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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저널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 Christ as The Light of the World (1550)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수마을커뮤니티교회 담임/ 6회

 파리스 보르도네 작품 소개

중세 교회의 더 아름다운 장식 추구…변질된 교회 – 1부

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 건물, 그곳에 그려진 그림들을 관람하는 장소가 되었다….

인류는 끝이 없는 목적지를 향해 발전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사회적 발전은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교회의 중심 구성원이며, 교회 구성원 전부는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에는 한곳에 집약된 작은 무리였지만 거대한 세상을 이끌어 갔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문명의 발전으로 교회의 힘 보다는 세상의 힘이 더 강해졌다. 물질만능주의와 사회 제도적 힘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했다. 그래서 교회 일원이 사회적 힘을 가진 자가 있음을 은근히 과시하기도 하며 교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회적 힘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세상과 교회를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교회가 유지되기 위해선 거룩한 자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건축하라 하셨을 때 성막 지을 재료가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듯 떨어지지 않았다. 필요한 보석과 건축 재료들은 백성들이 자원하는 맘으로 봉헌하게 했다. 그 모든 재료들은 세상의 상징인 이집트로부터 가져 온 것이다. 모세는 오홀리압과 브살렐을 지명하여 성막에 관하여 연구하게 했다.(출31장) 그들의 연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보이는 제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에 관한 기술연마였다. 그들의 종교적 철학의 관점에서 연구하여 성막을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했으며 필요한 물품은 백성들로부터 헌납하게 했다. 지금 문화로 이해한다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종교세인 셈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은 기독교적 정신을 기초로 하여 화려하면서 다양한 문화의 꽃을 피워냈다. 미술과 음악, 건축 양식은 성경적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힘들다. 동네 마다 하늘을 찌르는 예배당이 세워져 있다. 그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은 당연 예배당이었다. 단순히 종교적 의식만을 행하는 곳이 아니라 음악과 예술이 살아 숨쉬고, 세계의 건축문화를 주도 할 만 한 기술이 예배당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예배당은 변두리가 아닌 가장 중심 지역에 세워졌다. 어느 지역이든 중심을 이루는 길은 처치로드(Church Road)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도로 이름이 되었다. 모든 문명은 교회에서 꽃을 피워냈고, 교회는 세상을 지배하는 상류사회가 되었다. 영화 타이타닉에(1997년 개봉)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일등석 승객들을 위해선 화려한 예배당이 준비되어 있지만, 삼등석인 아래 층에 있는 가난한 민초들은 그 예배당에 들어 갈 자격이 주어지질 않게 된다. 영국의 오래된 교회에는 아직도 하인들이 낮은 보조 의자에 앉아서 주인님의 예배를 도왔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주인님이 잘 볼 수 있도록 찬송이나 성경을 높이 들어 주어야 했으며 목사님의 설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주인님의 움직임에 집중해야 했다.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은 교회에서도 낮은 신분이었으며, 반면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은 당연 교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예배할 수 있게 했다.

구약시대에 성막이 존재하는 이유, 신약 시대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이었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오시는 만남의 장소가 성막이며 교회인 것이다. 물론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세상 어느 곳일지라도 안 계신 곳이 없다지만 모든 장소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한 장소를 정하셨다. 그 장소를 거룩하다 하셨고, 그곳에서 행해지는 모든 의식이 거룩한 것이고, 그 장소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이 거룩한 성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성막을 지을 때는 의외로 간편했다. 제사에 집중하기 위해서만 지어졌다.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에 의하면 일주일에 드려진 양의 숫자는 20만 마리 될 것이라 추정을 하고 있다. 성막은 지금처럼 화려한 예배당의 개념이 아니라 피가 흘러 강물이 되었고 재물을 태우는 냄새가 온 세상을 진동했다.

문제는 이동을 위해 만들어졌던 성막이 안정된 국가가 되었을 때 세워진 성전에서 시작되었다. 성전은 화려했으며 아름다운 미문을 만들었다.(행3:2)) 수많은 양과 소, 비둘기들이 들어가고 진열되어 있는 곳이어서 냄새와 소음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사장들을 유력자와 손을 잡고 미문을 만들었다. 구약의 성막에 없었던 사람들이 성전에서 힘을 쓰기 시작했다. 성막을 관리하고 제사하고 모든 굳은 일을 맡은 사람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성전이 되고 그 성전에는 고귀한 인사들의 방문을 위해 미문(The temple gate called Beautiful)이라 불리는 문을 만들었다. 그 문으로는 짐승이 들어 갈 수 없고 꽃길을 만들었다. 제사장들은 성전 맡은 자들을 고용했다. 그들로 하여금 장사하게 했으며 모든 이권에 개입한 사람들은 사두개인들이었다. (행4:1)

