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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동성결혼자 축복이 프랑스 교회를 분리시키고 있다

[프랑스시사칼럼]  채희석 목사/ 파리 모두 제자교회 <5>

북미와 서유럽에서 변화되는 사회 추세를 뒤따라, 그 동안 거의 금기 시 해왔던 동성결혼에 대한 개신교 입장이 달라지고 있다. 이런 추세에 부응하여, 올해 5월 17일에 <프랑스 개신교 연합교회> (EPUdF: 구 프랑스 개혁교 및 루터교)의 국가 시노드(Synode: 총회와 유사)에서 동성결혼자에 대한 교회 내 축복을 허용한 것이다

동성결혼에 관한 이슈가 서구 사회에서뿐만이 아니라 서구 교회 내에서도 뜨거운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 매우 오랜 세월 동안, 동성애를 가진 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심지어 몇 해 전만하더라도 법의 처벌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에 대한 상황은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동성결혼이 사회에서 입법화되거나 제도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벨기에 (2003), 스페인(2005), 캐나다(2005), 노르웨이 (2008), 스웨덴(2009), 포르투갈과 아이슬란드 (2010), 덴마크와 미국(2012), 프랑스 (2013), 그리고 올해 5월에 아일랜드 (2015)에 이어, 지금은 독일에서도 논쟁이 점화되었다.

이처럼 북미와 서유럽에서 변화되는 사회 추세를 뒤따라, 그 동안 거의 금기 시 해왔던 동성결혼에 대한 개신교 입장이 달라지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서구국가는 시민결혼은 관할 시청에서 거행되며, 교회는 종교적인 차원에서 이미 결혼한 자를 축복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 동성결혼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어 합법화되지 않으면 교회는 동성결혼자를 축복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일부 개신교회들이 동성결혼을 인정하거나, 그 결과 또는 독립적으로, 주례 또는 결혼 축복을 허용하는 총회 결정을 연이어 하고 있다. 네덜란드 개신교회(PKN) (2004)에 이어, 스웨덴 루터교회 (2009), 스위스 일부 복음주의 개혁교회 (2012), 독일의 일부 랜더 개신교회(EKD, 주로 루터교회), 미국장로교회 (PCUSA, 2014) 등이 교회에서 동성결혼자의 축복을 허용하였다. 이런 추세에 부응하여, 올해 5월 17일에 <프랑스 개신교 연합교회> (EPUdF: 구 프랑스 개혁교 및 루터교)의 국가 시노드(Synode: 총회와 유사)에서 동성결혼자에 대한 교회 내 축복을 허용한 것이다 (참고로, 시노드란 어원적으로 ‘공동의 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찬성 94, 반대 3>이란 압도적인 다수에 의해 통과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프랑스 교회는 몸살을 앓고 있다. 먼저 EPUdF 내에서 분론이 일어나고 있다. 시노드의 결정이 <상징적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동 주제에 대해 논쟁한 것에 종지부를 찍는 듯 했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실제로 지역교회와 지역시노드(노회) 차원에서는 아직도 찬반 격론이 서로 대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 시노드 대의원들이 다양한 전체 교회의 대표성을 올바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거나, 시노드 운영 상 아직 성숙하게 숙고되지 못한 주제를 부적절하게 표결로 결정한 것이라는 비난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더 나아가 시노드 결정 시, 일부 대의원들은 반대 입장을 내기에 자유롭지 못했고, 고통의 표시로 묵비권 행사를 했다는 입장도 나왔다. 동 건에 대한 시노드 결정이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이지만, 그 이후 지역교회 입장은 확연히 분리되고 있다. 이런 결정을 자연스러운 사회적 순리로 받아들이는 교회가 있는 반면, 파리의 벨빌(Belleville)교회, 마레(Marrais)교회 등 비교적 영향력이 큰 교회에서 동성결혼자 축복을 거절하는 입장 표시를 내부적으로 분명히 하고 있다.

