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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노동법은 노동자 자신을 위한 것이다

[포커싱 프랑스] 채희석 목사/ 파리 모두 제자교회 – 8회

프랑스 노동법의 기본 정신: 프랑스 정부의 기본 방침…

“노동법의 근본 원칙을 분명히 제시하되, 정부의 시행령과 같은 법률은 가능한 줄이고, 노동시장에서 노사 간의 유연한 협상에 더 많은 비중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사회적 규범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은 일과 연관되어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야기되는 커다란 이슈의 대부분은 근본적으로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학을 졸업한 수 많은 청년들이 취업을 못해 꿈을 실현해야 할 젊은이들이 실의에 빠지곤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주역인 5-60대들도, 왕성한 의욕내지는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틀 밖으로 내몰리며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령화 사회에서 그들은 불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여성의 높은 교육수준과 사회참여가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여성근로자에 충분한 사회보장제도 및 안전 장치의 결여로 직장과 가정을 동시적으로 꾸리기 매우 어렵다. 많은 노동자들은 자유로운 직장 선택과 안정된 보수를 얻는 기쁨보다는 직장 자리 지키기에 급급하다. 비정규직이나 알바생은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희생을 강요 당하며 일하곤 한다. 노동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실업 상태가 만연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노동세계는 심각한 부조리 속에 신음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더 나아가 노동의 본질적인 가치마저, 자본과 기술의 힘 앞에서, 저평가되고 있어 우리 사회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게 한다.

일이란 무엇인가?
일은 – 여기서 일이란, 보수를 받고 하는 일, 무보수로 하는 일, 또는 자원봉사로 하는 일 모두를 포괄한 개념 –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와 같은 유럽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일하는 것 자체를 높이 평가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에 대해 제도적 보호가 잘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일 자체에 어떤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드물다.  그들의 대부분은 일을 마지 못해 하거나, 일 자체는 힘들지만 생활을 위한 경제수단 정도로 여긴다. 기독교 신앙을 지닌 자들도 삶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돌이켜 생각해 볼만한 여유가 없다. 하지만 일에 대한 가치는 취업을 번번히 못하거나, 실업을 당하는 경우 갑작스럽게 실감하게 된다. 해고를 당하거나, 장기 병가휴직을 할 수 밖에 없거나, 조퇴나 명퇴를 강요 받는 경우, 그 어느 때보다 일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실업에 따른 심리적 충격은 경제적 손실을 넘어서 삶의 존재에까지 큰 타격을 주기에 일이 주는 가치란 단순한 경제 문제 이상의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일이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일을 왜 해야만 하는가? 먼저, 일이란 사람이 의식주의 삶을 정상적으로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을 얻기 위해 행해진다. 또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도 하며, 인생의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기도 하며, 또 자신의 정체성을 갖게 해준다. 더 나아가 사람은 일을 통해서 끊임없이 사회에 기여하는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나 소속감을 찾게 해준다. 또 사회나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는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일을 통해 지역개발, 경제성장을 이루어 지역과 국가 발전에 기여를 한다. 이처럼 다양한 차원에서 일을 통해 우리는 매일 매일 자신과 소속된 기관의 역량을 보여 줌으로써 무언가를 성취하고 있다는 확신감을 갖는 것이다. 그런고로 일이란 인간 개인과 사회 활동의 가장 본질적 것을 구성하고 있는 만큼, 누구나 일을 할 수 있고 정상적인 대가를 받으며, 안정적인 조건에서 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의 공정한 간섭과 보호가 필요하다.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의 역할
작금 프랑스 정부는 노동법 관련, 지난 40여년 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아프면서도 그 원인을 고치지 못했던 것을, 과감하게 손을 보고자 준비 중에 있다. 사실 프랑스 노동법(le droit du travail)은, 마치 백과사전 모양인 양, 내용이 방대할 뿐만이 아니라, 매우 복잡하여, 전문가가 아닌 이상 노동법의 기본 정신이 무엇인가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노동법이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용이 많아진 이유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추가 법안내지는 수정안이 수도 없이 첨부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는 노동법을 통해 사회경제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명이 부여된 것에 연유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실업을 줄이거나, 고용률을 높이거나, 기업으로 하여금 청년 신입사원 모집을 보다 많이 하도록 하거나, 퇴직에 임박한 장년층의 고용을 최대한도로 유지케 하는 사명 등이 시대마다 다양하게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은 그 자체로 높이 평가될 만하지만, 문제는 이런 다양한 목적이 산발적으로 기재되어, 노동법의 근본적인 목적과 정신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노동자 보호 차원에서도 비효율적이 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먼저 노동법을 보다 간단하게 편집하고자 한다. 이는 급작스럽게 노동법을 단번에 축약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2020년에 걸쳐 노동법 자체를 완전 개조하려는 것이다. 개조될 노동법안의 첫 부분은 노동법의 근본 원칙을, 둘째 부분은 협상으로 이루어 지는 분야를, 셋째 부분은 노사 간 협상이 타결이 되지 않은 경우 적용되는 조치를 기술하도록 구상되어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다양한 형태로 기업 및 노조단체 대표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동시에 정부 위탁연구 과제도 수행되어 소위 [콩브르셀르 보고서: 집단협약과 노동과 고용] (rapport Combrexelle)가 9월 9일 마뉴엘 발스(Manuel Valls) 총리에게 제출된 바 있다.

