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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사도바울이 순교 당한 자리 오스티아 <2>

[로마칼럼]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트레 폰타나/ 로마시대 항구가 있던 오스티아(Ostia)로 가는 길목에  세 분수(Tre fontana) 수도원으로 불리고 있는 사도 바울의 순교지가 있다. 그 이유는 바울의 목을 쳤을 때 떨어진 목이 세 번을 튀었고 그 튀어 오른 자리마다 샘이 터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딤후4:19-13을 묵상하며 : 디모데의 헌신

디모데가 드로아 가보의 집으로 가서 스승이 맡겨둔 땀에 젖은 낡은 겉옷을 가지고 로마까지 오는 데는 수많은 날들이 요구되었습니다. 수일을 지나 배가 나폴리 근교인 보디올(행28:13,현Pozzuoli)에 하선하여 아피아(Appia) 길을 따라 로마까지의 거리도 200Km나 됩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데에는 일주일 이상이나 걸립니다.  그 먼 길을 스승의 땀내로 절어버린 겉옷을 품고 로마를 향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바울이 갇혀있는 로마의 감옥은 우기 철이 되어 을씨년스럽고 싸늘함이 옷깃을 여미게 했습니다. 특히 로마의 감옥은 대체적으로 지하에 있고 돌로 축조되었기 때문에 우기 철에는 냉기가 뼈 속까지 시려옵니다. 고로 젊은 사람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여름옷을 입은 늙은 바울은 견디기 심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참다못한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인편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디모데가 건강하지 못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바울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 로마까지는 너무 먼 길이라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찾아 로마로 가지고 오라고 당부하는 바울의 심정은 어떠했을 까요? 특히 겉옷은 값나가는 비싼 옷이 아닙니다. 값 비싼 밍크코트나 질감 좋은 가죽으로 만든 무스탕 같은 옷이 아닙니다. 단순히 담요 같은 것에 구멍을 뚫어 덮어쓰는 투카로 로마의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겨울옷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있는 있는 바울에게는 그런 옷조차 없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 누구 한 사람 방한복을 넣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죄수로 로마에 올 때는 약50Km나 떨어진 삼관까지 마중을 나와 환영했던 로마 교인들이었습니다. 삼관은 현재 로마의 남쪽 치스떼리나 디 라티나(Cisterina di Latina)라는 지역으로 로마에서 보통 이틀 정도 걸어가야 당도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당시의 로마 교회 성도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쟁쟁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이 안부를 전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스다구는 로마의 황족이요,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이란, 헤롯의 손자 아그립바 1세의 형제 관계에 있던 아리스도불로가 죽자, 글라디오 황제의 집으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나깃수의 권속에게 문안하라고 했는데, 이 나깃수는 글라디오 황제의 비서가 된 사람이요, 주인 나깃수가 죽자 그를 섬기던 사람들은 네로 황제의 가계로 들어왔습니다. 이 외에도 당시 로마교회에는 탁월한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로마교회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을 받고 돌아온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자생적 교회입니다. 바울이 회심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울을 이미 알았고 그를 하나님의 귀한 종으로 여겼기에 그가 죄수로 로마로 올 때 열렬히 환영을 했던 것입니다.

일찍이 겐그리아 교회의 여집사 뵈뵈 편에 받은 로마서를 통해 바울의 사도됨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차 끌려와 투옥된 지금 어느 누구도 옥에 있는 바울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물론 중죄인이라는 죄명과 함께 사형 당할 처지였기 때문에 바울에 대한 감시가 삼엄했습니다. 구금생활을 했던 지난 번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잘못하다가는 같은 당으로 몰려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인들은 두려움에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다 나를 버렸다>고 씁쓸하게 고백했습니다(딤후4;16).

사랑하는 데마까지 신앙을 버리고 고향 데살로니카로 훌훌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철저히 홀로된 바울, 전에는 바울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가까이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늙은 몸으로 깊은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동정하고 아파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영치금을 넣어주기는커녕, 방한복 한 벌  입지 못하고 한기에 덜덜 떨고 있는 바울, 어쩌면 이것이 목회자가 걸어가야 할 마지막 길인지 모릅니다. 이런 길을 우리 주님도 공생애를 통해 경험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잡히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쳤습니다. 두려워 멀찍이 따라오던 수제자 베드로조차 대 제사장의 종이 그를 알아보고 너도 예수의 함께 있었다고 하자 저주하며 맹세하기 까지 주님을 부인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이 이 땅에서 배반당하고 살갑게 하던 성도들이 떠나는 것은 정상적인 일입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보너스>를 받은 목회자입니다.

그런 대접에 지나치게 박수를 치지 말아야 합니다. 정상적인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떠난다고 실패의식을 갖는다던지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디모데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 까요? 멀리 떨어진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디모데는 위대한 스승 바울의 마지막 편지를 받고 인간적으로 얼마나 깊은 울음을 울어야 했을까요. 속히 오라는 편지를 받고 디모데는 당장 떠날 준비를 하고 드로아로 갔습니다. 고독한 스승 바울을 만나보기 위함입니다.

에베소에서 드로아 까지는 80 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드로아는 호메로스가 노래한 트로이 입니다. 요즈음에는 자동차로 1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겠지만 2천 년 전에는 며칠을 걸어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또한 디모데가 드로아 가보의 집으로 가서 스승이 맡겨둔 땀에 젖은 낡은 겉옷을 가지고 로마까지 오는 데는 수많은 날들이 요구되었습니다. 수일을 지나 배가 나폴리 근교인 보디올(행28;13,현Pozzuoli)에 하선하여 아피아(Appia) 길을 따라 로마까지의 거리도 200Km나 됩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데에는 일주일 이상이나 걸립니다.   

그 먼 길을 스승의 땀내로 절어버린 겉옷을 품고 로마를 향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소천하신 어머님이 남겨두신 옷을 가슴에 품어본 일을 기억했습니다. 그 저고리를 품에 안고 어머님의 냄새를 오랫동안 맡아보았습니다. 아마도 디모데도 비슷한 행동을 취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도 여행으로 땀에 밴 믿음의 아버지 옷입니다. 아시시에 가면 성 프랜시스가 입었던 누더기 옷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옷도 그 비슷하지 않았을 까 생각합니다. 옷에 밴 스승의 체취는 디모데로 하여금 전도자의 길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랜 날들을 달려 디모데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스승 바울은 이미 순교 당하고 꽤 많은 날들이 지난 때였을 것입니다.

네로는 당시 상황에서 바울이나 베드로로 하여금 변명할 기회를 줄 수 없었고 며칠 내로 죽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네로는 이십대 후반이었으니 무슨 철이 있었겠습니까?

디모데는 스승이 남긴 옷을 품에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을 것입니다. 스승이 가시는 마지막 길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회한,  스승이 주님의 소명을 이루고 떠나기 얼마 전까지도 겨울이 오는 길목인 우기 철에 감옥에서 추위에 떨도록 방치했다는 자괴감으로 말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이 험한 길, 순교의 자리로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오라고 당부합니다. 그곳은 두렵지만 목회자가 피해서는 안 되는 영광스러운 자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길을 쫓아가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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