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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크시론

선교가 삶이 되는 한 사람 그 도전

[유크시론 174호]  이창배 발행인

바르비종과 슈토테른하임에서 보다

첫 모임을 가진 코디아네트 사역 써미트는 이 시대 난민이라는 세계질서의 거대한 조류를 일깨운 시간이었고, 복음의 본질을 붙잡는 운동의 선포였다. 또한 교회가 싸울 거룩한 싸움을 위한 숨고르기였다.

꽃샘추위로 불리는 봄맞이 추위가 한창이던 한 낮을 잠시 비껴난 오후에 프랑스 중북부 파리분지 중앙부에 있는 일드프랑스주(Iil de France)의 퐁텐블로(Fontainebleau)란 이름의 숲 어귀에 있는 바르비종(Barbizon) 마을을 찾았다. 마을까지 가는 길, 좁은 전형적인 프랑스 시골마을로 이어지는 소담한 도로를 따라 도착한 이곳은 근대 미술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바르비종파의 근원지로 유명해진 작은 마을의 모습 그대로 였다.

아직 파릇한 풀도 돋아나지 않은 겨울의 삭막한 풍광이었지만, 그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밀레가 그린 만종의 모자이크 현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 너른 들판 저 멀리 어디선가  자연과 어우러져 일상적인 노동에 전념하는 농부나 목자를 주제로 삼아 그림을 그렸을 밀레의 모습이 연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몇명의 일행이 자동차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휭하니 바깥으로 달려가서 셀카를 찍느라 여념이 없었고, 내겐 서너시간 후면 해가 질 어둑어둑해져가는 바르비종의 들녘이 왜 그런지 마음에 아쉬움을 남겨놓는다.

그 시간 쯤 저 먼 들녘에 나가서 한번 거닐며 그 위대한 만종의 탄생을 체감해 봤으면 하는 생각을 애써 잠재우고 함께한 일행들과 사진 몇 장을 남기고는 마을로 들어섰다. 그리고 제일 먼저 찾은 집이 바로 밀레의 생가이자 박물관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맞대어 작은 화랑들이 줄지어 문을 열어놓고 있는 모습,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화가가 작품활동을 했던 흔적을 남겨놓은 아틀리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역사적인 마을을 두 번째 찾아온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른 일로 인해서 짬을 내어 방문한 터이니 길게는 머물 수 없다는 아쉬움은 여전했지만, 이렇게 생생한 역사가 배어있는 그 땅을 찾고, 또 밟았다는 감동을 자뭇 마음에 남기게 됐으니 이도 큰 소득이다.

장 프랑수와 밀레(Jean-François Millet, 프랑스, 1814-1875), 그의 작품은 저녁이라는 시간대와 종교적 상징을 통해서 낭만주의를 그리고 농촌의 노동 혹은 현실적 주제로서 농촌 풍경을 통한 자연주의 혹은 사실주의 특성을 나타낸다. 더불어 바르비종은 근대 미술사에 있어서 큰 획을 긋는 바르비종파의 근원지로 그 운명이 바뀌게 됐다.

한 시대의 운명을 통째로 뒤흔들 자
이렇게 우연인 듯 또 우연치 않은 듯 한 시대의 운명을 통째로 뒤흔들고 바꾼 한 역사의 현장을 늦은 밤에 찾은 곳이 있다. 지난 달 19일, 바드 홈부르크에서 가진 코디아네트 사역써미트를 마치고 루터의 종교개혁 현장 탐사를 원하는 일행들과 함께 찾은 에르푸르트(Erfurt) 외곽 들판의 슈토테른하임(Stotternheim)에 서있는 붉은색 대리석 기둥인 루터슈타인(Lutherstein)이 그곳이다.

