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시사칼럼 > “기후변화 유엔총회”. 파리에서 열려
시사칼럼

“기후변화 유엔총회”. 파리에서 열려

[포커싱프랑스] 채희석 목사/ 파리 모두 제자교회 <10회>

<COP 21> : 하나님은 에콜로지스트(ecologist)이신가?

의식은 ‘더 늦기 전에 자연환경을 보전하여 지구촌을 살리자’는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단순히 과학적이고 기술적이고 정치적인 제안만을 한 것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 치원에서도, 지구 온난화 현상에 대해 대처해야 하며,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도 새삼 강조했다.

2016년은 <자연환경보호>의 해
2016년 연두교서에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3개의 주요 정책 기조를 발표하였다. <고용>, <테러방지> 그리고 <자연환경보호>(에콜로지)가 그 핵심 사항이다. 이는 11월 테러 사건의 후유증이 미처 가시기 전, 파리에서 소위 “기후변화 유엔총회”(United nations conference on climatic change)라고 불리는 <COP 21> (제 21차 기후변화 협상당사국 총회)가 2015년 12월에 개최된 것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동 모임은 유럽연합을 위시하여, 전세계 196개 당사국 대표 그리고 150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유례없는 최대 규모 국제모임이었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얼마나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인식하고 공감하고 있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주간 진행된 모임에서 시민단체, 전문가, 산업계, 국제기구 등에서 4만여명이 끊임없는 토의를 이루어 나갔다.  원래 19세기 근대 산업화 시점을 기준으로 지구 온도가 +2°C를 넘지 않도록 강구하고 합의 보고자 했지만, 최종 합의는 가능하면 +1.5°C를 넘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인 합의안이 제시되었고, 한 표의 반대 없이 모든 당사국들이 만장일치로 합의를 보았다. 이 합의는 2016년도 6월에, 온실가스의 55%를 배출하는 55개국이 뉴욕에서 비준함으로써 그 효력을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2023년 기후변화 대처에 대한 첫 종합평가를 내기 위해. 각 당사국은 매 5년마다 목표달성을 위해 보다 야심적인 공헌을 하는 방안을 제시하게 되어 있다. 전세계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 목소리로 합의를 이룬 <파리총회>는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하다.

인간과 자연 간에 존재하는 창조질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다 근본적으로 설명하고 자연환경 파괴의 원인과 미래의 희망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지구라는 땅과 바다 그리고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하늘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다. 창세기 말씀에 의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고, 동시에 땅의 소재로써도 만들어졌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관계 속에서 피조물로 존재한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의 중심이요, 수장의 위치에 세워졌다. 더 나아가 사람들간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창조주에 의해 그 질서가 정해졌다. 즉 남자와 여자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또한 자연 세계를 다스리고, 경작하며 지키는 소명을 받았다.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세계를, 마치 나의 땅처럼 여기고, 관리하고 경작하고 지키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사명이자 그의 존엄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런 청지기의 삶을 살 때,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며, 다른 사람과 자연 세계에 대해서 맡은 소명을 다하게 된다. 이런 삶 자체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축복을 받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창조된 첫 인간이 누리던 자유로운 관계, 소위 말하는 “창조 질서”의 삶이었다.

깨진 관계 속에 있는 인간과 자연
하지만, 아담의 범죄 이후, 이런 자유로운 관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 할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에 대해서도, 자연에 대해서도 자유롭지가 못하게 되었다. 인간은 관계 차원에서 자유를 상실하였고, 만물의 영장으로 필요한 조건인 초자연적인 은사도 소멸되었다. 다만 자연적 은사가 제한적으로 남아있지만 그것마저 부패한 것이다. 하지만 이 은사로 기본적인 관리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여전히 인간이 자연세계를 다스리고 있지만 그것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지배가 될 수 밖에 없다.

창조 질서가 깨진 상태에서 인간과 자연 간의 현실적인 관계를 좀 더 살펴보면, 타락한 인간의 삶은 모든 자연환경에 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저주 받은 땅에서 생산을 위한 노동조건은 악화되었고, 경제사회의 수급 균형을 유지하는데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게다가 인간의 탐욕과 경쟁이 지배하는 경제체제에서 공정한 거래, 공평한 분배는 점점 어려워졌다. 인간 사회의 연대관계가 상실되고, 더불어 자연세계에 사는 모든 피조물도 인간의 죄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이 하늘은 더 이상 원초적인 상태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특히 근대 산업화 시대 이후, 생태계를 존중하지 않은 개발로 인해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피조물도 생존의 위협을 당하고 있다. 무한 경쟁 속에 전개되는 자연계발과 산업발전은 땅과 바다와 공기 중에 공해를 심화시켰다. 공기 중에 방출되는 이산화탄소 급증으로 초유의 지구 온난화 현상이 생기고 말았다.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기후변화는 생태계 파괴를 가속시키고, 폭염, 폭우, 홍수 등 기상재해를 가증시켜 인간의 삶에도 가공할만한 위협이 되고 있다.