성막이 성전이 되면서 화려함이 장식되기 시작했으며 많은 인력들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문제는 성전의 장식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화려함에 집중하다 보니 성전 원래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그 성전은 허물어졌다.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았다. 성전의 신앙적 정신이 교회에 들어와 있다. 교회 건물의 뿌리는 성전에 있고, 성전의 뿌리는 성막에 있으며 성막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본 하늘의 모형으로 지어졌다.(출26:30) 교회의 모형은 하늘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전과 교회는 타락했다. 세상의 온갖 장식품들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가장 큰 문제는 교회 안에서 그려놓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인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성막과 성전, 교회에는 어떠한 형상을 만들지 말라 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에 미문을 만들었을 때 보다 중세 교회에는 더 아름다운 장식을 해 놓았다. 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 건물, 그곳에 그려진 그림들을 관람하는 장소가 되었다.

문제는 예수의 초상화이다. 과연 그분이 예수님일까? 그렇지 않다. 주님은 어떠한 형상을 남기지 않으셨다. 그분은 빛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에 3년 동안 동고동락 했던 사도 요한조차 부활하셔서 보좌 우편에 좌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천사에게 경배하려 했다. (계22:8-9) 우리의 믿음은 주님의 형상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이다. 그래서 교회에는 주님의 어떠한 형상도 남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 신앙의 정석이다. 그러나 타락한 로만카톨릭은 예배당 전체를 성화로 가득 채웠다. 화가들이 예수의 초상을 어떻게 그렸을까? ‘푸블리우스 렌툴루스’(Publius Lentulus) 총독이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에게 쓴 편지에 예수에 관한 외형적 기록이 있다.(로마 기록 보관소에 남아 있는 문서) 그의 기록은 이렇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위대한 능력을 가진 사나이가 우리 시대에 이곳에 나타나서 지금도 살고 있다. 백성들은 그를 진리의 예언자라고 부르고 그의 제자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자기를 보는 사람에게 두려움과 사랑을 느끼게 할 만큼 덕이 높은 용모를 갖추고 있다. 그의 머리카락은 익은 밤과 같은 빛깔이며, 귀 근처는 매끄럽고 머리는 물결치듯 파마한 머리처럼 되어 있다. 머리카락은 어깨 위로 물결이 흐르듯 덮고, 나사렛 사람들의 풍습 을 따라 머리 한복판에 가르마가 있다. 그의 얼굴은 부드럽고 침착하며 주름살도 없고 상처도 없으며 약간 홍조를 띤 얼굴이다. 코와 입은 훌륭하게 생겼다. 그의 턱수염은 많고 깎지 않았으나 머리카락과 같은 빛깔이며 길지 않고 턱 있는 데서 갈라져 있다. 그의 눈은 인상적이며 빛나고 있다. 그는 격렬한 어조로 책망하지만 권고할 때는 부드럽고 유순하며 늘 엄숙하려고 해야 할 정도로 명랑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의 몸은 날씬하고 자세가 바르며 손과 팔은 아름답게 보인다. 말하는 어조는 진지하고 말수가 적으며 신중하다. 그는 사람의 자녀들 중에서 가장 우아한 사람이다.”

이 기록은 객관적인 기록이라 할 수 없는 주관적인 해석이며 타락한 종교적 관점에서 설명되어진 위경적 기록일 뿐이다. 예수는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전해진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다. 잘 생긴 예수의 초상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다. 듣고 믿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신앙의 법칙이다. 그런데 타락한 중세 교회는 보이는 하나님을 예배당 곳곳에 만들어 낸다. 예배당 벽면에 그림과 기둥에는 조각상을 만들어 예배당을 장식했다. 그림을 그렸던 화가나 조각상을 만들었던 작가들의 신앙은 투철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런던 내셔날 갤러리에 이탈리아 화가인 ‘파리스 보르도네’ 의 작품 중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 (Christ as The Light of the World )가 있다. 1550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주님은 그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교회를 대변할 만한 금을 입힌 문서를 손에 쥐고 있었을까?

21세기가 시작되면서 로마 교황청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이끌어갈 예수의 초상을 발표했다. 실존하는 하나님을 상상과 신화 속의 인물로 추락시켰다. ‘파리스 보르도네’의 예수의 초상화는 마치 왕후와 귀족들의 모습이다. 그는 프랑스에 체재하면서 왕후를 그렸고 귀족들을 화폭에 담았다. 그 미술 철학을 받아 들여 교회의 중앙에 귀족의 옷을 입은 예수 모습이 형상화되었다. 과연 이 시대에 그림의 제목처럼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의 모습은 어떠할까? 어떠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실까? 그것은 화려한 형상이 아니라 성도들 마음에 좌정하셔서 그들의 삶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화가가 그려낼 수 없다. 처음에는 화가의 신앙심으로 그려낼 수 있다지만 그 그림이 교회에 걸리는 순간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주님의 모습은 성경 안에서 말씀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좌정하셔서 우리의 삶이 빛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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