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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여~ 임하시옵소서!

[이슈&특별기획] 성령강림절 특집

성령강림절과 오순절이 동일시 되는 것은 성령강림이 오순절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오순절을 의미하는 펜타코스트(Pentecost)는 50번째를 의미하는 라틴어 ‘펜테코스테’에서 유래했다. 성령강림절은 구약과 신약을 잇고, 다시 신약과 교회사를 잇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다.

성령 강림의 날 의미
금년 성령강림의 날은 5월24일이다. 이탈리아어로 성령 강림절을 뜻하는 ‘파스쿠아 로싸’(Pasqua rossa)도 이때 성령을 상징하는 붉은 예복을 입는 풍습에서 유래된 말이고, 영국에서는 이 날을 ‘휫트 선데이’(Whitsunday)라 하는데, 이는 ‘화이트 선데이’(White sunday), 즉 ‘하얀 일요일’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성령 강림절에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순결을 상장하는 흰 옷을 입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즉 초대교회 당시에 성령강림주일날 세례를 받는 성도들이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강림절(聖靈降臨節, Pentecost)은 주님의 승천 이후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셨던 그대로 성령이 신약교회 위에 처음이자 영원히 임재 했던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행 1:4,5 2:1-4) 그러므로 성령강림의 날을 오순절(五旬節, 50이라는 뜻)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원래 구약의 칠칠절(七七節) 절기였던 이날에 성령이 강림하였기 때문이다.

성경의 유래로 살펴보면 오순절은 무교절기의 안식일 다음날, 수확한 보리의 첫 곡식단을 하나님께 드리는 초실절(初實節) 다음날로부터 7주간의 곡물 추수기간이 끝난 칠칠절 또는 맥추절에 그들에게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종의 추수 감사절이다. 이때 유대의 남자들은 추수한 곡식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풍성한 추수를 하기까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표했다.(레 23:15-17)

여기서 우리는 신약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구약의 곡식 추수가 상징했던 회개한 영혼의 추수 곧 회개한 성도의 구원과 구원받은 영혼의 풍요한 생활 및 영혼의 평안을 실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그 날은 애굽에서 나온 지 50일째 되는 날이었으며 그날에 율법을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완전히 조직하여 주신 것 같이 오순절에 성령을 주심으로 예수 안에서 교회를 조직하셨다고 데오도르(Theodoret)는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첫 열매를 드리는 날(민 28:26)이 또한 이 날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속죄를 받고, 구원받고, 성령으로 중생한 영적인 열매를 주어 창고인 교회에 끌어 들이는 첫 추수였다는 사실이다.

성령 강림과 관련하여 성령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의해 언급되었는데, 특히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으시기 전 자신의 승천 후에 오실 성령에 대하여 자주 말씀하셨다(요 14:16-24; 16:1-15). 또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을 것을 명령하기도 하셨는데(요 20:22), 이는 성령 강림의 역사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제자들에게 알리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시행된 구약의 5대 제사를 성령 강림과 대조해 보면 첫 곡식을 소제로 드린 것은 주님으로 인하여 부름 받은 초대 성도이다.(소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다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연후에 한 곳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다락방에 모임) 그들이 모인 곳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속죄와 구원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속죄제) 그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그들에게 주시었다.(화목제) 성령을 받은 그들은 변화되었고 능력과 진리와 성령의 사람이 되어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선민이 되게 했고, 그리스도에게 이끌어 드렸다.(요제)

이 모든 일은 우연하게 된 것이 아니라 떡 두덩이가 되는 구약과 신약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약속과 주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은 성령의 강림으로 초대 예루살렘 교인들이 변화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가 탄생한 탄생일이 되지만 더욱 귀한 것은 신약과 구약의 말씀 진리가 완성이 되고, 그 진리의 기둥이 세워진 날이라고 하겠다.

이같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의미 있고 귀한 사건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이 날을 귀한 성일로 지켰다.(행 20:16, 고전 16:8) 교부시대 이후로 부활절로부터 오순절까지의 기간은 신자에게 세례를 주는 시기로 되었으니, 곡식을 추수함 같이 교회 중에 산 영혼을 추수함이 된 것이다. 오늘 날에도 이같은 의미로 오순절 즉 성령 강림절을 지키는 것이다.

2015-1617.indd성령 강림과 신약교회의 태동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무덤에서의 부활사건은 예루살렘 전체를 긴장과 일촉일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게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올 수 있을 박해를 예견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사실은 많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났고, 그래도 끝까지 남은 120문도는 참 된 믿음의 용기있는 제자들이었다. 이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주님이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그대로 믿고 두려움과 불안함이 가증되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성령을 간절히 기다렸던 사람들이다. 드디어 오순절 날에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놀랍게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다. 그 결과 120 문도는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행 2:4).