<COP 21>에 대해 기독교가 옹호하는 근거
<COP 21>에 따르면, 19세기 말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가 +0.85°C 상승했고, 이 상태로 가면 21세기 말엔 +4,6°C까지 상승할 것을 예측하고 있다. 이는 대기 속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함유량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270PTM에서 400PTM으로). 그 결과 생태계가 크게 파손되어 약 30%의 생물체가 생존할 수 없게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산업화 이후, 해수면이 약 20cm 정도 높아졌고, 북극 빙하가 계속 녹아내려, 2100년도에는 해수면이 1m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 결과 전세계 고도 20m 이내의 연안지역에 살고 있는 4억 인구가 위협을 받을 것이고, 특히 아시아와 북미 등에서 50% 이상의 항구 도시가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후변화가 어떤 특정 국가나 지역이 아닌, 지구 공동체 전반에게 생존의 위협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자연환경 문제에 대해 기독교계가 기여할 수 있는 입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자연환경 전문가나 정책을 수립하는 정치가, 산업계와 환경오염에 노출되기 쉬운 농수산업계 및 시민단체가 적극 참여하는 것이 당연지사일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계가 자연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COP 21>을 옹호하는 이유는, 앞서 전술한 바와 같이,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자연과 창조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는 모든 자연환경과 인간 공동체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고, 이는 정치, 국경, 심지어 종교 장벽을 넘어서, 온 인류의 생존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기독교계가 구체적인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성찰하고, 인간의 자연환경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도록 인도할 수 있다. 신약에서 예수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연(양, 새, 나무, 기후징조, 등)의 이치를 가지고 영적인 교훈을 가르치셨고, 바울 서신에선,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연세계도 허무하게 되어, 즉 불안전하고, 썩어지고, 죽어가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피조물도, 인간과 같이, 이런 사망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이 결국 하나님의 우주적 구속역사인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개인의 영적 문제뿐만이 아니라, 자연과 생태계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다음 세대를 위하여, 자연환경의 회복을 위하여, 관심을 가지고 참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기후와 관련된 <공의> 문제
이번 <COP 21>에서 발표된 합의 당사자 국가 대표들의 연설이나, 자연환경 전문가 및 시민단체 책임자들이 주장한 내용 중 공통적인 의식은 ‘더 늦기 전에 자연환경을 보전하여 지구촌을 살리자’는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단순히 과학적이고 기술적이고 정치적인 제안만을 한 것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 치원에서도, 지구 온난화 현상에 대해 대처해야 하며,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도 새삼 강조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고 기독교계와 기독교 NGO들의 참여를 통해, 기후변화 대처가 이 지구촌에서 <공의>가 구현하는 기회가 되도록 주장하였다. 이는 대기권 온실효과를 초래하는 이산화탄소를 극히 적게 배출하는 많은 나라들이, 해수면이 높아지고, 내륙이 사막화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고 생태계 파괴로 피해의 대부분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라이브, 남미, 동남아 및 태평양 섬나라들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높아지는 해수면으로 인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 사하라 지역에서 주변으로 사막화가 가속화되면서, 멸종 위기의 생물체도 증가하고 있다. <COP 21> 합의에서 이처럼 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지만 큰 피해를 입는 나라나 지역을 위해 공의와 연대감이 발현되어, 지구공동체가 보다 공정한 관계로 회복되도록 기독교계는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란다는 것은…
우리는 자연환경을 보호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덜 소비하고, 덜 공해를 만들고, 덜 낭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또 <COP 21>처럼 모든 나라가 협력하여 총체적인 해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가뭄, 홍수, 흉작 등으로 인해 무수한 난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이 땅에 보다 공의와 평화와 안정이 세워질 것이다. 또한 기독교 윤리에 기초하여, 국가 간에 보다 공정한 상호 협력체계를 만든 것도 요구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부분적이고 한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

성경은 이 땅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인간의 소유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가르친다. 자연환경을 관리하고 지키는 책임이 인간에게 부여된 것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연환경 관리 능력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이고 제한적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반은총을 통해 이 세상이 혼돈 상태로 빠지는 부패를 제한시키시고 계신다. 동시에 종말에는 이 땅과 이 하늘이 사라질 것도 아신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배하시고 계신다. 이는 <다른> 하늘과 <다른> 땅을 의미하기보다는 <새로워진> 하늘, <새로워진> 땅을 의미한다. 마치 중생의 삶처럼 자연세계에서도 과거의 것이 지나가고 새 것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것만 바라보지 말고, 미래의 새로운 것이 임하는 것에 대하여 소망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자연환경을 잘 회복시켜, 자연환경이 주는 혜택을 즐기며, 특히 많이 받은 자가 덜 받은 자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볍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환경 자체가 창조주께서 인간에 주신 축복의 표식이며, 공의로운 통치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공의>와 <자연환경보호>(에콜로지)는 밀접한 관계에 있고 서로 분리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에콜로지스트이신 것이 아닐까? 

답글 남기기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
Social Media Auto Publish Powered By : XYZScrip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