노동법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기본 방침을 요약하자면, “노동법의 근본 원칙을 분명히 제시하되, 정부의 시행령과 같은 법률은 가능한 줄이고, 노동시장에서 노사 간의 유연한 협상에 더 많은 비중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사회적 규범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노동법이 법률로서 제정된 현행 제도를 완전히 넘어서는 것으로, 일종의 문화혁명과 같은 것이 된다. 2016년 상반기에 네 분야 – 고용, 노동시간, 임금 그리고 노동조건 – 에 대한 정부안이 구체적으로 입안될 예정에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노동개혁을 표방하면서, 정부주도형으로 밀어 몰아대는 시행령을 준비 중이며, 노동시장의 자율적인 협상의 여지를 오히려 축소시키고 있다. 참으로 대조가 된다. 그 여파와 효과도 대조될 것으로 당연히 예상된다.  

worker-1노동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노동법 제정과 그 적용이 이루어져 노동시장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누구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 제기는 비록 오늘날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 정책을 이해하거나 비판하는데 있어도, 최소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 노동시장에서 고용주가 노사관계에서 항상 “갑”의 위치에 있는 것이 정상적인 것인가?
– 노동에 대한 대가로 임금이 결정되는 구조적 힘을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노동계약인가, 소유권인가, 정부시행법령이나 사법 판례가 결정하는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주가 피고용인 노동자에 대해 우위에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용주의 우월적인 지위로 그가 노동자에게 무엇을 취하며, 노동자는 고용주와 더불어 무엇을 얻는가를 분명하게 알고, 이 점에 대해 서로간 타협을 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가 된다. 이를 위해 노동법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를 통해 고용주의 권한이 정의되고, 설명되며, 제한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노동법은 최소화되고, 노사간의 협약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도록, 기업문화와 사회가 변화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비교적 낮은 프랑스나 한국에서 제정된 노동법을 적용하는데 여러 한계가 생길 수 있다. 최소한 고용 노동자의 50% 이상을 반영하는 노사 협약, 그리고 기간에서도 일정한 제한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노사간 협약이 심도 있게 이루어지도록 많은 여지와 가능성을 갖도록, 기업별, 산업별로 환경을 형성해 주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입안하는 노동법이 청년고용증진, 기업활성화, 경제성장 등 다양한 목적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보다는, 노동법을 통해 노동자가 어떻게 보다 잘 보호받을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두는 것이 요구된다. 그러할 때 노사관계가 이념투쟁으로 전락하지 않고, 노사관계 증진과 협상을 중요시 여기는 상호 신뢰의 노동 및 기업문화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노동법은 긍극적으로 노동자 자신을 위한 것이다. 노동자로 하여금 노동법을 준수하는 분명한 정체성을 허락하고, 기업주를 신뢰하고, 노동자 자신의 인격 또한 존중 받는데 기여하는 규범으로서의 노동법이 기대가 된다.

일에 대한 성서적 입장으로 되돌아 가야….
성경은 인간이 노동의 본질과 원칙을 지켜나갈 때 보다 보다 온전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의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일이란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허용하신 것이기에 그 원칙을 깨닫고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래 일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축복으로 주신 기회였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의 뜻대로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인간은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에 응답하도록 지음을 받은 것이다. 일을 하면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계속 닮아가는 것이다. 심지어 타락 이후에도, 그 벌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청지기로 사는 것이다. 또 노동의 가치를 회복하도록 구원주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변화를 허락하셨고, 변화된 인간이 하는 노동에도 그 가치 회복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노동은 또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인간은 일을 통해 자신의 행복 터전을 가꾸어 나간다. 더 나아가 이웃을 위해 살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처럼 최초의 인간사회는 서로를 돕는 연대성과 교환 그리고 사회적 평등을 기반으로 그 질서가 세워졌고, 그 안에서 경제 활동을 하도록 지음 받았다, 따라서 사람이 소명을 따라 일을 할 때 그것이 기업에서 하는 일이든, 교회 안에서 하는 일이든, 동일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할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목적과 가치가 회복된 노동은 소명을 실현하는 현장이 되고,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현장이 된다. 이처럼 일은 소명을 따라 하면서, 행복을 추구하고 사회복지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회복된 사회나 일터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는 단순히 상하 수직관계로 제한된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관계 속에도 있다. 단순히 상업적 이해관계만이 아니라 상호간 신뢰를 중요시 여기는 공동체 협력이 이루어 진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5-7절에서 “그리스도께 하듯 일하라”, “그리스도의 종처럼 일하라”, “주를 섬기듯이 일하라” 말하면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일터에서 하는 일이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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