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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부활의 소망

[로마칼럼]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진리를 잃어버린 시대…

이 시대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성경의 진리를 버렸습니다. 이유는 괜찮은 직장을 입사하려면 몇 십대 일의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현실 때문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친구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가 말세의 특징(딤후3;1-3)이라고 바울이 언급했는데 우리는 바로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빅톨 위고(1802-1885)는 세계적 문호로 이미 유명했지만 개인 생활은 문란했습니다. 그의 문란한 행동은 가정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1841년 여름 어느 날, 사랑하는 딸 레오폴디느의 시체가 파리의 센 강에 떠올랐습니다. 딸은 아버지가 바른 삶으로 돌아올 것을 간청하는 편지를 남기고 강에 몸을 던진 것입니다.

빅톨 위고는,“이 비극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심판이다!” 라고 울부짖으며 회개했습니다.
그는 달라졌습니다. 이제까지의 문란했던 행동을 정리하고 바른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변화된 삶을 그의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자신의 삶에 진정으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위대한 증거가 바로 부활입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십자가 꼭대기에서 목 박혀 죽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그 무력한 모습 앞에 하나같이 이제 우리의 사역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태풍처럼 밀려올 거대한 핍박의 두려움 때문에 음습한 곳,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곳에 모여 닥쳐올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운명이 어떻게 전개 될 지에 대하여 저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전혀 타개할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삼년 동안, 오직 리더이신 주님만을 좇아 왔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주님께서 종교지도자들의 손에 죽으셨습니다.
이제 저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일을 찾아가는 것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모인자리에 누구한 사람 입을 열어 앞날에 대하여 의견을 내 놓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로 두려움만이 가득했고 공기조차 너무 무거웠습니다.

이런 상황을 전환 시켜줄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그 방에는 온통 앞으로 일어날 두려운 상황에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방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문들이 모두 닫혀 있었습니다. 아니 꽁꽁 닫아 걸어놓고 있었다고 해야 맞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종교지도자들이 제자들을 체포해 오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할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숨 막히는 자리로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신 첫 말씀이 바로 평강에 대한 축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에게 있어서 평강(평안)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먹는 문제는 이미 해결했습니다. 또 나름대로 예전과는 상상할 수 없이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지나친 경쟁사회에서 내가 살아남아야한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성경의 진리를 버렸습니다. 이유는 괜찮은 직장을 입사하려면 몇 십대 일의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현실 때문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친구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가 말세의 특징(딤후3;1-3)이라고 바울이 언급했는데 우리는 바로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활한다는 사실도 아주 희미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의 선배들은 부활의 소망하나로 카타콤배의 음습한 땅굴을 용기 있게 선택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린자녀들을 희생해가면서도 말입니다. 또는 찬란한 미래의 개인적은 세상의 꿈을 저당 잡히면서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모셔 들여야 합니다.

도마처럼 주님의 손에 있는 못자 국을 보고,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대어보고, 날카로운 창으로 깊이 파인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보는 한이 있더라도 부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파스칼이 고백했던 것처럼, 주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팍팍한 삶의 현장으로,
보이는 것만 중시하는 우리에게
주님 오소서,
찬란한 부활의 모습으로!!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의 부활
신앙을 회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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