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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르몽드지가 바라본 세월호 사건

[프랑스시사칼럼]  채희석 목사/ 파리 모두 제자교회   <4>

세월호 사건은 한국사회의 과불급을 보여준 사례

프랑스 속담 중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L’excès en tout est un défaut) 라는 표현이 있다. 모든 것이 과하면 전체적으론 결함으로 나타난다(過不及)는 뜻이다. <르몽드>지 한국담당 기자 필립 메스메르는 “세월호 침몰은 (바로) 한국사회의 지나침을 시사해주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2014년 4월 23일자). 모든 분야, 특히 자본과 권력이 주는 혜택과 이익만을 위해 탐욕스럽게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가 위기 앞에서 총체적 모자람으로 노출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2014년 4월 16일) 일년이 넘어섰다. 이 참사는 국내뿐만이 아니라 프랑스를 위시한 해외에서도 빅뉴스 화제로 소개되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간지 <르몽드>지는 지난 1년 동안 거의 60편에 달하는 세월호 관련 기사를 내놓았다. 유례없는 외신 연속보도였다. 한국에선 생중계 방송을 통해 온 백성이 사고 현장을 보고 있었기에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세월호 사건이 이토록 국내외적으로 큰 비극으로 대두되어 일년이 넘게 지속적으로 언론인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대형 참사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사건이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경종이 된 이유는, 국민이 위기 속에서 자신을 실제적으로 지켜줄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비극적인 사실은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 3일 동안, 스스로 빠져 나온 자들을 제외하고, 선체에 남은 자 304명 중 단 한 명도 구출되지 못했고, 또 이들을 구출하려는 어떤 시도조차 없었다는데 있다. 강 건너 불구경보는 듯한 자세로, 우왕좌왕 식으로 대처하는 정부의 구조작업을 보면서 국민은 경악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선주와 선원, 해경과 해군, 행정부와 대통령의 무능, 무정, 무책임을 실감나게 목격한 것이다. 그야말로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부실이 위기의 순간에 노출되었고, 국가와 언론에 대한 신뢰가 붕괴된 것이다.

프랑스 속담 중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L’excès en tout est un défaut)라는 표현이 있다. 모든 것이 과하면 전체적으론 결함으로 나타난다(過不及)는 뜻이다. <르몽드>지 한국담당 기자 필립 메스메르는 “세월호 침몰은 (바로) 한국사회의 지나침을 시사해주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2014년 4월 23일자). 모든 분야, 특히 자본과 권력이 주는 혜택과 이익만을 위해 탐욕스럽게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가 위기 앞에서 총체적 모자람으로 노출된 것이다.

일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침몰 원인을 모른다 (최소한 공식적으로…). 정부는 침몰 원인 자료를 계속 누락하거나 은폐하고 있다. 왜? 유가족들의 투쟁을 통해 어렵게 구성된 <세월호 특별조사반>도 정부 스스로가 시행령을 통해 유명무실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왜? 재판부는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선장에겐 살인죄 인정 무기징역을, 선원에겐 1심에 비해 대폭 감형된 선고를 했지만, 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도 보류하고, 윗선 책임자에 대한 판단도 하지 않고 있다. 왜? 우리는 이런 “왜?’라는 의심과 비평의 질문을 하면서도, 동시에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자성의 질문도 하고 있다.

1505-Editing.indd세월호 참사는 그냥 대충 넘어 갈 일이 아니다. 한국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비해 이후가 반드시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심지어 종교 등 모든 면에서 변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대적 위기감과 경고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모든 분야에서 지나침을 삼가고, 나의 이해관계보다 사회 전체의 유익을 구하는 가치관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가 아니길 바란다.

