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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크시론

다시금 어게인(again), 바울로 돌아가자.

[유크시론 164호]  이창배 발행인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시대와 역사를 초월해 영영히 남아있을 하나님의 나라, 그 한 퍼즐이 될 것인가? 그 질문 앞에 나는 서있었다.

어느덧 만개한 꽃들로 더 없이 화사한 5월을 맞이한다. 온통 신선한 녹색의 풀빛 그리고 나뭇닢의 세상이 됐다. 마음도 절로 푸르러지는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 4월 마침 시간과 여건이 허락되어 이태리 여러 도시들과 그리스 아테네를 연 두 주 동안 다녀올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던지, 언젠가 가볼 수 있겠지라고 늘 마음에 염원하던 그 땅들을 밟고 오면서 감개무량했음을 무엇으로 다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쉽게 가볼 수 없는 땅을 여행한다는 것은 분명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이다. 어떤 글을 보았는데,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다녀와야 할 땅의 목록 일순위에 오른 장소들을 연이어 다녀올 수 있었다는 것은 일생에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이자, 은총이었는 생각이 든다.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녀온 그 땅이지만, 사뭇 그 의미는 또 다른 것이다.

내 발로 그 땅을 밟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그 찬란했던 문명과 문화를 이루었던 역사의 고장에서, 지나간 수천년의 시간을 함축해 직접 그 공기를 들이마시며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눈으로 보는 것, 손으로 만져보는 돌과 흙, 코 끝을 스치는 공기와, 하늘 조차도 모두가 새로운 것만 같다.

달콤한 오랜지 향 꽃내음이 풍겨나는 오랜지나무 가로수 길로 아테네 거리를 걸으며 눈에 스치는 낯설은 풍물들이 이색적이다. 지금은 비록 그 찬란했던 과거의 문명은 지워져 퇴색되고, 거대했던 건축물들이 낡은 유적으로 남겨져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지라도, 시공을 넘어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신화들과, 그 위대한 철학자들의 성명이 아직도 쟁쟁한 것을 보면 새삼 그 천재들을 가까이에서 보고픈 마음이 불끈 솟아남을 느끼게 된다. 그 후손들이 역사에 별빛처럼 빛을 밝힌 천재들의 뒤를 이어 지금까지 이 세계에 사상적인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면 세계의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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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을 다시 만나다
아테네에는 사실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발걸음이 닿았던 땅이다. 수일을 세미나 관계로 호텔에 머물다 드디어 일행들과 고린도 유적과 아테네 유적을 보게 된 것이니 얼마나 감사했던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덴을 찾았던  사도행전 17장의 발자취를 따라 아크로폴리스 한 곁에 있는 아레오바고의 바위 동산에 올랐다. 그곳에서 아테네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아무런 건물의 흔적도 없이, 그저 더 높은 언덕에 아크로폴리스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것 외에는 바위 언덕 뿐이다. 하지만 이 아레오바고에서 사도 바울은 역사적이며, 가장 인상적인 복음을 선포했었다.

바울이 보았다던 아덴에 우상이 가득한 풍경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했던 그 단을 지금은 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대신 곳곳에 눈을 돌려보는 곳마다 희랍정교회의 둥근 지붕에 십자가를 세운 교회당들이 얼마나 많던지, 고색이 창연한 옛 정교회 예배당을 지나며 불현듯 감동이 끓어오르는 것을 억제해야 했었다. 이게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이 아니고 또 무언가.

고린도를 보면서도 그랬다. 고대의 도시 흔적과 유물들, 그 엄청난 우상의 도시에서 외롭게 복음을 전했을 사도 바울을 생각해보니 코끝이 찡해온다. 그 어마어마한 인본주의며, 우상사신의 본고장에서,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아 보였을 엄청난 신전들과, 음욕이 질펀한 세상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돌이킴을 선포한 바울의 복음전도가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를 되뇌었다. 바울은 험준한 뒷산을 통해 고린도에서 추방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길로 갠그레아로 내려가 배를 탔다.

갠그레아, 바울이 쓴 서신을 가슴에 품고 로마를 향해 알지 못했던 수신자를 찾아 두어달 생사를 건 여행을 떠난 뵈뵈 자매를 떠올렸다. 그것도 홀홀단신 여자의 몸으로 위험을 감수했을 그 신앙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일구고 닦은 복음전도의 결과물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무 댓가도 치루지 않은 채 은혜의 명목으로 거져 받아 누리기만 하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얼마나 초라해지던지를 경험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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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되어 간다
그리스를 방문 하기 전 주, 로마의 콜로세움을 돌아보면서, 그 건축의 웅장함과 그 규모의 엄청남을 실감해야 했었다. 최근의 일도 아니고, A.D.70년에 시작되어 80년에 완공을 거둔 이 원형경기장은 그야말로 당대 로마의 건축문화의 꽃이라 할만했다. 그러나 건축의 과정은 그렇다쳐도 그곳은 그야말로 피가 짙게 배긴 곳이다. 얼마나 많은 크리스챤들이 짐승에 유린되어 목숨을 잃었던지 전율이 묻어난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찬송하며, 기도하며, 그렇게 주님 품에 안겼다. 지독히도 잔인함을 즐겼던 로마인들, 죄없이, 이유없이, 그들의 야만적 유희를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야 했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희생 댓가였던지 로마와 이태리 전역은 훗날 교회들로 가득해졌다.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고는 심지어 로마인들이 점령하고 지배하는 모든 지역마다 교회가 들어섰다. 그리고 교회시대가 꽃을 피웠다.

그런 가운데 피렌체는 건축과 예술로, 르네상스의 총화를 이뤘다.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 교회미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때 만큼 위대한 천재들이 등장했던 시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어떤가? 이 찬란한 전성기가 이젠 지나간 역사의 흔적으로만 고스란히 남겨져 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는 상관도 없이 기념사진의 배경이 되어지는 현실, 한낱 관광상품으로 회자되어지는 이 참담함은 또 무엇인이던가?

여행은 여행으로 끝나질 않는다. 무언가 계속 마음에 잔상이 남는다. 오늘 우리의 가슴에도 서서히 교회가 화석처럼 굳어져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여기저기 교회당이 비어간다는 소식들이 들려진다. 시간이 갈수록 교회를 떠나는 성도들이 많아진다. 그러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가? 언젠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이땅에 그 역사적 유물로 남아있게 될 기념비적 건축물을 바라는가?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시대와 역사를 초월해 영영히 남아있을 하나님의 나라, 그 한 퍼즐이 될 것인가? 그 질문 앞에 나는 서있었다.

다시금 어게인(again), 바울로 돌아가자. 거기로부터 시작하자. 

이달의 말씀 ㅣ 갈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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