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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교회, 그 본질의 힘을 상실해 간다.

[독일시사리뷰]  이성춘 목사, 프랑크푸르트국제교회/ 13회

교회의 방향 : 진리인가, 섬김인가?

독일에서 미카엘 디너와 울리히 파르짜니는 복음주의와 경건주의를 대표하는 두 지도자이다.  파르짜니는 “프로크리스트” 라는 유럽의 복음 전도운동의 대표적인 설교가이며, 디너는 독일의 복음주의 협회와 30만명의 경건주의자들이 소속되어 있는, 그나다우어라는 경견주의 대표이다.   프로 (Pro) 라는 기독교 언론지는, 디너와 파르짜니는 서로 친구사이로 같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가깝게 지내고 있는데, 최근에 동성애와 같은 신학적인 입장표명을 통해 공개적인 논쟁을 하면서, 친구관계만이 아니고, 복음주의 연합적인 분위기를 훼손하면서 경건주의의 분열의 위기까지 야기하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기독교안에서의 구원에 관한 논쟁은,  대부분 일치를 유지하기 보다는 분열되어갔다고 부데는 지적한다. 

교회 내의 분열은 대부분 시대적인 상황과 관련이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시대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세속화의 영향력으로 기존의 모든 것들이 힘을 상실해가는 시대이다. 그래서  데이비드 웰스는 세속주의가 모든 삶에서 신성의 영역을 빼앗아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속적인 인본주의는 반종교적이며 반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체가 종교적인 힘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헨리 스틸 코메이거에 의하면,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러서 신학이 서서히 파산되었지만, 종교는 번성해지고 있다고 한다.  현대화는 새로운 문명, 종교, 세력과 같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
데이비드 웰스는, “서방 사람은 망설임 없이 이 새로운 세력들에게 자기의 도덕적 질서를 내주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시대는 이전의 시대의 종교적이며 도덕적인 모든 확실성에 대해 미친듯이 공격했다.” 고 말한다.

동성애와 타종교와의 대화는 기독교계 안에서 서로 분명한 입장을 취하도록 요구하며, 분열의 양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독일 내에서 전통적인 독일가정들이 72%이고 싱글맘과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19% 이다. 독일 내에 7만명의 동성연애자들과 관련된 자녀들이 7천명이 있다. 미국의 3억 천칠백만 인구 중에 동성연애자는 1,6%,   양성연애자 0.7%,  이성연애자 96, 6% 이다.   

만프레드 레코스키는 모슬렘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유럽 사회의 많은 곳에서 실제적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제 사회와 교회의 많은 영역에서 기독교인들도 모슬렘 단체, 지역의 모스크클럽, 모슬렘 신학자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Ⅰ. 사회적인 섬김의 확대와 진리 수호의 갈등

1.  미카엘 디너는 경건주의자로서 지난 해의 말에 독일교회 협의회의 집행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2015년 12월 14일 “벨트 (Die Welt)” 라는 일간 신문의 기사와 “프로(Pro)”  라는 기독교 잡지의 인터뷰에서, 동성애와 정치, 선교에 있어서 경건주의자들이 독일교회협의회와의 다툼을 종식해야 한다고, 그들이 믿음 위에 굳게 서면서, 자기반성을 해야함을 요구했다.

디너는 자신이 독일교회협의회의 동성애 이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표명하면서, 하나님 말씀은 동성애를 축복하고 동성애 결혼을 전통적인 결혼과 동일시하는 사명을 교회에 절대 주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성경을 자신과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이해했다. 그리고 동성연애자들인 목회자와 기독교인들을 교인들로, 동역자로 인정하겠다고 했다. 성경은 성적인 죄 만이 아니라 외식, 비방, 사랑없는 죄에 대하여 고발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경건주의자들이 독일교회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일로, 독일교회들을 쉽게 비판하지만, 사실 자신들도 교회를 떠난 그들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래서 경건주의자들도 사회와 자신들이 비판하는 사람들로부터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는 잘못된 모습을 고치면서, 자신들의 삶의 행복한 경험들을 실제로 소개하며, 그들이 함께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도록 이끌어야함을 강조하였다.