누가는 사도행전 2장에 이 놀라운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데, 바로 이 기록이 오늘날의 성령 강림절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때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각 나라의 방언을 말하게 되었고, 이들의 복음 증거로 인해 3천명이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다(행 2:37-41). 그것은 구약에 예언된 요엘 선자자의 약속 성취였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신 주님 말씀의 성취이다.

위의 성령 강림은 예루살렘 교회에 제한되지 않고, 가이사라의 고넬료의 집에 임했고, 또 에베소에 임했다(행10:). 또 갑자기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 닥친 핍박의 바람은 복음의 씨를 간직한 성도들을 사방으로 흩어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그 영적 알곡을 영혼의 창고인 교회를 세워 그 영혼들을 거두어 드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오순절은 영적 초실절이라 하겠다. 이 절기는 또 영적 감사절을 예표하여 준다. 즉 앞으로 닥쳐올 가을에 걷어들이는 마지막 추수, 즉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되는 심판도 교훈하고 있다.

이렇듯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예루살렘 공동체는 비로소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는 공동체로, 주님의 약속을 이행해 가는 선교적 교회로 태동될 수 있었다. 성령강림은 교회의 생명력이 그리고 그 본질이 성령의 역사와 임재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교회가 늘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의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성령 강림과 오늘날 교회의 관계
아이러니컬 하게도 세계교회는 오랫동안 오순절 사건이 일회적이냐 연속적이냐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여 오고 있다. 개혁교회는 전통적으로 오순절의 사건을 일회적인 사건으로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오순절교회들은 연속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며 성령의 사역을 제한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안 머레이는 ‘Pentecost Today’라는 책에서 세 가지 부흥관을 제시한 바 있는데, 세 가지 견해의 차이는 오순절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피력해 흥미를 주고 있다.

첫째 견해는 아브라함 카이퍼처럼 오순절 일회성을 주장하는 이들 중 부흥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비 성경적이라고 보는 견해다. 두 번째 견해는 부흥이 전적으로 순종에 달렸다는 견해다. 세번째 견해는 오순절이 일회적인 사건이지만 그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교회사 속에 반복될 수 있고 또 반복되어야 한다는 견해다. 이 견해는 성령께서 항상 교회와 함께 하심을 믿으면서 성령의 한량없는 부어 주심을 사모하도록 만들어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성령은 영원히 아들과 아버지로부터 나오신다’라고 말함으로써 성령의 부으심을 사모하며 기도해야 할 당위성을 명문화하고 있다.

오순절의 부흥을 사모하라
오순절의 진정한 의미는 성령의 역사를 통한 교회의 부흥이다. 조나단 웨드워즈가 증언한 것처럼 부흥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지만 아무 곳에서 임하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는 곳에 임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패튼은 “부흥의 계절 동안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에 엄청난 규모와 비상한 속도로 회심자들을 만들어 내시며, 당신의 백성들의 믿음을 고양시키고 원수의 심장에 일격을 가하게 하셨다”고 말했다. 교회사에는 반드시 참된 부흥과 그렇지 않은 부흥이 존재해 왔다. 참된 부흥의 표식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초대교회가 보여준 사도행전에 나타난 표식들이다.

제임스 롭이 지적한 것처럼 교회사에 나타난 참된 부흥에는 언제나 참된 회개, 삶의 개혁, 주님과 이웃과 원수에 대한 참된 사랑, 구령의 열정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수반되었다. 한국의 평양대부흥 운동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그 부흥운동의 현장에서 부흥을 직접 경험한 윌리엄 뉴톤 블레어는 1907년 한국의 평양대부흥운동을 가리켜 한국의 오순절이라고 불렀다.

성령 강림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산모요, 요소였으며(행2:37-47)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가이사라의 고넬료의 집에 임했고, 또 에베소에 임했다(행10:). 또 갑자기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 닥친 핍박의 바람은 복음의 씨를 간직한 성도들을 사방으로 흩어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그 영적 알곡을 영혼의 창고인 교회를 세워 그 영혼들을 거두어 드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오순절은 영적 초실절이라 하겠고, 이 절기는 또 영적 감사절을 예표하여 준다. 즉 앞으로 닥쳐올 가을에 걷어들이는 마지막 추수, 즉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되는 심판도 교훈하고 있다.

금년 성령강림절을 맞아 다시 한번 세계와 유럽, 고국 땅에 놀라운 부흥,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유크 편집실 정리>

<자료참조> 1. http://www.cheraldus.com/node/285  2. http://kcm.co.kr/bible/exo/Tent/Tent21.html 3. 박용규교수/ 총신대 신대원 역사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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