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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저널

자코보 바사노 작품, 갈보리 산으로 가는 길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수마을커뮤니티교회 담임/ 4회

Jacopo Bassano (자코보 바사노) 작품 소개

정치와 신앙…

자코포 바사노가 그려낸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오르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 아니다. 전혀 다른 복장의 젊은이가 줄을 매어 십자가를 리드해 가는 그의 종아리 근육… 그가 힘쓰는 것이 없음에도 힘을 다해, 마치 자신이 십자가를 이끌고 가는 듯 한 인상을 화가는 그려낸다. 순수 신앙이 정치에 이용당하는 것을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장면인 것이다.

정치적 예수
인간은 종교적 규율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믿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규격 화 된 종교의 틀에 얽매이지 아닐지라도, 개인적인 신앙을 종교라 부를 수 없는 것뿐이지 인간은 무엇인가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땅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피조물 중에서 인간만이 유독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미래를 걱정하고, 미래를 위해 현실의 삶을 희생하며 준비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이 뛰어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인간은 종교를 만들어 내고 그 종교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실상은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현실의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의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 의미가 바로 마태복음6장34절에서 말씀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종교의 순수 의미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그 사람이 조물주 하나님과 거룩한 사귐을 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하늘의 선물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종교는 의식이 아니라 삶의 형태여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소금으로서, 빛으로서의 삶인 것이다. 현실의 삶에서 소금이 되는 것이고 빛이 되는 것이다.

소금은 지극히 작은 양으로도 맛을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썩음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빛 역시 그러하다.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이 있다는 것은 빛의 부재일뿐이다. 빛이 밝혀지는 순간에 어둠은 물러가기 때문이다.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은 주어진 삶의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소금으로 녹아지고 빛이 되어 세상을 비추며 살아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이다.

내 방식대로 삶을 살고, 일정한 시간에 종교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이 집단화 되면 종교적 힘을 이용하여 정치와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 좋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러한 잘못된 신앙관행은 종교적 집단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인 힘의 도구로 사용해 온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언덕을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 라 한다. 십자가의 무게는 대략 80KG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잠깐은 짊어 매고 갈 수 있지만 채찍을 맞으면서 언덕을 장시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간에 주님은 십자가 중량에 짓눌러 넘어지셨다. 채찍에도 일어설 기력이 없으셨다.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던 구레네 사람 시몬(눅23:26)에게 강제로 십자가를 지게 했다. 예수님 대신 그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정상까지 오른 것이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십자가를 지기 전까지는 예수를 알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단지 십자가 처형장의 구경꾼에 불과했다. 그 누구도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막중한 십자가가 일개 평범한 사람인 구레네 시몬이 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훗날 시몬은 주님의 제자가 된다. 구레네 시몬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국민과 국가를 위한다거나, 소속된 단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가 바로 여기로 부터 시작된 것이다.

주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질 것을 부탁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이 져야 할 십자가는 주님이 지신 물리적인 십자가가 아니다. 제자들이 져야 하는 십자가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와는 정 반대 개념이다. 죽음의 대명사인 주님의 십자가를 종교적으로 흉내 냄이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 생명을 얻으며, 그 생명을 나누는 삶이 바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모습인 것이다.

자코포 바사노(Jacopo Bassano, 이탈리아 1515-1592)의 유화 갈보리 산으로 가는 길 (The Way to Calvary) 명화 앞에 선다. 그가 그려낸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오르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의 장면을 역사성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자코포가 가지는 신앙과 당시 교회의 정치적인 힘에 의해서 그려진 것이다. ‘갈보리 산으로 가는 길’의 그림은 1545년 경 완성된 것이며, 그의 나이 서른쯤에 그려진 것이다. 순수 자기감정이 이입되어 그려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힘의 논리에 굴복 당하여 그림을 그린 것이다.

자코보의 그림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넘어지셨을 때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는 과정과 그를 따르는 마리아와 다른 여성들의 애절함과 군중을 막아내려는 군사들의 용트림이 한 군사의 등 근육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그렇게 소란스럽고 비통한 현장에서 고요하게 눈물을 닦는 수녀 복을 입은 여성은 베로니카(St. Veronica)다. 내 시선이 머문 곳은 현장과는 전혀 다른 복장의 젊은이가 줄을 매어 십자가를 리드해 가는 그의 종아리 근육이다. 그가 힘쓰는 것이 없음에도 힘을 다해, 마치 자신이 십자가를 이끌고 가는 듯 한 인상을 화가는 그려낸다. 순수 신앙이 정치에 이용당하는 것을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장면인 것이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그는 상당한 권력자였을 것이다. 그가 이끌고 가는 십자가는 국가요 민족이었음을 주장할 것이며, 당시 시대적 문화였을 것이다. 주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역사적 현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오직 예수를 따르는 군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교회가 예수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내가 속한 교회 이야기인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군중들은 세상의 정치와는 무관해야 한다. 그를 따르며, 그의 가르침을 받고 주어진 환경과 상황 속에서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주님이 당부한 십자가를 지는 신앙 행위일 것이다. 내가 져야 할 십자가는 사회적 희생의 장식품이 아니라 개인 구령인 생명을 얻기 위한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의 정신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섬기며, 소박하지만 만족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십자가 정신인 것이다. 십자가 정신은 화려하거나 종교적, 정치적 장식품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죽음으로써 생명을 주신 숭고한 창조주의 피요, 눈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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