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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일반

하나님이 보낸 사람

[북스저널]  법당에서 목탁을 두드리던 한 사람이 주님을 만난이야기

더 이상 산속의 물고기가 아닌 하나님이 보낸 사람, 이민교 선교사 이야기넥서스CROSS

산속에 살았던 물고기를 전라북도 남원으로 보내고, 소록도로 보내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고, 카자흐스탄으로 보내고, 북녘 땅으로 보내고, 땅 끝으로 보내고…. 정말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을까? 아니면 내가 원해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땅은 나의 원함대로 되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일까?

중학교 2학년 때 <사랑의 스잔나>라는 한 편의 영화로 시작된 물음이다. 종교심이 유난히도 강했던 부모님의 신앙 따라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손에 이끌려 장례식장을 많이도 따라다녔다. 울음과 통곡이 지속되던 장례식장을 다니며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기에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저리도 슬퍼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스물 즈음에 죽음 이후의 삶을 찾기 위해 무당을 좇아 계룡산을 가고 한국의 민족종교인 천도교, 증산교, 원불교를 찾아가고, 길거리의 행려자들과 살아 보고, 부산 당감동 화장터와 서울 벽제 화장터를 다녀 보기도 했다. 다양한 죽음 너머의 삶을 찾았던 고행의 여정으로 이끌림을 받았다.

내가 소록도에 머물 때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이 죽어갔고 이틀에 한 번꼴로 장례가 치러졌다. 나는 장례식이 있다고 하면 목탁을 들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살아계신 분에게는 아무리 부처를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으니 나는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죽은 영혼을 천도하는 일에 매달렸다.

소록도를 다닌 지 약 7년 만에 소록도 법당 안에서 목탁을 치다가 염불 대신 찬양으로 하나님의 신, 성령이 찾아왔다. 죽음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소록도 나병 환자들의 장례식에서 끊임없이 들었던‘며칠 후…’ 찬송이 방언과 함께 터져 나왔다. 죽음을 축제로 맞이했던 소록도 나병 환자들의 화장터에서 울려 퍼진 환송식! 그 기쁨의 찬송이 결국 하나님을 웃게 만들었다.

내가 천도재를 드리면 그 옆에서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이 장례 예배를 드렸다. 나는 나대로 목탁 치며 염불을 하고 그들은 그들대로 찬송을 하며 기도했다. 그렇게 장례예식을 치르다 보면 어느새 서로 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찬송 소리가 높아지면 이에 질세라 나의 목탁 소리가 빨라졌다. 그러면 그들은 더욱 목청껏 찬송을 불렀고, 나는 목탁이 부서져라 두드렸다. 내가 드리는 천도재는 슬프고 엄숙했던 반면 소록도 나병 환자들의 장례예식은 항상 축제 분위기였다. 그들은 장례식에 올 때에도 웃으면서 왔다. 그러고는 먼저 죽은 이에게 이런 인사를 했다.

“왜 네가 먼저 가냐? 내가 더 빨리 가야 하는데….”
죽은 사람 때문에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러워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장례식을 하늘나라로 옮겨가는 환송식이라고 불렀다.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정말 기쁨에 차서 찬양을 했다.                                                   (p.54)

어느 날인가 독방에 갇힌 사형수에게 예수를 전하려고 조용히 찾아갔다. 독기가 시퍼렇던 그는 내가 찾아갈 때마다 내 눈을 확 뽑아버리겠다는 등 악담을 퍼부었다.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고 나는 감방 문 가까이에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죄인인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으셨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기만 하면 그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고 예수처럼 다시 살 수 있다”는 복음을 소리쳐 외쳤다.

독방의 철문을 사이에 두고 안쪽에서는 저주가, 바깥쪽에서는 복음이 오고 갔다. 예수께서 당신의 문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음을 얘기하는데 사형수가 갑자기 독방 안으로 후다닥 달려 들어가더니 이내 뭔가를 들고 나를 향해 와락 끼얹고는 악을 썼다.

“나만 죄졌냐? 나보다 더 악질들도 있는데 왜 나만 죽어야 하냐! 하나님이 있다면 왜 그들은 가만히 두냐! 예수가 어디 있다는 거냐?”

내 얼굴에는 사형수의 똥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감방 안 화장실에 다 받아놓은 똥물 그릇을 내 얼굴에 뿌려버린 것이었다. 나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나를 아찔하게 했던 것은 똥물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손가락질하는 그 사형수의 절규 때문이었다. 그걸 듣는 순간, 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도 저렇게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대적했었는데….’
똥물을 흠뻑 뒤집어쓰고 냄새나는 얼굴로 나는 나의 죄를 절절히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 저도 옛날에 저런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옛날에 저렇게 하나님 없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지은이 이민교 선교사
그는 뿌리 깊은 원불교 가정에서 태어나 고아와 장애인에게 온 마음을 쏟던 그는 자타공인 교무(敎務)가 될 재목이었고, 원불교 정녀(貞女)인 누님의 권유로 고3 때 소록도를 방문한 후 ‘원불교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선다. 그리고 7년 후, 소록도 법당에서 염불하던 그의 입에서‘며칠 후…’ 찬송이 방언과 함께 터져 나왔다. 한참을 울며 뒹굴다 성령에 휘감긴 그는, 광야 훈련을 거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다.
그 후 GP선교회 선교사로 약사였던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농아(聾啞)들을 상대로 선교하며 교회를 개척했고, 아마추어에 불과한 축구 경험을 살려 농아축구팀을 조직하여 우즈베키스탄 농아축구팀 국가대표 감독(1997년~2004년), 카자흐스탄 농아축구팀 국가대표 감독(2005년~2015년)을 역임하면서 농아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도 출전하게 된다.
한편 KBS 1TV 한민족 리포트 ‘우즈벡 한인 목사와 농아축구단’(2000년), KBS 2TV 사랑 싣고 세계로 ‘카자흐스탄에 심은 사랑’(2011년)에 축구공 하나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이 선교사의 삶이 방영되기도 했다.
지금도 남북체육교류협회 장애인체육위원회 위원장(2013년~현재), 손짓사랑(Deaf Partners) 대표(1985년~현재)로 거룩한 섬김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산속에 살았던 물고기》, 《복음에 빚진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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