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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았던 라오디게아

[성서의 땅 터키에서 보내는 편지]  원제연 선교사

폐허만 남아 있는 라오디게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도 요한을 통하여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경고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귓전에 맴돕니다.

라오디게아는 에베소에서 동쪽 수리아로 가는 길에 있어서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길목에 있습니다. 그 길은 에베소 해안에서 시작하여 약 2,800미터 높이의 중앙 고원을 올라가는 길인데, 이 길은 깎아지른 듯한 메안델강의 협곡을 피해 완만한 리쿠스(Lycus) 계곡을 거쳐야 아시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에서 동남쪽으로 약 7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에베소에서는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이 도시의 맞은편인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는 히에라볼리가 있으며, 동쪽으로 약 14km 떨어진 지점에는 골로새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세 곳은 모두 바울 서신에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골 4:13,16)

브리기아(Phrigia)와 루디아(Lydia)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이 도시 앞으로는 리쿠스(Lycus)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원래 디오스폴리스(Diospolis) 혹은 로아스(Rhoas)라고 불리웠으나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2세가 이 도시를 재건하면서 자신의 부인인 라오디스의 이름을 따 라오디게아로 명명했습니다.

라오디게아의 특징은 교통의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모직물 공업의 중심지였다는 점입니다. 또한 라오디게아는 의학이 발전했어서 ‘부르기아 가루’라고 알려진 안약과 의학교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유명한 고대 의사 갈렌이 라오디게아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의 라오디게아는 근처의 히에라볼리에서 흘러내리는 따뜻한 온천물이 이곳에서 메안더(지금은 멘데레스라고 부름) 강의 지류인 루커스 강과 만나기 때문에 곳곳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잡은 짐승의 피가 미지근한 물로 인해 오염되어 많은 질병, 특히 눈병과 귀 병을 유발시키게 되었답니다.

이에 따라서 이 지방에서 나는 귓병을 치료하는 특효약과 콜로니온이라 불리우는 안약은 특히 유명하였고, 그래서 라오디게아는 의료 도시로서도 명성을 얻게 되었답니다. 이곳의 눈병 치료약은 매우 뛰어나서 많은 이들이 찾았는데 ‘브루기아 가루’라 불린 이 안약 때문에 라오디게아는 의료 도시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발전한 의학은 유명한 의학교가 뒷받침을 해 줬으며 치료의 신 ‘멘카루’의 신전 주위에서 거의 모든 약품들이 거래 되었다 합니다.

라오디게아는 그 위치적 중요성으로만 보아도 상업적 및 전략적 중심지로 만들기에 충분한 구릉지 지역입니다. 그러나 구릉지 지역으로서의 결정적인 핸디캡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도시로 수원이 외부에서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9키로 떨어진 히에라볼리(파묵칼레)의 온천수가 수로를 통해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온천수 때문에 당시 라오디게아는 귓병을 치료하는 특효약과 안약의 산지로 의료 도시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에서 북동쪽으로 14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골로새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아서 회심한 에바브로가 전도해서 세운 골로새 교회가 있던 곳이죠. 골로새 뒤편에 만년설이 쌓여 있을 정도로 높은 산인 바바산에서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아주 차가운 물이 있는데, 이 차가운 물을 라오디게아로 수로를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히에라볼리의 뜨거운 온천수처럼 이 차가운 물도 14 킬로미터를 지나다 보면 점차 미지근해져서 마시기가 역겨운 물이 됩니다.

1505-Editing.indd계시록 서신에 나타난 라오디게아의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의학적으로 상당한 지위에 있었습니다. 당시 유명한 의사로 라오디게아 주화에 이름이 기록된 이들도 있었습니다. 둘째 은행과 재정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지상에서 가장 부요한 도시였는데 주후 61년에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을 때도 로마 정부의 지원 없이 도시를 재건했습니다. 셋째로, 의류 제조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라오디게아 주변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양들이 많아서 부드러운 양모를 이용해서 값싼 의류가 대량생산되었습니다. 이러한 곳에 유대인들이 이주해 와 살았습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자칭 부요한 사람’이라 할 정도로 부하여 하나님까지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곳에서 생산하는 의복을 자랑했지만 주님은 벌거벗은 자와 같다고 하고, 눈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과신했지만 주님은 정작 눈먼 줄을 모르고 있다고 책망하셨다. 또한 주님은 그들의 신앙이 라오디게아에 흐르는 온천수와 같이 덥지도 차지도 않음을 책망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몇 번의 대지진을 겪게 된다. 현재의 유적지도 대지진으로 인해 모두 땅속으로 함몰되어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대지진이 AD 17년과 60년에도 있었는데 이 지진으로 라오디게아가 모두 파괴되자 로마 중앙 정부에서 도와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는 이를 거절하고 순수 라오디게아인들의 힘만으로 도시를 재건했습니다. 이 정도로 라오디게아는 엄청난 부를 갖춘 도시였습니다.

이런 부의 근본이 된 것은 물론 무역과 통신이었지만 기간 산업인 양모와 목화 또한 주축이 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양모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 양모로서 가격이 높았으며 인기가 좋았습니다. 이들의 부는 로마의 키케로가 거액의 신용장을 라오디게아에서 현금화 했다는 일화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부를 가진 라오디게아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종교적 핍박이 그렇게 심하지도 않고 경제적 궁핍도 없는 상황에서 포교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경제적인 부유함은 사람들에게 교회와 하나님을 간구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해 하나님에게 덥지도 차지도 않다하여 책망을 받게 됩니다. 이 책망은 라오디게아에서 9km 정도 떨어진 히에라볼리에서 온천수를 수로로 가져오면서 식은 미지근한 물에, 14 km 떨어져 있는 골로새에서 차가운 물을 수로를 통해 끌어오면서 덥혀진 물에 비유하여 라오디게아인들을 책망했다고도 풀이됩니다.

이렇듯 부유했던 라오디게아는 몇 차례의 대규모 지진으로 현재 교회 터로 볼 수 있는 유적 하나와 야외 극장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잘나가던 라오디게아가 폐허로 남게 된 것은 거듭되는 자연 재해와 대형 지진 때문입니다. 1710년과 1899년 대 지진 때 이곳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현재 복원되지 않은 채 폐허 속에 로마식 야외운동장과 원형극장터, 그리고 폐허 속에 십자가가 선명하게 부각되어 있는 돌무더기가 남아있어 교회 터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과 물질은 양날의 검인 것 같습니다. 지혜롭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잘 사용하면 정말 엄청난 일을 할 있고, 잘못 쓰이면 모두를 망하게 할 수 있는 무서운 무기가 되기도 하죠. 오늘날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들어야 할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한국 교회가 폐허만 남겨진 라오디게아 교회의 전철을 똑같이 되 밟을지 아니면 다른 역사를 쓰게 될지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하나님 주신 축복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폐허만 남아 있는 라오디게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도 요한을 통하여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경고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귓전을 맴도는 것 같습니다.

<필자 원제연 선교사/ 성지선교회/ 이메일 : director@godsland.or.kr/ 홈페이지 : godsland.or.kr/ 페이스북 : facebook.com/godslan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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