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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누가복음서의 찬송 이야기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58회

“마리아의 찬송”, “사가랴의 찬송”, “시므온의 찬송”

누가복음 1,2장에는 4개의 찬송이 있다. 마니피캇(Magnificat), 베네딕투스(Benedictus), 눈크 디미티스(Nunc dimittis), 그리고 글로리아(Gloria)가 그것이다. 이들 찬송은 모두 예수의 탄생과 연관되어 있으며, 후대에 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다양한 양식으로 작곡되었다. 어거스틴(Augustine, 354-430)과 주후 633년 똘레도 종교회의에서 “찬송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정의 하면서, 중세 교회는 다양한 음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구주를 잉태하여 찬양한, “마리아의 찬송”(Magnificat)
 
“마리아의 찬송”, 마니피캇(Magnificat)은 누가복음 1장 46절에서 55절까지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를 내용으로 하는 음악을 말한다. 이 성경구절에서 오늘날 불후의 교회음악이라 불리는 “마리아의 찬송”이 탄생되었다.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줄곧 서방 로마교회와 동방정교회 및 개신교회에서 저녁기도회나 교회력에 의한 특정 주일 또는 평상시의 예배 가운데 불리고 있다. “마리아의 찬송”이란 이름은 라틴어 표기 “Magnificat anima mea Dominum”(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글자 “Magnificat”을 곡명으로 삼은 것이다. 후대 많은 작곡가들이 “마리아의 찬송”을 만들고 연주했지만, 특히 바흐의 작품(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BWV 243a)이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1723년 라이프치히에 머물면서 “마리아의 찬송”을 작곡하고, 같은 해 크리스마스 때에 성 토마스 교회에서 초연했다. 가사의 성격 때문에 주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많이 연주되었지만, 바흐가 수정(D장조 BWV 243)하므로 연중에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다.

“마리아의 찬송”은 구약성서의 구절을 많이 인용(시33:3-5, 34:9, 37:6, 70:19, 합3:18, 말3:12, 욥5:11) 하고 있다. “마리아의 찬송”의 핵심은 그가 찬양하게 된 동기와 대상이다. 마리아가 찬양하게 된 동기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고 한 말씀 때문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찬미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마리아의 찬송”은 교회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한 1세기 예수 탄생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며 찬양했는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또한 사도신경이 아직 제정되기도 전, 삼위일체교리가 아직 완전하게 정립되기 전, 처음 초대교회의 신앙고백과 순수한 신앙과 복음의 핵심이란 점에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마리아의 찬송”은 사람에게서 가장 위선적인 것이 무엇이며, 가장 반 복음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역설(교만한자, 권세 있는 자, 부자)하고 있다. “마리아의 찬송”은 제 1곡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Magnificat…)로 시작하여  마지막 제 12곡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Gloria…Amen), 즉 “찬양”으로 시작하여 “영광”으로 끝맺는다.
 
언약의 성취를 찬양한, “사가랴의 찬송”(Benedictus)  
 
누가복음 1장 68절-79절에 나오는 “사가랴의 찬송”을 “베네딕투스”(Benedictus)라고 부른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가장 먼저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Benedictus Dominus Deus Israhel)(눅1:68)라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베네딕투스”란 “복이 있도다.”라는 뜻을 갖고 있어 한편 “축복의 찬양”이라 부르기도 한다. “베네딕투스”는 크게 세 분으로 나누어진다. 다윗 언약과 성취(1:68-71), 아브라함 언약과 성취(1:72-75), 그리고 새 언약의 성취(1:76-79)가 그것이다. 세 언약을 하나로 묶으면 “구원에 대한 언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 언약의 성취가 중요한 것은 기독교, 메시야,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모든 언약의 성취이심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의 출생도 우연한  것이 아닌 구약에서 “사자”(출23:20), “외치는 자의 소리”(사40:3), 그리고 “내 사자, 언약의 사자”(말3:1)로 이미 세 번이나 예언되었다.

