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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육

응답하라. 2015년 신앙인들이여!

[1927년으로부터 온 편지 – <성서조선> 창간사 ]   백소영교수/이화여자대학교

1927년 7월, 6인의 조선 젊은이들이 <성서조선>이라는 동인지를 창간했다.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 되어버린 세월호 참사 이후 나라의 현재를 암담해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이 시절보다도, 더 희망이 없던 일제치하였다. 동인 중 하나였던 함석헌의 표현처럼 ‘끌려가듯’ 일본 땅에서 낯선 타자로 살며 바다 건너 조국을 지켜보자니, 젊은 지식인이요 신앙인인 이들의 참담한 마음이 더욱 깊었을 터이다.

“그러므로 걱정을 같이 하고 소망을 일궤에 붙이는 우자(愚者) 5-6인이 동경 시의 스기나미촌에 처음으로 회합하여 ‘조선성서연구회’를 시작하고 매주 때를 기하여 조선을 생각하고 성서를 강해하면서 지내온 지 반년에 누가 동의하여 어간의 소원 연구의 일단을 세상에 공개하려 하니 그 이름을 「성서조선」이라 하게 되도다. 명명(命名)의 우열과 시기의 적부(適否)는 우리의 불문하는 바라. 다만 우리 염두의 전폭을 차지하는 것은 ‘조선’ 두 자이고 애인에게 보낼 최신의 선물을 성서 한 권 뿐이니 둘 중 하나를 버리지 못하여 된 것이 그 이름이었다. 기원은 이를 통하여 열애의 순정을 전하려 하고 지성의 선물을 그녀에게 드려야 함이로다.” (<성서조선> 창간사 중)

그랬다. 주저앉아 울 수도, 숨어 탄식만 할 수도 없었던 조선의 청춘 여섯(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유석동)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두 존재를 삶의 기반으로 양 손에 꼭 쥐고 하루씩 살아냈고, 그 치열함을 글로 담아 조국에 선물했다. 자기 실존 안에서 주체적으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스승 우치무라 간조가 두 개의 ‘J’(저팬과 지저스)를 꼭 붙들었듯이, 조선의 젊은이들은 ‘성서’와 ‘조선’ 그 사이에 어느 하나를 버리지 못하고, 실은 어느 하나를 더 사랑할 수 없어서 두 단어 사이에 ‘와’라는 접속사마저 허락지 않았던 절절한 사랑을 <성서조선>에 담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낭만적일 수 없었다. 때론 폭력으로 때론 회유로, 일제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철저히 막으며 ‘제국’이 만든 동질적 시스템에 굴복하기를 강요하고 있었으므로… 하여 <성서조선> 동인들은 자신들의 외침이 열매 맺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시간이 걸릴 지를 이미 예감했었나 보다.

web-bible-chosun-2“<성서조선>아, 네가 만일 그처럼 인내력을 가졌거든 너의 창간일자 이후에 출생하는 조선 사람을 기다려 면담하라. 상론(相論)하라. 동지를 한 세기 후에 기(基)한들 무엇을 탄할 손가”( <성서조선> 창간사 중).

하루를 버텨내기 힘들었을 그 시절에 김교신과 <성서조선> 동인들은 한 세기 후의 동지를 기다리며 인내했다. 그리고 이제 2015년이다. 김교신이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렸던 우리다. 한 세기 후의 동지들이다. 지금 우리의 시절은 어떠한가?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적 지배로부터는 독립을 하였으되, 금융 자본주의적 질서를 앞세운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새로운 제국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노동 없는 부(副)와 정의 없는 권력이 득세하는 이 세상은 여전히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김교신의 시절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있었다면, 우리 시절에는 갑과 을이 있다. 그 시절에 일본인이 판단하고 조선인이 따라야했다면,

이 시절에는 갑이 판단하고 을은 따라야한다. 꿇지 마라! 자유혼으로 스스로 서라! 우리가 아는 성서의 핵심 메시지는 그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귀한 인간이 어찌 다른 인간들의 판단과 명령에 의해 자기 존엄성을 포기하겠느냐. 혁명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다. 자유를 빼앗기고 존엄성을 상실한 이 땅 ‘조선’에서, ‘성서’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를 새기고 또 새기며 자아의 혁명을 시작하자. 이것이 김교신과 동인들이 <성서조선>을 시작하며 동포에게, 이웃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메시지였다.

“<성서조선>아, 너는 우선 이스라엘 집집으로 가라. 소위 기성 신자들의 손을 거치지 말라. 그리스도보다 외인을 예배하고 성서보다 회당을 중시하는 자의 집에는 그 발의 먼지를 털지어다.” (<성서조선> 창간사 중)

뜨끔할 일이다. 어찌 한 세기전 외침일까. 오늘날 한국 교회를 돌아보아도 ‘성서보다 회당을 중시하는 자’가 넘쳐나질 않던가! 스스로 기도하고 생각하며 팔딱팔딱 오늘로 살아 돌아오는 말씀을 찾아내려는 주체적 신앙 없이, 그저 ‘목사님이 말씀하시길’ ‘전통이 그렇게 가르치니까’ 하며 앵무새처럼 남의 신앙만 반복하는 행태를 향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성서조선>은 ‘발의 먼지를 털며’ 그런 자들과는 관계없음을 선포한다.

“<성서조선>아, 너는 소위 기독신자보다도 조선혼을 소지한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으로 가라, 거기에 나무꾼 한 사람을 위로함으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성서조선> 창간사 중)

성서를 평신도에게 건네기 위해, 이를 금하던 교황청을 피해 다니며 죽을힘을 다해 영어 성서를 번역했던 윌리엄 틴데일은 자신했었다. 불가타(라틴어역 성서)를 독점하고 평신도에게 성서 읽기의 권위를 허락지 않았던 교회를 향하여 당당하게 선포했다. 성서를 모국어로 번역하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달하겠노라고, 결국 시골의 소 모는 목동조차도 교황보다 성서의 핵심 메시지를 더 잘 알게 만들 것이라고! 김교신의 소망이 다르지 않았다. 성서는 중심으로 위로 좁아드는 메시지가 아니다. 변방으로, 지평으로 퍼져나가는 자유의 소리다. 그걸 독점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에 반(反)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건물에 갇힌 교회교인들의 울타리를 넘어 훨훨 날아라. 하나님은 교회보다 크시다!

이 자유의 외침이 선포된 것이 1927년이다. 이 멋진 외침을 외친 산 신앙인들은 백 년 뒤의 동지를 기다렸다. 이들의 메시지가 제국의 기반을 흔든다고 직감하고 1942년 잡지를 강제로 폐간하고 이들을 투옥했던 일본 순사들이 오히려 우리보다 먼저 <성서조선> 젊은 신앙인들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산 신앙이, 민족혼이 백년 뒤, 아니 5백년 뒤에라도 싹틀 기반을 마련하는 ‘고약한 놈들’이라고 말이다. 그 터를 놓은 신앙의 선배 김교신이 우리를 부른다. 기다렸노라고, 얼굴을 마주하자고, 성서를 논하자고… 그의 부름은 낡지 않았다. 시대는 여전히 악하므로… 그러니 응답하라. 2015년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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