또 다른 분론은 다른 교파내지 교단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프랑스 복음주의 총연합회>(CNEF)는 즉시 성명서를 통해, EPUdF의 결정이 <충격적이고…… 일방적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으로 간주하고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동성애 행위와 동성애자를 구별하여, 후자를 혐오하는 것을 배제하면서도, 교회 내 축복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다. 침례교회, 하나님성회, 감리교회, 오순절교회 등 복음주의자들은 실천하는 프랑스 개신교인의 60-70%를 차지하는 떠오르는 개신교 세력으로,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해 성서적으로 다른 입장을 확고하게 갖고 있음을 재 천명하였다.  또 다른 반대파는 천주교회이다. 천주교회는 비록 공식적인 성명을 내지는 않았지만, 개신교회가 보여주는 결혼에 대한 축복과 성례의 혼돈을 우려하고 있다. 왜냐하면 천주교 교리에 의하면, 결혼은 단순한 예식의 문제가 아니고, 교회만이 거행할 수 있는 <성례>(sacrament)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주교 내부에선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소수세력, 예를 들면, 동성애 천주교인 모임인 <다윗과 요나단 동우회>, 여성 지위 향상을 추구하는 <치마 위원회> 등에서는 개신교의 결정을 당연히 환영하고 있다.

사실 동성결혼 문제는, 교회 입장에서 볼 때, 한편으론 극히 적은 비중을 가진 안건이면서도, 다른 한편 근본적인 성찰을 필요로 하는 안건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동성결혼 축복은 전체 결혼의 1% 내외에 불과하다. 반면 결혼 자체가 인류의 공통 관심사이자, 동성결혼이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고, 더 나아가 교회의 역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에 중요하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 사회적 현상, 특히 동성결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동성결혼을 우호하는 입장에선, 교회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율법보다는 은혜를 전파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율법주의를 파하기 위해 돌아가시고, 복음은 긍휼과 자비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예수의 가르침과 복음 정신을 그렇지만, 그것이 반드시 동성결혼자를 축복하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중세교회는 동물이나, 물건, 집, 군대나 대포마저 축복하는 미신을 행하였고, 종교개혁은 이런 예식을 타파하고 기독교 본질로 돌아가되 예식에 대해 절제하자는 운동을 벌인 것이다. 또 한편 동성결혼 축복 찬성자는 일반교회 심지어 개신교회도 사회의 관습과 인식의 변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늦장 대응을 하여 구시대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혼 후 재결혼>, <여성목회자 안수> 등은 오랜 세월 반대하였지만 결국 대부분 교회가 허용하게 된 것처럼 동성결혼자 축복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성결혼 축복 반대자는 교회는 사회 풍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며,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이 시대에 선지자적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과거 유럽에선 교회의 생각이 그 사회의 생각을 주도하였고 교회와 사회의 생각이 서로 유사했지만, 오늘날엔 그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동성결혼을 보다 더 본질적으로 성찰하려면, 결국 <성경>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입장의 차이를 밝혀야 한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자는 교회 안에서 성경의 권위를 강조한다. 우리가 성경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를 판단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우리의 생각에 적절한 구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이 시대의 생각에 저항하고, 필요하다면 우리의 생각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동성결혼 찬성자는 성경은 해석을 통해 이해되는 것이고 시대를 올바로 성경에 비추어 반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성육신하신 예수께서는 그 시대에 창녀를 받아들이시고, 죄인들과 식사를 같이 하시며, 이방인의 믿음을 칭찬하셨듯이, 그 시대의 규범에 비해 훨씬 포괄적이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동성결혼 반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 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의 태도를 배우고 영감을 받아야 하겠지만, 예수께서 죄인을 영접하신 것은 그들이 변화되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세관원이 이기적 삶을 떠나게 하시고, 눈물로 그의 발을 씻는 창녀에게 용서를 선포하시고,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정죄하지 아니 하시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새 인생 방향을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모든 자를 받아주셨지만 복음이 요구하는 것과 타협하지는 않으셨다. 드물지만, 예수께서 결혼에 대해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결혼이란 “사람이 그의 부모를 떠나 배우자와 결합”하는 새로운 세대 형성임을 언급하셨다. 우리는 이런 진실을 혼돈되게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밖에 동성애자에 대한 목회적 돌봄과 치유의 면에서도 입장이 서로 다소 다르다. 핵심적인 것은 기독교인 또는 교회가 동성애자 및 동성결혼자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는 한 마디로 <진리와 사랑>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가 단순히 성경에 기초하여 입장을 취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또 당사자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씀하시며, 거룩함이 다른 자를 거절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신 주님을 끊임없이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동성결혼의 문제를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볼 것이냐, 아니면, 어려움이 없을 순 없지만, 말씀의 권위를 존중하여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둘 중 하나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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