보수주의자들은, 교회협의회가 다른 종교인들, 특별히 모슬림에 대한 복음전도 사명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한다고, 종종 비판하였다. 디너도, “선교는 과거 시대의 유물이며 이제는 종교적인 대화로 대체되어야한다는 것과 모든 종교는 동일한 권리를 가지며, 각 종교는 고유의 구원의 길을 가진다고 설명해야한다는 교회협의회의 입장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기독교인들이 모슬림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화하는 기회 조차 가지지 않겠다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디너는 지적한다.

디너는 사람과 세상 대신에 단지 위에 계신 하나님 만을 보아야한다는 경건주의 입장과 사람이 믿음으로 세상을 새롭게 세워가야 한다는 교회협의회의 사이에서 교량역활을 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진리와 복음을 유지하면서도 세상과 다른 종교들과의 대화와 섬김의 길을 차단하고 스스로 고립되어 가는 것보다는 만남과 교제와 섬김을 확대해 가야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2. 파르짜니는 디너의 이런 태도의 변화에 대해서, 그가 보수주의자를 대변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보수주의자들을 비난하고 있다고, 디너가 자기들과 함께 대변해왔던 중요한 관점, 입장을 상대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파르짜니의 공개적인 비난은, 디너가 좋은 의미에서 사회적인 섬김을 확대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기독교의 진리를 손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디너가 동성애자들을 교회 안에서 교인으로, 동역자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들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고백이 종교적인 대화에 희생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근거는 교회협의회의 “칭의와 자유”(58) 자료집의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그리스도을 전파하라는 것으로, 다른 종교의 신앙이 평가절하되거나 잘못되었다고 선언되어져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를 경청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에게 삶과 죽음에 있어서 유일한 위로가 되듯이, 타종교인들은 그들의 믿음을 통해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종교적인 대화를 이끌때, 상호 인정이 이루어져야한다.”(칭의와 자유, 58)  

파르짜니는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 크게 손상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칭의와 자유”가 성경에 대하여 언급하는 내용을 보면, “오직 말씀으로만”이란 종교개혁의 주제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도록 말씀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7세기 이후로 성경의 본문들은 역사- 비평적인 방식으로 연구되었다. 그래서 성경은 더 이상 종교개혁자들의 시대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본문들이 실제로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졌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한 단락의 다양한 버젼이나 다양한 본분의 층의 관점에서, 이러한 상상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과 관련된 ‘오직 성경으로만’ 이라는 주제가 오늘날에도 어떻게, 왜 타당한 것인가 라는 질문이 주어진다.”( 칭의와 자유, 84)

파르짜니의 입장에서보면,  교회협의회가 “칭의와 자유” 를 통해서,  종교개혁 500주년기념을 기점으로 개신교의 기초를 해체시키고 있다. 그래서 경건주의자들이 기독교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독일 교회협의회와 지역교회와 거리를 두어야하는데, 절친한 친구가 그것을 허물고 있다고 파르짜니는 생각한 것이다.

Ⅱ.  선교지향적 교회와 선교적 교회의 갈등

두 친구, 디너와 파르짜니의 갈등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이미 있어온 논쟁이고 그것은 진영나누기와 같은 다툼인 것이다. 기독교 안에서 이런 논쟁은 선교의 이해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독일에서 독일 개신교교회와 복음주의자 및 경건주의자의 긴장관계는 언제나 있어왔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위한 준비과정에 루터 10년 (Luther Dekade) 이 있는가 하면, 이제는 “일어설 때”(Zeit zur Auferstehen) 라는 복음주의 진영의 영적각성 운동이 있다. 교회의 날(Kirchentag) 행사에 그리스도의 날 (Christustag) 행사가 있다. 난민에 관한 상황에서 독일교회협의회의 선언문과 AEM의 보수적인 선교단체의 선언문은 공통점이 있으면서 방향의 끝이 다르다. 독일교회협의회의 신학적인, 사회적인 선언 때마다 비성서적, 탈기독교화적으로, 지나친 관용으로 나아간다고 복음주의 교회들이 간섭해오고 있었다.

