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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테오도시우스(Flavius Theodosius 347-395)

[로마칼럼]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기독교에 호의적인 황제들 – 3회 >

테오도시우스(Flavius Theodosius 347-395) 그는 스페인에서 출생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80년에 니케아 신경(아버지와 아들은 동질)을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았다. 그는 병에서 회복되자 니케아 신경을 따라야 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성부성자 성령을 믿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 인정되었다.

테오도시우스! 그는 스페인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후에 장군이 된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였다. 부모는 조부모 때부터 기독교를 믿은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당시 유능한 로마 제국의 장군으로 368년 브리타니아에서 일어난 야만족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했는데 그 당시 테오도시우스는 아버지를 따라 복무했다. 아버지는 뛰어난 장군이었으나 음모로 인해 죽임을 당했고 그 일로 큰 충격을 받은 아들 테오도시우스는 공직을 떠나 히스파니아의 가문의 영지로 은퇴해 버렸다. 그 후 동로마 제국의 발렌스가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고트족에게 대 참패를 당하고 전사한 후에 서 로마 황제인 그라티아누스가 히스파니아에 은거하고 있는 그를 불러들여 발칸 반도를 맡겼다.
그는 후에 서방황제로 추대된 유게니우스와의 전쟁을 치르는 상황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종교적인 문제였는데 유게니우스는 기독교인이었으나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로마의 전통 종교에 대한 관용을 보임으로 지지의 기반을 넓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7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잘못된 교리를 좇는 무리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 강하게 불신한 테오도시우스는 로마 화 된 고트족 병사들을 이끌고 유게니우스를 상대하려고 일어섰다.
그는 서고트족의 지도자 알라리크를 수하에 두었고 반달족 출신의 로마 군단장 스틸리코도 함께 했다.
처음 전투에서는 패했으나 다음 날 전세가 호전되어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이 승리로 인해 테오도시우스는 로마 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되어 동방과 사방을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승리로 인해 그가 원하던 정통 신앙을 파수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비기독교 신앙을 깨끗하게 단절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콘스탄틴 대제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379년 테오도시우스가 통치하던 제국 내에 기독교인들끼리 적대관계가 대단했다.
니케아 신경을 옹호(아버지와 아들이 본질상 동질이다)하는 사람들과 아리우스(아버지와 아들이 본질상 다르다)를 좇는 무리들 간의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교리 문제 때문이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80년에 니케아 신경(아버지와 아들은 동질)을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았다. 그는 병에서 회복되자 니케아 신경을 따라야 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성부성자 성령을 믿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 인정되었다.
이듬해에 열린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주교 150명이 모여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확정했고 아리우스파는 모든 도시에서 집회를 금지 당하게 되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385년부터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금했고 391년부터는 로마와 이집트에서 일체의 비기독교 의식을 금지하고 공적이든 사적이든 모든 형태의 이교 숭배를 로마 제국의 전역에서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의 헌신으로 기독교의 바른 교리가 자리 잡게 되었다.
그는 생애 말년에 데살로니카에서 로마군 수비대장 한명이 주민들에게 살해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밀라노에 있던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철저히 응징하도록 명령했다. 이 명령으로 주민 7천명이 학살을 당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당시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의 이런 무자비한 행동을 크게 책망했다.
그리고 왕에게 성찬을 금지했을 뿐 아니라 교회에 들오지 못하게 했다.
황제는 결국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맨 머리에 베옷을 입고 밀라노 교회로 가서 용서를 구했다. 황제는 부활절에서부터 성탄절까지 교회의 출입이 허가되지 않았고 성탄절이 되어서야 겨우 암브로시우스의 용서를 받고 성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당시의 가장 탁월한 황제로 로마제국을 통일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대 제국의 일인자가 일개 주교의 회개의 외침을 진정성 있게 순종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도 주기철 목사님이 예배에 5분 늦게 참석한 조만식 장로님을 크게 책망했고 예배 시간 내내 뒷자리에 서서 예배를 드리시오! 라는 징계를 눈물로 수용한 장로님(장로님은 개인적으로는 오산학교 스승님이었다)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건이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후에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신하들에게 관대했고 백성들을 귀히 여긴 훌륭한 황제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믿는 정통 기독교는 이런 분들이 땀과 수고를 통해 보전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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