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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크시론

만납시다. 대화합시다. 더 늦어지기 전에

[유크시론 165호]  이창배 발행인

지금 이슈화 되는 교회가 공식적으로 동성애를 허용 문제는 결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되어서는 안 될 중차대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먼저라도 뜻있는 목회자들이 만나야 한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우리가 가져야할 분명한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기준을 세워서 성도들에게 계도해 가야 한다.

5월에 내리는 눈이 있다. 그리도 펄펄 날리듯 향끗한 꽃내음과 함께 쏟아지는 아카시아 꽃들이 바람과 함께 산화 되어 여기저기를 날고 있다. 마치도 한 겨울의 함박눈처럼.

눈은 녹기라도 할텐데, 아카시아 하얀꽃은 제법 뜨거워진 낮의 태양에 바싹말라 부서져 바람에 흩어지고 만다. 바람이 이리몰고 저리몰며 이윽고 으슥해진 곳에 산산히 말라 부서진 꽃의 잔해가 수북이 쌓여진다. 추한 모양으로.

저리 되지는 말자. 끝이 안좋아 보인다. 노래처럼 들려지던 동구밖 과수원 길, 활짝 핀 아카시아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던 모습은 그저 잠시의 즐거움 뿐, 거기에서 잊었어야 했는가 보다.

요즘, 통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워두질 않게 된다. 무료도 아니고 유료로 할당된 주차공간 임에도 불구하고 수일째 자리를 비워놓고 있게 됨도 실은 그 아카시아 꽃 때문이다. 한겨울 철에 그 자리를 할당 받을 때는 여름을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무그늘이 제법 자동차를 시원하게 만들어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나무가 제법 컸고, 가지가 무성한 것이 마음에 들었었다. 그런데 봄이 되고, 꽃이 한참 피고서야 그 나무가 무척 오래된 아카시아 고목인 것을 알게 됐으니…

게다가 아카시아 꽃잎이 흩날려 떨어지는 것은 고사하고, 왠 새들이 그리 오는지, 외출 때마다 자동차를 온통 덮은 꽃잎과 여기저기 대책없이 떨군 새의 분비물로 기분이 상하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편칠 않지만 그게 쓰잘 데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아무리 내 기분이 상한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일 뿐이라 공연히 마음만 다칠 뿐이지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래도 어쩌랴, 행여 남보기 남사스러워 차는 닦아야 하겠고, 이거 한 두 번에 그칠 일이 아니란 것을 안 것은 불과 수일 전이다. 그래서 그 주차장 자리를 피해 아파트 앞 공용 주차공간에 자동차를 세워 둔 채 잠시간 평화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이제 꽃이 다 지고나면 다시 갈 수 있으려나, 아니 그 자리에 저녁마다 찾아드는 새들이 어디 딴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려나, 아니다, 차라리 우리가 옮기자… 참 걱정도 별 일이지, 난생 처음 6월을 이렇게 맞이한다.

문제 해결점을 찾으라
사실은 이런 일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시작은 좋았는데, 그 끝이 찝찝한 일들, 기억에 조차 상쾌할 리 없는 그런 일들을 통해 차츰 인생이란 연륜을 쌓아가는게 당연하거늘, 언제부터인지 푸념이 잦아졌나 싶다.

지난 5월에는 스페인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키 위해 다녀왔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다니기가 귀찮은 생각이 들어 트렁크에 넣어 짐을 부쳤더니, 이제껏 한번도 없었던 일이 생기고 말았다. 뒷부분 액정이 깨진 것이다. 공항에서 봤으면 어떻게 항의라도 할텐데, 호텔에 와서 짐을 풀면서 알게 됐으니 거 참, 할 수 없어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주최측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나마 믿고 있던 스마트 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자 했더니, 이도 문제가 생긴다. 어느덧 몇년째 썼다고 한번 충전해 놓고 가만이 놔두고 있으면 몇시간을 버티는데, 막상 카메라를 실행하던지, 다른 앱을 실행할라치면 순식간에 화면이 오래된 텔레비전 화면 꺼지듯 직직 줄이 생기더니만 순식간에 완전 방전이 되고만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꺼번에 생길 수 있을까? 거참 신기한 노릇이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혀만 끌끌 찰 수밖에. 세상에나.

아무튼 그 행사가 끝나고 마련된 당일 코스의 여행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구름 한 점 없는 스페인의 날씨로 파란 하늘에 햇살이 가득한 쾌청한 날씨가 야속하기만 했다. 다시 가볼 수 있을 기회가 언제 올런지 기약할 수 없는 짧은 여행길에서 아내와 함께 전적으로 친구들의 사진모델이 되었다. 그나마 친구들의 카메라에 담겨진 사진만이라도 위로를 삼으며 그만 독일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6월은 또 기대가 된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요사이 우리나라는 시끄럽다. 메르스(Mers) 중동 호흡기증후군이라 불리는 전염성 질병으로 인해서 어수선하다. 온통 사회가 들끓고 있지만 어느것 하나도 준비된 것에서 나오는 것은 없잖은가? 그러니 국민은 불안한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기독교계는 9일로 코 앞에 닥친 동성애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일이 당면과제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주요 개신교단들이 동성애를 허용하는 등의 교리적 장벽을 허물고 있는 틈새에 서울시도 이를 허가했다. 곧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시청 광장에서 벌어질 동성애 퀴어축제와 6월 28일에는 퍼레이드라는 초유의 사태가 눈 앞에서 벌어지게 될 것이다. 장차 펼쳐질 다음의 단계가 불보듯 명확해 진다.

모름지기 이일은 우리 교회를 향한 신앙적이며 근본적인 도전이 될 것은 분명할  뿐만 아니라 더구나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어떤 형태로든 거센 영적 도전을 가져온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이럴 때 우리 교회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번호 본지에는 동성애 관련된 많은 글과 보도가 있다. 이러한 일이 우리와는 거리가 먼 미국과 유럽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먼발치로 구경만 해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사실일 것이다. 그 만큼 우리는 안일했고, 교계나 연합기관이 함께 제대로 된 지침서 하나 만들지 못한 체 거듭 분열과 교권, 교단, 개교회주의로 사분오열 되어 왔으니 새삼 탄식할 일이 아닌가 싶다.

또 있다. 이런 가운데 이미 유럽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우리 한인디아스포라교회들은 어떤 방침이 있는가 하면 역시 전무하다. 이미 주위의 유럽교회들에서 동성애자가 담임목사로 버젓이 세워졌으나 어쩔 수 없이 교회적인 관계를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어디까지나 개개인 목회자 또는 개교회적인 판단에 맡길뿐 단 한번도 한인 디아스포라교회들 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화조차 갖지 못한 게 사실이다.

지금 이슈화 되는 이 문제는 결코 사후 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되어서는 안 될 중차대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먼저라도 뜻있는 목회자들이 만나야 한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우리가 가져야할 분명한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기준을 세워서 성도들에게 계도해 가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하겠다. 그게 지금 시급한 일이고, 그길이 그래도 빠른 길이 될 것이다.

이달의 말씀: 로마서 1:24-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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