사가랴는 가브리엘 천사의 예언대로 기적적으로 아들을 얻게 되었지만, 아들을 낳은 것에 대하여 기뻐하고 찬양한 것이 아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찬양하였다. 그는 아들을 선물로 주신 것보다 훨씬 중요한 구원자인 메시야 보내심을 찬양하였다. 그것은 메시야가 없으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가랴의 찬송”이 “불후의 명곡”이 된 까닭은 사람의 희로애락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역사를 찬양했기 때문이다. “사가랴의 찬송”은 쉽게 이해되는 노래가 아니며, 구속사관을 이해할 때 비로소 받아들여 질 수 있는 영적인 깊은 노래이다. 로마교에서는 아침 예배에, 성공회에서는 아침 기도회에 빠트리지 않고 부른다.

중세 최고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는 사가랴가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던 세례요한을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1513-1516,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으로 남겼다. 반신의 아름다운 신체의 요한이 아무 장식 없이 어두운 화면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하늘을 가르치는 우아한 손가락질이 전부이다. 죄를 속량해 줄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을 긴 손가락이 하늘을 가르쳐 암시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드러난 그의 빛나는 살빛은 “자신이 빛의 증언자”이자 “언약의 성취자”임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 구주를 품고 찬양한, “시므온의 찬송”(Nunc dimittis)  
 
아기 예수가 정결예식을 위해 성전에 올라왔을 때,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Nunc dimittis servum tuum)(눅2:29-32)라고 찬양했다. “시므온의 찬양”은 첫 구절인 “주재여! 놓아주시는 도다.”(눈크 디미티스, Nunc dimittis)라는 첫 구절이 찬송의 제목이 되었다. “주재여! 놓아주시는 도다.”는 우리말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의미로, 시므온은 구원자이신 예수를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이다. 이 찬송은 4세기부터 밤과 저녁 기도로 사용되었고, 루터교회는 성찬식후에 불렀다. 어거스틴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총을 눈에 보이는 표지인 성찬식을 통해서 주님의 구원을 고백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찬송이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만일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찬송하는 것이 아니다. 또 만약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하고 노래하기만 하면 그것은 찬송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시므온의 찬송”은 로마교와 성공회와 유럽 개신교에서 임종 때에 특히 많이 부르고 있다.  

“시므온의 찬송”은 죽음 앞에 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인생을 주께 맡길 수 있는 위대한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그 가운데 렘브란트(1606-1669)와 엘리엇(1888-1965)도 포함되어 있다. 화가 렘브란트는 “시므온의 찬송”을 그가 죽던 해인 1669년에 그림으로 표현했다. 시므온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살이 배어 있고, 대머리에 흰 수염을 날리며 고뇌와 우수가 담긴 표정을 짓고 있다. 렘브란트의 마지막 유작이 된 “시므온의 찬송”은 인생 노년의 렘브란트 자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렸다. 렘브란트는 청년시절에는 부유하게 지냈지만 노년에는 파산 선고를 당하고 아무도 임종을 지켜보지 못할 정도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두 아내와 자녀 여섯이 있었지만 아내들뿐만 아니라 다섯 명의 자녀들이 자기보다 먼저 죽는 모습을 본 비운의 화가였다. 렘브란트는 육신은 늙고 눈은 보이지 않지만 떠받든 손 안에 아기 예수라는 희망이 들려 있는 시므온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인생도 평안히 놓아주시기를 간구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미국의 대표적 시인 엘리엇 “황무지”라는 시의 첫 부분이다. 훗날 엘리엇은 “시므온의 찬송”을 “시므온을 위한 노래”(A Song for Simeon)로 번안하며, 죽음에 임하는 시므온의 삶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엘리엇은 “시므온의 찬송”을 통해 자신을 하나님께 맡겼다. “오랏줄과 채찍과 비탄의 시간이 오기 전에 우리에게 당신의 평안을 베풀어주소서. 슬픔의 동산의 정거장들이 있기 전에, 어머니의 슬픔의 명백한 시간이 있기 전에, 지금 이 죽음의 탄생 철에, 아기예수, 아직 말이 없고 말해지지 않은 말씀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위안을 베풀어주소서! 80년 세월을 살아 내일이 없는 이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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