1505년 7월 2일, 여름철 폭우가 쏟아지는 날, 마틴 루터는 친구와 함께 멀리 떨어진 부모집에서 방학을 마치고 걸어오다가 슈토테른하임의 들판, 한 나무밑에서 비를 피하다 벼락을 맞게 된다. 그때 친구가 벼락에 맞아 즉사하는  그 순간 루터는 두려움에 빠져서“도우소서, 성 안나여, 나는 수도사가 되겠나이다”라며 부르짖었다. 이후로 루터는 당대의 최고 명문인 법대를 중도 포기하고 곧바로 아우구스투스 수도원을 향해 가서 수도사로 입교한다. 이 위대한 역사의 전환점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917년 높이 2m의 비석이 이곳에 세워진 것이다. 이 기념비에 적힌 글은 “종교개혁의 반환점 – 번개가 와서 루터의 삶이 바꼈다.”라는 글이다. 종교개혁의 빛이 이곳에서 발화된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방문했는데, 겨울 저녁 밤 9시를 훌쩍 넘긴 심야와 같은 시간이었다. 사위가 어둠에 쌓인 채, 인적조차 없는 깜깜한 밤, 이날은 유독히 강한 비바람이 휘몰아 치며 자동차문을 열고 나오는 것조차 여의롭지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방문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일평생 단 한차례 와보기도 어려운 현장에 발을 딛는다는 기분이 그럴까, 갑작이 어두운 들판에 카메라의 후레쉬 빛이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두대의 차량 전조등을 비석을 향해서 비추고 잠시라도 함께 한 일행들은 그곳에서 머리를 숙였다. 사람의 지성과 이성을 뛰어넘어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불현듯 가슴을 치고 올랐다. 벅찬 감동이 여러 동역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이렇듯 누군가의 안내를 받지 않고서는 결코 찾기조차 어렵고 힘든 이 들판의 한 복판에서, 누군가 볼 사람도, 누군가 지켜 줄 사람도, 누군가 박수를 보내줄 사람이 없는 이 절대 고독한 순간에 하나님은 역사를 바꿀 한 사람을 준비하신 것이다.

절대 고독한 순간을 두려워 말자
그렇다. 오늘날 우리들은 많은 풍요로움 가운데 첨단의 삶을 구가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최고의 도구들로 얼마나 멋진 사역들을 펼치고 있는지 정말로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이러한 물질풍요의 환경을 살아가는 것이 특권이라면 그것이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싶다. 그래서 놓치기 아쉽고, 포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을 굳세게 붙잡고 있는 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만한 이유가 또 어디있는가? 권능의 지팡이면 되는데.

오늘날 우리 주위에 빗발치듯 난무하는 요란한 선전 문구가 있다. “선교”이다. 너무도 익숙해져서 이젠 “선교”라는 용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도 생겨났다. 하지만 곰곰이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선교”라는 말은 흔한데, “선교가 삶이 되는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장 프랑수와 밀레에게서 보여지는 정신, 곧 그 시대의 도시화, 산업화라는 거대조류를 거스르며 일하는 농부들의 일상들을 그려 자연적‘사실주의’의 전형이 되었지만, 그 안에는 농촌에서 사회 전복의 의지를 표현한 풍속화가로 간주되기도 했을 정도로 시대에 대한 저항정신이 되는 그런 사람, 이러한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더 나아가 루터 처럼, 절대 고독의 자리를 두려워 하지 않는 용감한 그리스도인, “만약 보름스대성당 지붕의 기왓장들만큼이나 마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해도 나는 그 곳에 가겠다.”던 그런 그리스도인이 희박해진 이 시대에 도전하라는 사인이 아니겠는가?

지난 달 첫 모임을 가진 코디아네트 사역 써미트는 이 시대 난민이라는 세계질서의 거대한 조류를 일깨운 시간이었고, 복음의 본질을 붙잡는 운동의 선포였다. 또한 교회가 싸울 거룩한 싸움을 위한 숨고르기였다. 이 시대 한인디아스포라교회가 네트워크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달의 말씀 ㅣ 출애굽기 4:2-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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