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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크시론

곧 14주년, 15주년 분수령 향한 첫걸음

[유크시론 167호]  이창배 발행인

창간14주년 한달을 앞두고…

매년 일차 겪게 되는 일 가운데 다음달로 어느덧 본지 창간 14주년을 맞게 된다. 차곡차곡 쌓여지는 세월의 흔적이다. 14년, 167개월, 그리고 그 준비과정의 2년 여를 더하면 필자가 독일에서의 산 세월의 거의 다라고 할 만하다. 그 동안 본지를 발행하기 위해 골몰했던 한달 한달이 그렇게 쌓이고 또 쌓여서 각별한 추억으로 남았고, 깊이 새겨진 발자국처럼 각인된 기억이 선명하게 찍혔다.

화창한 여름, 구름 한점 보이지 않는 파란 하늘이 우주를 향해 뻥 뚤린 듯 무엇하나 막힌 곳이 없어 보인다. 오후 2시가 넘어가는 이 시간, 섭씨 30도를 훌쩍 넘긴  뜨거운 날씨와 함께 8월이 됐음을 실감케 된다.

고맙게도 3년 전 오늘과 같은 날, 페이스북이란 쇼셜네트워크에 올렸던 한장의 사진이 뜬끔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다시금 기억 속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마치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기억의 단편을 흔들어 깨운 것이나 다름 없다. 그 사진 한장을 통해서 3년 전 그날 멀리 스페인 마드리드의 어느 거리, 한 버스정류장 너머로 보여지는 건물에 부착된 온도계의 표시가 섭씨 53도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을 리마인드 해줬다.

그러고보니 그렇게 뜨거운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고, 오늘 뉴스에 보니 이란의 어느 지역은 체감온도(열파지수)가 화씨 165도(섭씨 73.3도)의 기온을 기록했다는 보도도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비하면 이곳에서의 더운 날씨는 선선한 늦봄 날씨쯤 되질 않겠는가? 생각해 보니 지금껏 덥다는 느낌이 금새 사라지고, 어느새 시원함이 피부에 닿는 것만 같다.

아니게 아니라 독일의 날씨는 그늘에 들어서면 서늘해진다. 건건한 기후라서 습도를 거의 느낄 수 없으니 이 날씨만으로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또한 이곳이 아닌가 싶다. 오늘 받아 든 참 친절하고도 정확한 서비스 덕분에 조금 덥다고 투덜댈 마음이 사라지고 그 틈새를 감사한 마음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다. 자기 자신에게 둘러쌓인 환경만 바라보면 울창한 숲 밖에는 보이질 않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조금만 벗어나와 조금은 멀리서 바라볼 수 있다면 분명 나무도 보이게 될 것인데 그럴 생각을 가지질 못하는 경우이다.

사실 적잖이 이런 말을 종종하거나 듣게 된다. “그는 숲만 보고 그 안에 있는 나무는 보지 못한다.”(He can’t see the trees for the forest) 아니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다.” (He can’t see the forest for the trees.)  같은 사물을 공유한 환경을 살면서 어떤 부분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표현이다. 그렇다고 어떤 편을 택해 살라는 양자택일식은 더더욱 아니다. 적절히 가까이 볼 것과 멀리 볼 것을 구별해 살 수 있다면 한결 건강한 삶이 되질 않을까 싶다.

한 달 앞둔 창간 14주년 되새기며

매년 일차 겪게 되는 일 가운데 다음달로 어느덧 본지 창간 14주년을 맞게 된다. 차곡차곡 쌓여지는 세월의 흔적이다. 14년, 167개월, 그리고 그 준비과정의 2년 여를 더하면 필자가 독일에서의 산 세월의 거의 다라고 할 만하다. 그 동안 본지를 발행하기 위해 골몰했던 한달 한달이 그렇게 쌓이고 또 쌓여서 각별한 추억으로 남았고, 깊이 새겨진 발자국처럼 각인된 기억이 선명하게 찍혔다.

문서라는 속성 상, 인쇄물로 나온 다음에는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자료로 남겨지게 된다. 매번 발행된 신문을 한장씩 들출 때마다 때론 기쁨도, 실망도, 수치스러움도, 흥분 됨도 골고루 맛볼 수 있다. 이것들을 고스란히 끌어안으며 생애가 끝나는 그날까지 가야한다는 숙명에 대해서 어쩌다 이런 일을 끌어안게 됐는지 어렴풋 후회스러움도 스쳐지나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때문에 윤동주의 서시처럼 죽는 그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를 수도 없이 마음속에 되뇌이며 산다. 이것이 나의 달려갈 길인 것을…

그렇지 않아도 앞으로 창간 15주년을 맞이하는 내년 2016년에는 나의 삶과 신문을 통해서도 어떤 분수령을 맞이해야 할때라는 생각이 오랫동안 머리속에 맴돌고 있었다. 어떻게 창간 15주년의 해를 정리할 것인가를 마음으로 그려오고 있었는데, 어느덧 그날이 다가온다니 마음이 떨려온다. 아마도 이제부터 그 일을 위한 청사진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나니 벌써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사실 지난 달까지 이제껏 발행해 온 166호의 지면만으로 본다면 무려 5천 2백여 페이지에 달하고, 내년 창간 15주년까지를 합산해 보면 거의 5,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다. 이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고, 유럽에 진출한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뜻에 어떻게 쓰임을 받고, 또는 어떻게 사용이 되어졌는지 그 자취들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요긴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 엄청난 분량의 작업을 하는 것이 하루 아침에 될 것도 아니고 여러 준비과정과 이 일을 돕는 이들의 협력도, 물질적인 재정의 공급도 필요한 일이라서 기도하며 뜸을 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이 일에 주님의 허락하심이 있다면 능치 못 할 것이 없음을 믿는다.

일년 준비할 창간 15주년 첫걸음

오늘날 우리들은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간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전통적인 종교, 전통, 사회, 권력, 부, 지식, 명예 등 가장 고상한 가치로 여기고 살아왔던 모든 전통적 가치관을 부정하거나 해체시킨다. 그리고는 인간의 “기분 또는 느낌”이 우선되어 좌절, 슬픔, 고통, 지겨움이 없는 즐겁고, 기쁘고, 쾌락적 삶을 살고 싶어하도록 교육하고, 그런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라고 부추긴다. 결국 이 시대의 아이콘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이 가장 멋진 삶이라는 바탕에서 만들어진다. 곧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던 쾌락주의를 불러일으키는데, 단순히 음식, 유흥 그리고 사고 싶고, 가지고 싶은 물건들로 그 범위가 제한되지 않는 모든 삶의 영역이 바로 쾌락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우리의 싸움은 영적이며, 이러한 시대적이고 사상적인 조류이다. 온갖 종류의 즐거움에 탐닉하거나, 빠져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야말로 텅빈 가슴과 텅빈 영혼과 텅빈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살아간다란 표현이 떠올려지는 것도 이런 연유다. 이러한 쾌락주의 사조가 도덕과 윤리에도 깊게 배였음은 물론하고 교회 안에서도 드러난다.

이것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느끼고 싶어하는 대로, 자기 만족감을 중시하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가자는 요구이다. 여기에 함몰되면 곧 교회가 무너지는 것이지만 정말로 두려운 것은 점점 세상문화 그 엄청난 조류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름지기 이런 시대적인 조류에 함몰되지 않는 등대역할을 감당할 정론이 될 것을 다시금 다짐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치열한 전장과 다를게 없다. 본지의 이 시대적 영적 사명을 위해 독자들과 교회의 성원과 기도를 부탁드린다.

이달의 말씀 | 이사야 44: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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