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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것, 가이사의 것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수마을커뮤니티교회 담임/ 8회

티치아노 (Tiziano Vecellio, 1490년경 -1576, 이탈리아)

세금/ The Tribute Money (1560-8)

‘세금’이란 그림에 주목해야 할 것은 두터운 돋보기를 쓴 사람의 모습이다. 화가가 의도적으로 삽입시킨 돋보기를 쓴 사람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 반드시 헌금에는 감독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것과 세상 것인 이분법으로 구분되어 질 수 없다. 하나의 물건이 하나님의 것이 되고, 세속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이 말을 잘못 해석하게 되면 범신론적 주장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필요한 성물은 교회 전용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물론 성구라든가 용품들이 교회용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용품들 대부분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다. 교회가 사용하는 자동차는 교회 전용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차종을 교회에서도 사용하게 되는 것이요, 다른 종교인들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교회 음악을 주도하는 피아노 역시 교회 전용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교회에 있는 피아노는 교회 밖의 모든 곳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땅에 존재하는 문화적 요소는 가치중립적이다. 이 표현은 신앙적으로 위험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문명은 자연으로 부터 온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자동차 문명은 보편적인 것이다. 청년 시절 한 중형교회에서 담임 목사님께 승용차를 사드리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제직회에서 논의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등장한 자동차는 현대에서 만든 포니 승용차였다. 교회 자체적으로 답을 얻지 못하였을 때 집회기간 부흥사께서 하신 설교가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 농경사회는 지역 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공업사회가 되어서는 지역을 초월해야 했다. 농경사회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로 성도들을 돌볼 수 있었지만 공업사회에서는 성도들이 지역을 초월했기에 그들을 돌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존 웨슬리 목사도 전국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을 타고 다녔다. 그래서 목사님도 그런 말이 필요한데 자동차 이름을 포니라고 붙인 것은 목회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설명을 하셨다 .

실상은 포니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목회와는 전혀 다른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목회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시대의 영적인 획을 그으셨던 존 웨슬리 목사의 전도적 삶을 연결하여 설명한 것은 문명이란 것이 가치중립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 된다. 물건 자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서 성물이 되기도 하며, 세속적인 물건이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문명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존재해 온 것이다. 다만 기술이 부족하여 자동차라는 문명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뿐이다. 문명의 도구는 하나님을 위해서 만들어 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연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자연을 보고 하나님을 느끼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보며 불심을 느낄 수 있으며, 또 어떤 이들은 회의적 사고인 염세주의 인생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이 자연과 문명의 세계는 가치중립적이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서 영적인 것으로, 혹은 세속적인 것으로 구분되어지는 것이다.

물질은 더더욱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돈 자체가 거룩한 돈이 있고, 더러운 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의해서 거룩한 돈이 되는 것이요, 속된 돈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야고보서에 거룩한 말을 하는 사람과 더러운 말을 하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 샘에서 더운 물이 나오고 찬 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약3:10-12) 같은 사람이지만 거룩한 말을 할 수 있으며 또한 속된 말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거룩한 말을 하게 되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요, 속된 말을 하게 되면 속된 인간이 된다는 의미이다.

물질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John Wesley 1703-1791, 감리교창시자)는 이렇게 설교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예수께서 우리의 호주머니를 다스려 주셔야 한다.” 맞는 말이다. 물질을 다스릴 수 없다면, 그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없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지갑이 회개할 때 진정한 회개가 된다는 설교도 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물질 자체가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 물질에는 하나님의 것이 있고 세상적인 것이 있게 마련이다. 주님은 이를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으로 구분하셨다.

가이사의 것이란 세상 적이며 사회적 개념이다. 하나님의 것과 세상적인 돈으로 구분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 의해 구분되어지는 것이다. ‘티치아노’ (Tiziano Vecellio, 1490년 경 – 1576, 이탈리아)는 1560년 어간에 성경에 기록된 마태복음 22:17-22 말씀의 내용으로 “세금(The Tribute Money)” 이라는 제목으로 의미 있는 그림을 화폭에 담아냈다. 15세기 종교정세는 로만 카톨릭이 주세를 가졌을 때이다. 그가 그린 그림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1518년에 완성한 7미터 높이의 ‘성모의 승천’ 이 있는 것으로 보아 카톨릭 교리를 신봉했던 화가였다.

‘세금’이란 그림에 주목해야 할 것은 두터운 돋보기를 쓴 사람의 모습이다. 화가가 의도적으로 삽입시킨 돋보기를 쓴 사람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예수님 당시에는 돋보기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을 때다. 그렇다면 어떤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중세교회 즉 로만 카톨릭의 교회재정은 불투명했다. 레오 3세(Leo Ⅲ, 796∼816) 교황 때인 AD 800년부터 면죄부를 판매했다. 면죄부란 물질을 봉헌한 사람에게 죄를 면해 주는 증표이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이름으로 헌금을 하게 되면 혹시 지옥에 갔을지라도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가게 해 준다는 천주교가 만든 교리인 것이다. ‘티치아노’ 화가가 활동했을 시기인 15세기에 이르러서는 면죄부 판매의 최고조를 이룬 시기였다.  

티치아노는 로만카톨릭 교리를 신봉했지만 신앙적 측면에서 신봉이었을 뿐 교회를 운영하는 정책에 관하여는 옳지 못함을 그림으로 고발하는 것이다. 교회 헌금을 임의적인 잘못된 교리, 즉 비 성서적인 교리를 만들어 거두어들이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헌금에는 감독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헤롯 당원들의 물음에 예수님의 답하시는 것을 관찰하는 감독자를 삽입시킨 것이다. 교회에 최고의 법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성도들 편에 서 계신다. 돋보기안경은 교회를 지켜보는 세무사와 같은 심판주의 입장이다.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헌금을 거둬들이는 교회를 비판하고 감독하는 것이며 이는 화가 자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교회 권력이 강력해서 그 누구도 잘못된 교리에 대해 비판할 수 없어서 함구했지만 훗날 자신의 그림을 보고 후손들이 잘못된 역사임을 비평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예수님께 질문한 헤롯 당원은 주님의 답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돈은 가치중립이다. 비록 그 형상이 세속적인 가이사의 모양일지라도 돈은 선도 아니었으며, 악도 아니다. 그러나 로만카톨릭은 그 돈을 하나님께 드리는 명분으로 거둬들여, 가이사 보다 더 악한 세속적인 욕망을 채워 교세를 늘리고 유지하는 비용으로 사용한 것이다. 15세기 보다 6세기 이후인 오늘의 시대에 과연 내가 속한 교회, 내가 벌어들이는 수입에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는지를 감독하는 감독자가 계신가, 티치아노는 그림을 통하여 오늘 내게 묻고 있다. 내가 가진 재물은 가치중립적이지만 나로 말미암아 그 물질은 거룩해 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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