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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국민의 열쇠, 국민의 힘, 국민의 영혼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 목사 칼럼

1492년, 스페인 아빌라 주교는 이사벨 여왕에게 문법책 한 권을 증정했다. 그러자 여왕은 퉁명스럽게 “나에게 이 책이 왜 필요한가?” 라고 묻자, 주교는 “언어는 제국 통치에 꼭 필요한 도구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여러 견해들이 있긴 하지만 현재 지구상에서 통용되고 있는 언어 수는 대략 6912 여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나 언어학자 데이비드 해리슨에 따르면 “금세기 중에 현존 하는 언어가운데 90퍼센트 정도가 소멸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국어는 국민의 열쇠이다.

“…그 날도 여느 날과 같이 학교에 지각하게 될듯하여 나는 서둘러 들판을 가로질러 학교로 갔다. 다른 때라면 왁자지껄할 교실이 오늘만은 조용했다.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지 않을까하여 겁먹은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서 자리에 앉아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정장 차림을 하고 교단에 서 계시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교실 뒤쪽에는 마을 사람들도 조용히 앉아 계셨다.

선생님은 교단에 올라서서 “여러분! 오늘은 나의 마지막 수업입니다. 베를린에서 내일부터 독일어로만 가르치라는 명령이 왔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그제야 선생님이 정장을 하고, 마을 사람들이 학교의 교실 안에까지 들어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의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지 못했으나 선생님은 여느 때처럼 꾸짖지 않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까지 내게 많은 꾸중을 들었지? 오늘의 공부를 내일로 연기하는 것은 가장 나쁜 버릇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만이 나쁜 것은 아니다. 부모님도 또 선생인 나도 나빴던 것이다.” 선생님의 깨우침은 내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선생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프랑스 말은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분명하며 굳센 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국민이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자기들의 국어만 유지하고 있다면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업이 끝나려고 할 무렵 독일군들의 나팔 소리가 울려 왔다. 그러자 선생님의 얼굴은 창백해지며 무척 아쉬운 듯이 “여러분, 여러분, 나는…나는…”하고 할 뿐 말을 더 잇지 못하였다. 선생님은 흑판 쪽으로 돌아서시더니 “프랑스 만세!”라고 썼다…”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1840-1897)의 “마지막 수업”의 개략적인 내용이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모국어가 가진 힘은 무력보다 강하며, 자기 언어를 소유하고 있는 한 어떤 것도 빼앗기지 않는 다는 것을 강변하고 있다.

모국어는 곧 국력이다.

현재 그리스는 크게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지만 그리스 언어만큼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언어는 드물 것이다. 그리스어는 지금도 현대과학과 수학, 의학, 건축디자인은 물론 일상 언어와 교역을 위한 의사전달, 교육, 그리고 문학에 있어 주요한 언어가 되고 있다. 주전 146년 로마는 헬라를 정복하였었지만, 헬라어와 헬라문화는 그대로 수용했다. 다시 말해 로마는 헬라를 정치적으로 정복했지만, 그리스는 도리어 로마를 문화적으로 정복하였다.

지금 전 세계 국가들은 자기 말과 언어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정부는 관련 부서를 설치해 막대한 예산 및 인원을 투자해 자국의 말과 언어를 보호하고 있다. 프랑스는 국가차원의 자국어 보호정책에 단연 모범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1976년 프랑스는 언어 정화법을 제정, 방송 , 광고, 기업, 개인 사업자까지 프랑스어를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들의 언어사용 실태를 감독하는 “언어경찰제” 같은 감독기관을 두어 자국어 오, 남용 현장을 적발해 법률적 제재를 가하고 있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한술 더 뜬다.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도 전혀 쓰지 않으려 애쓴다. 전화인 텔레폰의 경우 “페른 스프레이허”로, “포노롤지”는 “소리학”이란 뜻의 “라흐트레흐어”로 사용하고 있다. 독일은 이런 자국어 지키기를 16세기부터 추진해 왔다. 이런 노력 덕분에 300여 년이 지난 요즘 철학, 의학 용어는 독일어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 역시 영국식 영어인 “퀸즈 잉글리시” 보호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일반 서적 등에서 미국식 영어가 나오면 이를 영국식으로 즉각 바꾼다. 자기식의 영어 사용권을 넓히기 위한 미국과 영국 사이의 무한경쟁은 아주 오래 전부터의 일이거니와, 자국어 사용 인구를 늘리기 위한 국가 간의 경쟁은 가히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될 만하다.

모국어는 국민의 영혼이다.

과학자 아인슈타인과 뉴턴, 갈릴레이, 에디슨, 작곡가 멘델스존과 쇼팽, 화가 샤갈과,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 투자분석가 소로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영화감독 스필버그 등,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보아도 유대인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렇듯 세계적인 인물들을 낳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모국어 교육은 그들의 기본 가치이며,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 이스라엘의 교육목표는 “국가와 민족, 히브리어에 대한 사랑”(Loving Your Country, People and Hebrew)을 깨우치도록 하고 있다.

공교육은 한국보다 빨리 시작하지만 글씨와 숫자는 집이나 유치원에서 미리 가르치지 않으며, 반드시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가르친다. 이런 교육 방침이 세워진 것은 4세 때, 1년 동안 배운 것을 6세 때 한 달 만에 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이후부터다. 영어 교육도 10세가 넘어야 시작하지만 초등학교 이전에 자유롭게 구사한다. 대신 모국어인 히브리어 교육을 강조한다. 외국에 사는 유대인일수록 아이들이 모국어를 잊지 않도록 가정교사를 두는 한편, 절기나 전통음식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익히게 하려고 더욱 애쓴다. 2천년 동안 국토 없이 떠돌던 그들을 지켜 준 것이 바로 “구약성경”과 지혜를 담은 “탈무드”이다. 랍비들은 성경과 탈무드에 따라 자녀교육의 의무는 아버지의 몫이라고 가르친다. 아버지들은 매 학기 첫날 아이와 함께 수업에 참석하고, 학부모의 모임에도 참석하곤 한다.

소위 “엄부자모”(嚴父慈母-아버지는 엄격, 어머니는 온유함)의 역할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아이들이 아버지 품에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도록 왼팔을 준비해 놓고 있는 것이 다르다. 탈무드에서 모국어를 가르치는 어머니를 “집안의 영혼”(spirit)이라고 부른다.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또 상식적으로 옳다고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양육방법이라고 믿는다. 이스라엘 교육에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언어와 역사와 문화가 들어 있는 교육전통을 이어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유대 부모와 한국 부모의 교육열은 비슷할지 모르나 교육방식과 정신세계는 사뭇 다르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모국어 교육에 대한 열정과 가치이다.

모국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나 자존감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만 아니라 “모국어가 개인과 국가의 세계관을 결정한다.” 라고 한 워프의 말이나, 영국의 언어학자 헬리데이가 “언어는 생활 형식을 결정한다.” 라고 한 말은 이미 역사에서도 증명되었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면서 가장 먼저 한국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역설적으로 모국어의 힘이 얼마나 크며 중요한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과거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남미를 정복하면서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를 사용하도록 했고, 영국과 프랑스 또한 정복한 나라들에 대하여 자국 언어를 사용토록 했다. 그 결과 500년이 지난 지금도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남미 여러 나라들은 스페인어를, 그리고 불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는 프랑스와 영국의 영향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 / 김학우[kmadrid@hanmail.net]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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