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유크시론 > 신년사설: 2016년 새해를 맞으며
유크시론

신년사설: 2016년 새해를 맞으며

[유크시론 172호]  이창배 발행인

전인 미답(前人未踏)의 길, 교회여~열어가자

문명을 찾아, 인간적인 꿈을 이뤄보고자 그 밑둥을 뿌리 채 뽑아내며 디아스포라로 흩어지기 시작한 새로운 디아스포라 시대, 도시 유목민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와 함께 위험의 양상도 증대되어 시시각각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화 되어 가는 세상이 됐다.

송구영신 그리고 새해, 예년에도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촉촉히 내리는 비 가운데 그렇게 한해를 넘기며 새로 받았다. 교회의 뒷뜰 정원에는 한창 푸릇 푸릇 떡잎이 솟아나고 있다. 조금 성급한 풀들은 하얀 꽃도 피어냈다. 나무에 움이 돋고, 이른 나무엔 꽃도 피어난다. 마치 3월의 따스한 봄말을 연상시키는 기온에 사뭇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약간의 두려움도 생겨난다. 이렇게 새해를 시작하고 나니 무언가 기대감이 떨어져나간 것처럼 허전하다. 겨울이 따스해서만 좋을 일만은 아니다.

그런가? 새해들어 주문해 온 달력을 새 것으로 바꿔놓고 1월달을 펼쳐놓으니 기분은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해는 여전히 동쪽에서 뜨고, 어제의 해나 오늘의 해가 뜨고 지는 것은 별반 차이 없음이 똑 같다. 똑 같은 집에서 하루 세끼 먹고, 똑 같은 일을 되풀이 하고보니 그저 달라진 것도 없다. 솔로몬의 명언처럼 해 아래서는 새 것이 없다더니 우리가 사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직장 가고 오고 하는 것도 그 어떤 것에도 새해가 됐다 해서 뚜렷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게 또한 사실이다.

무의미한 시간이 정녕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지루하게 만든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 했던 새로운 패턴이 빠르게 일상생활을 바꾸고 있다.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이 예전보다 몇배는 더해 졌다. 주변에도 살펴보면 참을성이 희박해 진 것이 보인다. 근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서운함이 있다. 그것은 성탄절, 새해를 맞아서 기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설레는 마음을 담고,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그 내용을 쓰고, 또 한번 쓰다가 실수하면 다시 고쳐쓰는게 실례가 될 터여서 얼마나 정성스럽게 한자 한자 또박또박 써야했는지 몇장 쓰고나면 손목이 시끈거릴 정도였던 그런 정경이 사라진 것이다. 주고받는 카드가 이제는 이메일도 사라져가고, 카톡과 메신저라는 쇼셜 네트워킹 시스템을 이용해 손쉽게 대량 카드를 보내고 또 받는다. 참 편한 세상이다.

성탄절 아침에, 새해 아침에 핸드폰 신호음이 분주해진다. 열어보면 한 사람에게 보내는 것도 아니라, 인사하고픈 사람들을 한꺼번에 묶는데 심지어 단 한번에 거반 백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선택해서 일시에 보기좋은 카드 또는 문구를 선택해 카피해 보내진 인사가 대부분이다. 대화창에 몇자 문장을 직접 써서 보내는 성의도 없이 이미지로 만들어 그 안에 들어있는 인사글 그대로만 보내온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그러려니하고 받는 것도 당연시하고, 나 또한 그렇게 보내버리지는 않았는지 걱정스럽다.

전인 미답(前人未踏)의 길
어느새 우리 일상이 그냥 형식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상대방의 의사를 괘념치 않는다. 내가 보냈으니 된 것이고, 내가 받고 답을 안 하면 그것으로 답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식이다. 참으로 정내미 떨어지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간다. 알기에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닌데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무정해 진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또한 갈수록 사람들이 사나워진다. 자기 생각만 한다. 남에게 관심을 두질 않는다. 자신의 감정은 철저히 숨기고, 대리자격인 아바타를 내세워 겉치레를 한다. 얼마던지 진심을 가린 채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버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그 종착점이 아련히 보여지는 것만 같아 두렵다.

이것도 전인 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간다는 범주 안에 둘 수 있을 것 같다. 한번도 제대로 경험해 보지 않았던, 누군가 미리 탐험이라도 해본 적도 없는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전인 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가야한다. 그러나 이 길 앞에서 분명한 것은 어떤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사건이 기다리고 있올 것이고, 새로운 변화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것이 새삼스럽지만 전인 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가야하는 각오이다. 또한 앞으로 다가 올 수많은 사건을 새롭게 경험해야 하고, 거센 도전에 힘겨운 응전을 하면서 악전고투를 치뤄야 한다는 점에서 이 길은 아무도 앞서 가 본적이 없는 길, 그래서 전인 미답(前人未踏)의 길이다.

또 다른 전인 미답(前人未踏)의 길
새해를 시작하고 발걸음을 떼면서 어느덧 달라진 일상을 느껴봄직도 이렇듯이 처음이다. 기상 이변이 피부적으로 와닿는 것 이상의 이변이 바로 인간성의 매말라감이다. 지난해 치를 떨 정도로 잔혹한 테러와 처형, 파괴와 주검이 온 세상을 엄습했다. 그 궁극에 인간성의 말살이라는 인간 존재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낱낱이 폭로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 자체가 지옥을 보는 것이 아니라면 또 무엇일까 싶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이 전에는 뉴스매체를 통해서 중계 되어지듯 보던 남의 나라 시절은 이미 지났다. 대신에 이러한 현실이 바로 내가 서있는 곳, 내 자녀가 다니는 곳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졌다. 잔뜩 바람을 넣어 부풀린 풍선처럼 이제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모른다. 전세계가 이제는 디아스포라 시대로 접어들었다. 어디에서는 떠나고 있고, 어디론가 계속 흘러들어가고,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비집고 들어가며, 그리고 겹겹히 쌓여지는 폭발직전의 위기를 조성하며 전인 미답(前人未踏)의  또 다른 길이 세계를 숨죽이게 하고 있다.  

과거에는 잘 사는 곳에서 못 사는 곳으로, 문명이 발달된 곳에서 뒤떨어진 곳으로, 사람의 발걸음이 미칠 수 있는 곳에서 점점 더 깊은 오지로 선교사들이 나아갔던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오늘날의 현상은 그 반대이다. 문명의 발달이 가져다 준 첨단제품들이 전달이 된 곳마다, 그곳은 더 이상 사람들을 붙들어 둘 수 없는 땅이 되고, 문명을 찾아, 인간적인 꿈을 이뤄보고자 그 밑둥을 뿌리 채 뽑아내며 디아스포라로 흩어지기 시작한 새로운 디아스포라 시대, 도시 유목민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와 함께 위험의 양상도 증대되어 시시각각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화 되어 가는 세상이 됐다. 이 거칠고 메마른 세계를 살아가야 할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 때이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눈쌀을 지푸리고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외면하고, 나 몰라라할 그 디아스포라 난민들을 찾아 나서고, 이제 그들을 껴안고, 근본적으로 그들을 하나님이 없는 백성에서 하나님이 있는 백성으로 바꾸는 적극적 선교전략을 마련하는 길이 궁극적으로는 모두의 평화를 성취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수 없다. 이 또한 전인 미답(前人未踏)의 길이요, 개척해야 할 최전방 지역이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것을 발견한다.

이달의 말씀 ㅣ 여호수아 3:3-4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답글 남기기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
Social Media Auto Publish Powered By : XYZScrip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