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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크시론

모멘텀을 바꾸는 감천(感天)의 기도

[유크시론 166호]  이창배 발행인

화려한 성공과 성장, 번영주의가 몰고온 뜬구름 잡기 식의 허영과 사치, 교만에 물든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숨겨졌던 문제들이 여기저기 봇물터지듯 나타나고 있다. 교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제는 그 모멘텀을 바꿔야 할 때이다.

7월, 이 어두운 밤으로부터 벗어나 동녘이 밝아오기만하면 아침이 되듯이 어둑해진 6월의 막바지에 와있다. 달력에 남겨진 며칠이 왠지 떼를 쓰며 물러나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6월이 가면 올 한해가 벌써 반환점을 돌게 된다니.  

최근 다시 읽게 된 세익스피어 희곡 “한 여름 밤의 꿈”1막, 1장 아테네. 시시어스의 궁전에서의 대사 가운데,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아테네법에 따른 죽음이냐, 영원히 독신으로 살아야 하느냐 하는 갈등을 마주하게 된 연인, 라이센더와 허미아는 결국 사랑의 도피를 결정하고, 아테네를 떠나자는 약속을 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연인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라이센더] 아니면, 마음대로 선택해서  결합하더라도, 전쟁이나, 죽음이나, 질병때문에, 사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거야, 소리처럼 하염없이, 그림자 처럼  빠르게, 꿈결처럼 짧게, 일순간, 하늘과 땅을 밝게 비추더니, <저것 봐!> 하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번쩍이는 번개는 어둠의 턱주가리속으로 빨려들어가, 아름다움은 순식간에 멸망하는 법이지.

[허미아] 진정한 사랑이 끊임없이 방해를 받는다면 그것은 요지부동한 운명의 법칙이죠. 그렇다면 고민하는 우리 마음에 인내를 가르킵시다, 방해받는 일이 사랑의 일상사라 한다면, 고통은 사랑과 함께 있는 법, 그리움도, 꿈도, 한숨도, 희망이나 눈물마져도 가련한 사랑의 동반자들이군요.

사랑의 고귀함과 함께 그 사랑의 대상을 위한 일편단심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등장인물들 간의 내면적 갈등과 시기, 심리적 묘사를 주고받는 대화 문장의 탁월함과 기교 그리고 섬세함으로 채운 대문호 세익스피어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진정한 사랑에는 고통이 따르고, 그 고통에는 마땅히 치를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단호하게 내리는 결론적 선언처럼 결국 이 희곡의 클라이막스는 여러 방해와 갈등, 위기를 물리치고 각자의 짝과 맺어지는 해피앤딩으로 끝을 맺는다. 그 얽혔던 복잡함과 혼동스러움을 마치 한여름 밤에 꾸었던 꿈으로 여기면서.

재앙 앞에 서있는 우리의 자화상
근간, 우리 민족은 근래에 드문 두려움과 고통의 시간을 맛보고 있다. 메르스(MERS)라는 중동호흡기증후군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그 전염으로 온나라 안팎에서 떠들썩거리며 연일 뉴스미디어를 지켜보아야 했다. 시시각각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메르스(MERS)에 노출되고, 감염될까 하는 것에, 그 숫자의 증가와 사망자 관련 보도가 쏟아져 나올 때마다 가슴을 졸였다. 다행히 이쯤에서 수그러드는 모양새라 한결 마음이 놓이기는 하지만.

그런가하면 수량이 풍부하던 소양강댐의 맨바닥이 들어날 정도로 가뭄이 심각한 상황이라 또 염려와 걱정이 서린다. 비가 내리지 않는 이상기후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직면한 일은 아니지만, 지구촌의 빈번한 지진, 화산 등 자연재해와 맞물리면서 이러한 일들이 범상치 않은 현상임에 우려심이 증폭되는 중이다.

이어령 교수는 이러한 혼란과 불안한 징조들을 마주 대하면서 자신의 소원시 “날개”(메르스의 환난 중에)를 발표했다.

벼랑 끝에서 새날을 맞습니다./ 추락을 이겨 낼 날개를 주소서./ 힘겹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고/ 아무리 위험한 전란의 들판에서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우린 남들이 앉아 있을때 걷고/ 그들이 걸으면 뛰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여기서/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 수출액이 5000억 달러를 넘어서도 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만 보다가/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정치의 중심이 조금만 더 기울어도,/ 경제의 틀에 구멍하나만 더 생겨도,/ 법과 안보의 울타리보다 겁 없는 자들의 키가 한치만 더 높아져도,/ 그때는 천인단애의 나락입니다./ 비상(非常)은 비상(飛翔)이기도 합니다.
싸움밖에 모르는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친 서민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십시오./ 주눅 들린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의 비행을 가르쳐 주시고,/ 진흙 바닥의 지식인들에게는/ 창공 높이 나는 종달새의 날개를/ 보여 주소서./ 그래서  날게 하소서….(중략)

모멘텀을 바꿔야 할 때
화려한 장미꽃 뒤엔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져 있듯 축복에도 그만한 댓가도 따르는가 싶다. 마치 세익스피어의 글, 허미아의 고백처럼 “진정한 사랑이 끊임없이 방해를 받는다면 그것은 요지부동한 운명의 법칙이죠.”란 대사가 마음에 어른거린다. 과연 그럴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경은 무어라고 말씀하는가? (대하 7:13-14절을 보자.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 말씀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솔로몬 시대의 서막에 하나님이 솔로몬의 기도에 대해서 응답해주신 말씀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오늘날 동일한 상황으로 이끌어 적용하기는 분명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음미해 볼 필요성 만큼은 충분하다. 어떤 징조로 받아들일 수 있기엔 요사이같은 우리의 처지가 더욱 그렇지 않은가.

어쩌다 이러한 생각의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지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사연이 깔려져있다. 화려한 성공과 성장, 번영주의가 몰고온 뜬구름 잡기 식의 허영과 사치, 교만에 물든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숨겨졌던 문제들이 여기저기 봇물터지듯 나타나는 것이다. 교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제는 그 모멘텀을 바꿔야 할 때이다. 갈등과 시기, 무조건적 반대와 정쟁, 흰소리를 멈추고, 진정한 사랑, 그 사랑의 대상을 위해서 치를만한 댓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교회들이여, 이땅과 세계에 흩어져있는 디아스포라들이여, 기도하자. 조국교회와 민족을 향해 우리의 기도를 회복하자. 그리고 참 사랑을 회복하자. 우리가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어긋난 욕심과 정욕을 버리도록, 우리 기도가 감천(感天)이 되도록 두손을 모으자.

이달의 말씀 |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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