모든 한국교회가 구원파가 아니다

<르몽드>지는 작년 6월에 세월호 선주 청해진 해운사의 회장인 유병언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우고 히스테리를 방불케 하는 대규모 추적전을 펼친 한국사회를 5 차례나 집중보도하였다. 그 이유는 한국정부가 책임 추궁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사실 프랑스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유병언의 장녀가 사기와 공금횡령 이유로 파리에서 체포 구속되었다. 그리고 소위 “파리 박물관의 친구” 또는 “문화예술 옹호자” 또는 “사진작가 아해”란 호칭을 받으며, 프랑스 박물관(루브르와 베르사이유)에 거금을 기부한 유병언에 대해선 미묘한 관점에서 그의 정체를 폭로했다.

우리는 이 과정 속에서 구원파로 인해 한국교회의 모습이 실추되고 있다는데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다. 유병언은 사업가뿐만 아니라, 복음주의 설교자요, <구원파> 기독교의 교주로 소개되었고, 그의 교회는 “복음주의 침례교회”로 불려진 것이다. 비록 이단이지만, 한인 목사가 개인의 영달과 부귀를 위해, 사람의 생명을 담보 삼아, 부정 부패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매스컴을 통해 모든 프랑스인에게 보여준 것이다. 언뜻 보기에, 한국교회가 세월호 가족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는커녕, 강도의 소굴이 된 인상을 준 것이다.

사실 구원파가 유럽 여러 곳에서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프랑스에서는 또 다른 구원파 (이요한) 교회가 <파리예수침례교회>란 가명으로 현지 복음주의 교단에 가입을 시도한 적이 있다. 본인은 이 사이비 교회의 이단성을 입증하는 변증서와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및 한기총에 의한 이단 판정 서신, 프랑스 한인교회목회자 서명서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하여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자신의 교리를 감추고, 정상적인 침례교회로 위장한 이 교회는 다음 해에 회원이 되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후 본인은, 구원파 교회의 이단성과 사회적 악폐를 근거로, 다시 한번 이의를 제기하였다.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속이는 이단 구원파는 그렇다 치고, 기존 한국교회는 세월호 가족들에게 희망과 신뢰를 주고 있는가? 어떤 책 제목처럼 <그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라고 회의하는 자들에게 십자가의 값비싼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위로해 줄 수 있는가? 세월호 가족의 고통과 어려움을,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받아, 교회가 그들과 함께 나누며 비폭력 저항을 하고 있는가? 이는 간사하고 잔혹한 정치 제도 머신 앞에 무력한 세월호 가족을 바라보면서 한국교회가 내어야 할 자성의 목소리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멀다. 세월호 가족 중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바꾸거나 떠난다고 한다. 교회 내에서도 정치 논리로 그들을 음해하거나 정죄하는 슬픈 상황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보다도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닌 가하는 염려가 생기기도 한다. 교회건물 울타리 안에 안주하면서, 찬양을 부르고, 주의 말씀을 전해 듣지만, 불의한 사회에 대해선 귀를 막고 눈을 감는 한국교회, 곡해야 할 때 기뻐하며, 기뻐해야 할 때 우울해 지는 이 이상한 한국교회를, 설사 프랑스인들이 모두 구원파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월호는 현재진행형이다

<르몽드>지는 최근에(2015년 4월12일자) <세월호 침몰에서 잊혀진 자들>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발표했다. 핵심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세월호 사건은 점점 잊혀져 가고, 세월호 가족들은 정치몰이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세월호 사건은, 한편으론 보수와 진보라는 두 부류 한국인이 하나의 공감대를 갖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고, 다른 한편으론 국민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올바른 민주주의 길이라는 것을 국민 스스로 깨닫게 만든 사건이 된다. 이 모든 것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돈보다 권력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그 자체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한국교회는 시험대로 올랐다. 과거 유럽의 교회는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수인의 종교>로 탈바꿈되었다. 교회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사회에서 한계적인 존재로 되어버렸다. 다른 서유럽 국가처럼, 프랑스 교인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교회에 소속하지 않는 <교회 무소속자> <신앙의 노숙자> 들이 범람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세월호를 계기로 이제는 한국교회도 스스로 돌이켜 보아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세월호 가족에게 교회는 희망을 주고 있는가? 이 점에서 세월호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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