독일에서 시리아, 이락크의 난민사태로, 매일같이 12,000명이 몰려오고, 2백만명 이상이 몰려오고 있다. 국가와 온 교회들이 이 난민들을 환영하고 섬기고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지난 10년 동안 3백만명의 신앙인들이 교회를 떠났고, 1875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 이런 상황이면, 헬무트 맛티스의 지적처럼,  이슬람 국가(IS) 로부터 피난민들이 발생한 것처럼, 독일의 국가교회로부터 수 많은 피난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교회의 위기, 영적으로 전시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회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기후변화와 난민의 보호에만 교회가 촛점을 맞추고 있다면 교회는 그 본질의 힘을 상실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신학에서는 정의와 평화, 인권이 존중되기만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며, 그러한 세계 내에서의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다. 그러나 복음주의 입장에서는, 세상에서의 자유와 정의, 인권이 중요함에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영원한 구원이 없는 것은 무의미하다.  

복음주의 교회가 복음전도와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존재하고,  에큐메니칼 교회는 새로운 세상을 세우는 일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오늘날에 복음주의 신학에서는 주로 선교지향적인 교회 (missionary church) 를,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를 강조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Ⅲ  두 스승을 포용하면서, 분열이 아닌 다양성의 풍성함을 위해

독일 내에서 두 보수주의자들의 다툼과 갈등을 눈앞에서 보면서,  우리는  디너와 파르짜니 중 한 사람을 택하려고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둘 다 우리에게 좋은 스승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갈등과 논쟁을 믿음 안에서 분열의 이유로 보지 않고, 믿음안에서 풍성함을 이루는 다양성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품을 넓게 해야한다. 그리고 교회의 분열이 아니라 교회의 일치를 유지하고자 서로 용납하며, 진리도 세우고, 섬김도 넓어야한다.

“일어설 때”를 통해서 복음주의 영적각성을 일깨워가는 12명의 주창자들은, 독일의 경건주의자들이 함께 일치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교회의 방향을 잡아가며, 필요하면 함께 고쳐가도록 요청하였다. 스테펜 케른은 기독교인들이 분열되지 않고 서로 일치하여 나가는 것을 세상이 요구하고 있고, 당연히 이루어갈 일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개신교 관점에서의 기독교신앙과 종교의 다양성” (“Christlicher Glaube und religiöse Vielfalt in evangelischer Perspektive”) 의 신학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크리스토프 마르크쉬스 교수(베를린) 개신교 교회가 확대되고 있는 다양성을 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회가 다양성 속에서 중립적으로 머물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기독교인이 자신의 믿음의 확신을 열정적으로 지켜가야 하며, 그것을 통해 내적인 자유를 느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종교의 다양성 안에서 자신들을 단절, 고립시키는 것으로 자기 정체성을 지켜갈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사회와 단절되고 고립되어 외딴 섬 안에 홀로 머물러 있는 것 같이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다 같이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하며, 모이는 교회이면서, 동시에 세상속으로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한다. 교회와 선교는 분리될 수 없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시고 교회는 이 선교하는 백성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새로게 태동하는 교회 곧 이머징교회를 소개하면서, 에디 깁스와 리얀 볼거는 교회의 방향이 흘러들어 오는 구조에서 (centripetal, flowing in)  흘러나가는 구조 (a centrifugal, flowing out)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조를  한쪽으로 방향지어 가야하는 것으로 보지말고, 상호적이며 양방으로 움직임이 동시에 일어나는 구조가 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Dave Sutton 은 복음화를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사람들을 그들의 세계로부터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삶속에서 어떻게 이미 역사하고 있는지 발견하기 위해서 그들의 세계에서 그 사람들과 동일시 하는 것과 또한 하나님을 어떤 곳으로 모시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이미 계시는 하나님을 찾고 그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방향과 영역의 확장을 보수주의자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어야한다. 이런 관점의 연장선에서, 복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우리가 추상적인 명제에 동의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초청되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라는 McClur는 언급을 주목해야 한다.

디너가 경건주의자들이 자신의 쌓은 담장 아래 갇혀 있지 않도록 자기 반성과 관계의 확대를 통해서 섬김의 영역을 넓혀가야함을 지적할 때, 파르짜니는 사고와 섬김의 개방의 문을 열어나갈 때에, 자신의 믿음을 잃지 않아야한다는 안전한 발판을 세워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두 지도자는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을 멈추고 서로 포용할 때에 경건주의는 더욱 세속화의 파도속에서 향해의 마지막 지점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안전하게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항해의 방향을 이끌어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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