이었다면, 이제 2월은 1년이란 전체 그림 가운데 그 첫 실행의 출발이란 위로를  나누면 어떨까?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2월이 오면 아직은 성급하지만 곧 새 봄이 곧 시작되리란 기대감이 마음에 싹이 움튼다. 꽁꽁 얼어붙은 대지에 싹이 움트는 것보다 훨씬 먼저 내 마음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독일의 시인 헤르만 헤세의 시, <봄의 목소리> 가 생각난다.
어느 소년 소녀들이나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것을.
살아라. 뻗어라. 피어라. 바라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삶을 두려워 말라.

소설 <데미안>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 이름이 낯이 익은 작가 헤르만 헤세의 시어 가운데“살아라. 뻗어라. 피어라. 바라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삶을 두려워 말라.” 짧고, 인상적인 단어들의 나열만으로도 봄의 메시지가 들려진다.

그 동안 축축하면서 음산한 독일의 겨울, 햇빛을 본지가 그 언제인지조차 가물거리는 우울한 겨울의 삭막한 분위기를 견디어 낸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픈 심정이다. 비단 사람에게만이 아니겠다. 봄을 바라는 모든 동식물에게는 겨울을 벗어던지고픈 몸부림이 있을 터, 이 치열한  생명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던 헤세의 시어는 내 마음을 고스란이 표현해 주는 것만 같아서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 자체로 수동적이 아니라 생명의 에너지를 뻗어낸다.

그렇다.“몸을 던져 삶을 두려워 말라…” 멋진 표현이다. 봄을 기대하기에 앞서서 먼저 행복이란, 아름다움이란, 천국이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란 말씀이 새록 떠오른다. 자신이 바라는 것들 앞에 서있는 그 어떤 장애물을 향한 도전과 맞서 싸울 용기와 신념이 없다면, 그것을 성취할 자격이 없다할 수 있다.

천국을 침노하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는 난해한 성경구절로 유명하다. 개역성경은 “침노”라고 하였고, 공동번역은 “폭행”이라는 단어로 번역하였고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Violence”(폭력)로, NIV 영어성경은 advancing(진입, 전진)으로 표기했다. 그런데 이 비슷한 성경구절이 누가복음16:16에 나옴으로 그 구절의 의미를 비교 해 볼 수 있다.“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16)는 말씀으로 내용을 보면, 세례요한의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선민이었고 그들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졌다. 그 말씀은 곧 메시아의 등장과 함께 이뤄지게될 하나님의 나라였음을 뜻한다. 하지만 세례요한 이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리게 된 천국은 유대인들의 유전과 전통과 같은 인간적 형식과 의식의 틀을 깨트리는 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자, 열렬한 믿음으로 천국을 소망하는 자들이 천국을 취할 수 있는 자들이란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천국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된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천국은 세상에 드러난 복음으로 말미암아 죄와 속세와 유전과 마귀의 권세와 싸워서 이기는 자들의 소유가 되며, 역동적인(dynamic) 믿음으로 고난과 핍박을 이겨가는 자들의 것, 몸을 던져 삶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의 소유가 된다고 선언한 것이다.

마치 차갑게 움츠려들었던 겨울, 마치 죽음과도 같이 모든 만물이 숨죽인 겨울을 넘어 봄이 이르는 길은 그야말로 치열한 투쟁의 현주소이듯 진정한 봄은 그렇게 우리에게 어느날 올 것이다. 찬란한 봄날이 이뤄지는 순간에, 막혔던 숨이 탁 트이는 것 같은 환희가 울려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한 생존의 몸부림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봄날은 감동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 의미가 되리란 점을 잊지 말라.

그렇듯이 우리가 믿고 바라는 천국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이뤄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아직 남은 시간에 우리 디아스포라의 삶이 더욱 치열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 치열해져야 할 신앙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은 편의주의가 팽배해 있음을 본다. 몇년 전에 하버드 대학 종교학 교수인 하비 콕스가 쓴‘종교의 미래(the Future of Faith)’라는 책에서 살펴보면, 다가올 미래 종교의 영적 세계의 모습을 특징 짓는 세 가지의 변화로 규정하고 있는데, 첫째, 전지구상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예상을 뛰어넘는 종교의 부흥, 둘째, 20세기의 해악인 근본주의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셋째, 종교의 근본적 성격을 두고 일어나는 심원한 변화라고 지목을 하고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서구유럽사회가 종교가 부흥될 것이란 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것이고, 특히 첨단과학시대에 종교는 곧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해 온 학설들의 저변에는 과학의 발달, 문자 해독의 확산, 교육의 확대 등이 일종의 종교를 매개로 하는 미신과 미개함을 타파하거나 추방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수많은 데이터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미래의 종교 전망에 대해서 완전히 사라지거나, 가족들 안에서 소규모의 제사적 형태로, 민속 축제로 용해되어서 문학, 예술, 음악에 스며든 채 흔적만 남기게 될 것이란 전망이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오히려 종교는 온 세상에 지금 활력을 과시하며, 심지어는 폭력을 과시하면서까지 오늘날 온세상을 들끓게 만들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하비콕스는 분명하게 지적하기를 여기에는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순절적 신앙의 부흥을 언급하고 있다. 마치 예수님의 시대, 변방 갈릴리에서 일어났던 부흥처럼, 전통과 정통을 뛰어넘는 새로운 성령의 시대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던지, 못 느끼던지, 그런 변화는 이미 시작이 됐다. 이러한 중요한 때를 맞이하여야 한다. 우리 한인디아스포라들이 여기에서 뒤쳐지면 안 될 이유인 것이다. 우리 교회들이 분발하고 분투해야 할 때이다.

이달의 말씀 : 마태복음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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