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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크시론

잘못된 한 아이(i), 문제인 세 아이(i)

[유크시론 169호]  이창배 발행인

이 시대를 읽는 눈, 복음으로 세상을 보자

교회를 향한 세상의 불신과 비웃음과 조소가 어느 누구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는 것만으로 오늘날 모든 교회가 시대적인 위기를 극복해 갈 수 없잖은가? 도덕성이 무너지고, 윤리가 사라져가는 이 세대를 조장하고 있는 그 핵심이 무엇인가? 곧, 여전히 우리 안에서도 꿈틀대는 기형적인 아이(i)의 문제임을 바로 보자.

30대의 젊은 목사에게서 “차세대를 이해하자” 라는 내용의 강의를 들었는데,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차세대를 가리켜 “아이(i)세대” 라고 한다는 정의였다. 말 그대로 요즘 아이들은 나밖에 모른다는 이야기인데, 듣는 바 공감이 컸다. 그런데 사실은 어린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시대 우리들 모두가 바로 아이(i)라는 코드 속에 함몰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을 통해서 살펴보건데 가치판단의 모든 기준이 바로 아이(i), 곧 “나”위주가 아닌가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 누가 뭐래도 내가 좋은 것이 진짜 좋은 것이고,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하단다. 내가 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게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단다.

그 대표적인 아이(i)가 드러나는 곳이 어디일까? 스마트폰과 테블릿이다. 손가락으로 쓸어버리는 것에 따라 수없는 내용들이 빗자루에 쓸리듯 넘어간다. 그러다가 내 맘에 드는 어떤 앱에서 멈춰지고 클릭을 한다. 그러니까 요즘 세상은 내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만 보고, 불필요한 것에는 애착을 두지 않는다. 쉽게 버리고, 넘기고, 아쉬워하질 않는다. 게다가 수많은 게임이 쏟아지고 있다. 주인공이 된 아이(i)가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가차없이 없애야 하는 이러한 게임들의 양상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모른다. 단적으로 생각과 인정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몰두해 희열을 느끼고, 재미를 붙이다보면 언제인지 모르게 충동적으로 현실과 가상현실 세계를 분간하지 못하고 얼마든지 비인간화 될 수 있다는 사례들이 세상의 뉴스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지난 10월 1일, 미국의 오리건 주 포틀랜드로부터 남쪽 으로 약 300km 떨어진 소도시 로즈버그의 엄프콰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범인을 포함해 13명이 숨지고 약 20명이 다쳤다. 20세 남성이자 학생인 범인은 사건 현장에서 경찰관들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사망했는데, “더 많이 죽일수록 유명해진다”는 글을 남겼고,‘종교를 싫어하는 모임’이란 온라인 상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머서는 실제로 기독교 신자들을 골라 총격을 가했는데 당시에 다친 학생 아버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범인이 ‘너는 기독교도이니까 1초 안에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뒤 총을 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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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한 아이(i)
이 사건도 잘못된 한 아이(i)가 문제임이 분명하다. 오늘날 현대는 과학기술의 시대요, 한편으로는 인간성을 상실한 비관적 세대이기도 하다. 고귀한 인간의 존엄성을 무차별 파괴하는 그런 시대에 직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영어로 쓰리 아이(three i) 프로블럼이라는 말이 있다. 조금 비약한다면, 아이(i) 셋이 문제이다. 이것은 아이(i)자로 시작되는 세 단어를 두고 하는 말인데, 첫째가 아이큐(I.Q.),  둘째가 인더스트리(industry),  그리고 셋째가 인스턴트(instant)이다.

첫째 아이큐(I.Q.)란 지능지수를 말하는데, 오늘날 사회는 여전히 아이큐에 대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누가 더 똑똑한지로 사람을 평가한다. 정해진 시간에 누구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지를 테스트해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지극히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선호된다. 오히려 천천히 깊이 생각하고, 오래 생각하는 데에서 창의력도, 능력도, 지혜도, 발명도 나온다. 하지만 인간성과 인간 됨됨이와, 인간의 도덕성이 무시당하고 오직 머리 회전, 기억력만으로 인정받는 시대에 어떤 소망이 있을지 그게 걱정이다.

둘째는, 공업(industry)화이다. 이 공업화라는 것이 결국에 와서는 자연을 파괴하고, 생태계까지 파괴하고 있음이다. 근간에는 인간의 두뇌도 기억을 거부한다는 과학매체의 보도도 있었던 것처럼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두뇌에 정보를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스마트폰을 열면 그 안에 모든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 스마트폰이 없을 때 사람들은 머리가 멍청해졌다고 불평을 해댄다. 이와 같이 정신력의 빈곤, 정신 세계에 대한 무관심,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공업(industry)화 시대가 낳고 있는 병폐들이다.

셋째는, 인스턴트(instant)화이다. 정작 인스턴트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 진짜를 잃어버렸다. 정성도, 기다림도, 사라져 간다. 최근에는 3D 프린터가 나와서 노동력을 대치해 가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결국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하고, 연구하고, 실험하고, 실패를 거듭해가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인내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책장을 한장씩 한장씩 넘기며, 메모하고, 밑줄을 치는 것이 과거의 패러다임이 됐다. 얼마나 편안한 세상이고, 좋은 세상이 됐는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이런 문명의 이기들이 가져다 준 결과에 있어서는 찬동할 수 없다. 오히려 진정 잃어버린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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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인 세 아이(i)
이 세가지, 쓰리 아이(three i)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따르는데 모든 범위에서 가급적 급하게 처리하겠다는 시간의 재촉 곧, 빨리 빨리가 공통점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밤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에 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지구를 넘어 화성에 두고, 그 이상 확장된 명왕성 넘어 아득한 우주세계에 관심을 두게 됐으니 “달아 달아, 둥근달아~” 하던 정겨운 고백과 동심을 읊조아리는 풍류의 아름다움은 저만큼 물 건너 간 것인가?

이런 시대적 코드에 교회가 함몰되어진다면, 결국 오래 지속되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지루해하는 날이 속히 올지 모른다. 이 문명의 쓰나미 현상 앞에서 교회는 이러한 질문을 수없이 받고 있다. 속수무책이냐? 대안이 있느냐? 적어도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게 기적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들은 나, 아이(i)를 위해서, 세 아이(i)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바 되어 살아가는 이 세대를 해방시키기 위한 선교전략을 짜내야 한다. 여기에서 어떻게 교회의 미래를 계발해 갈 것인가? 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머리를 맞대야 할 때이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불신과 비웃음과 조소가 어느 누구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는 것만으로 오늘날 모든 교회가 시대적인 위기를 극복해 갈 수 없잖은가? 도덕성이 무너지고, 윤리가 사라져가는 이 세대를 조장하고 있는 그 핵심이 무엇인가? 곧, 여전히 우리 안에서도 꿈틀대는 기형적인 아이(i)의 문제임을 바로 보자.

이달의 말씀 ㅣ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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