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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수난상 Crucifix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수마을커뮤니티교회 담임/ 10회

보나벤투라 (Segna di Bonaventura) Crucifix

영국 옥스퍼드 석좌 교수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란 책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회의나 갈등을 느끼게 해 준다. 신앙이 정립된 사람은 예외겠지만 신앙심이 깊지 않은 사람에게 만들어진 신은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준다…

인간이 시작을 설명하는 존재론에는 많은 주장들이 있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짐승으로부터 발전 되어 왔다는 것을 정설로 믿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증거는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이 창조된 것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기록된 것은 오직 성경뿐이다. 그러나 성경은 과학적 근거로 기록된 책은 아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사람에게 전달했고, 그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책인 것이다.

사람은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짐승들은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백 년 전, 천 년 전, 그 이전의 짐승의 모습과 문명세계에 살고 있는 짐승들의 생활 패턴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만약 짐승들에게도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세상은 몇 번이고 바뀌었을 것이다. 인간 보다 짐승들이 가진 본능적 능력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빨리 달릴 수 있고, 높이 날 수 있고, 그들이 가진 힘은 인간을 갈기갈기 찢고도 남을 수 있다. 그렇게 힘이 강할지라도 그들에 의해 인간이 위협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그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다. 힘이 강한 짐승을 길들이고,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문화적 특성 때문이다. 그래서 짐승 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으며, 더 빨리 달릴 수 있으며, 더 높이 날 수 있게 되었다. 문화적인 특성은 땅과 하늘과 바다를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이며,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특권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이러한 특권을 주신 것이다. (창1:28)

진화론은 과학적인 근거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론을 반대하는 다른 신앙체계일 뿐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인간이 신을 만들어 왔으며, 또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은 종교의 신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것이다. 인간이 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혹은 인간이 신을 주장할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유한한 인간이 전능한 신을 만들 수 있다면 지구촌은 벌써 멸망을 초래했을 것이다.

잘못된 교리와 신앙은 신을 만들 수 있다거나 인간의 힘이 신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 왔다. 유럽 교회 내에 장식된 성화들이 그 증거이다. 성화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과 동떨어진 세계를 그려냈다. 성경적 사실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몸부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명화들이 오히려 순결한 신앙을 갖는 일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는 마치 만들어진 신이라는 저서 한권이 순수 신앙에 흠집을 내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교회는 오래 시간 성화를 숭배해 왔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로만카톨릭을 지칭한다. 핍박을 받던 초대교회가 3-4세기에 이르러 종교의 자유가 주어졌다. 자유의 차원을 넘어서 권력을 가진 정교회가 되었다. 동네 마다 우뚝 솟은 예배당을 세우는 것은 지도자의 힘의 상징이며, 그 지역의 중심역할을 감당했다. 교회 일꾼이 키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형 건물들이 즐비하게 세워졌다. 교회의 정체성이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순수 신앙이 아니라 권력이 주어진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정교이었기에 교회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며, 권력자가 되는 지름길이었다.

예배당을 장식하기 위해 이교도를 믿었던 화가들이 고용되어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그림화 시켰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교도 사상이 교회 깊숙이 들어왔다. 물론 이 표현들은 극단적으로 한 부분만을 보는 견해일 수 있다. 화가들이 그려낸 성화들은 성경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은 성화 앞에서 삼위일체와 십자가 성호를 그으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거리낌 없이 행했다. 그것이 곧 믿음의 표출로 여겼기 때문이다. 인간의 속성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무엇인가 눈으로 보이는 형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믿게 된다.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신비사상가이며 스콜라 신학자였던 ‘보나벤트라“ (Segna di Bonaventura)에 의해 14세기 초에 그려진 예수의 십자가 수난상 (Crucifix) 역시 이런 관점에 본다면 구약성경에서 엄격하게 제한하는 우상숭배의 한 모습일 수 있다. 예수님 오론 쪽에는 마리아, 왼쪽에는 예수의 제자인 사도 요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탈리아 시에나(Siena)교회 정 중앙에 세워진 제단화이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촛불을 켜고 성호를 긋고 기도했다. 그것은 곳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이라 여겼을 뿐 아니라, 마리아와 사도요한을 성인으로 믿었으며 동시에 그들에게도 기도를 드렸다. 이는 분명 도킨스의 주장처럼 인간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만든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은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십자가에는 인간을 속박하는 마귀가 달려 있으며 그곳에 내 자아가 달려 있어야 하는 것이 성경적 십자가상이다. 주님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가 죽으신 것은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함이시다. 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로 해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믿음이 되는 것이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불신이 되는 것이다.

믿음을 택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은 심판의 부활이든, 생명의 부활이든 자기 영혼이 져야 한다. (요5:29) 하나님께서 강압적으로 믿음의 길에 들어서게 했다면 전 인류는 믿음으로 충만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압적인 믿음은 종교기계일 뿐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움직여 믿음을 택해야 하는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 유한한 지식을 가진 인간이 창조주에 대해 해석해 낼 수 없다. 인간이 가진 문화로 하나님을 해석하게 되면 만들어진 신이 되는 것이다. 교회를 장식하는 온갖 성화들은 경제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는 있을 수 있지만 성경적이지 않게 되는 것은 성화를 그린 사람들의 신앙심 문제 때문이다. 그림 안에 은밀하게 이교도의 심벌을 숨겨 놓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적 이슈들을 성화 곳곳에 그려넣었다. 당시 종교가 권력을 가진 집단이기에 그 집단에 반대하는 표명을 하기도 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은 성화에 새겨진 내용물이 아니라 성경 자체로부터 확인하여 믿는 것이 믿음의 본질이 된다.

인간의 타락한 욕망은 끊임없이 신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신을 지배하려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몫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지만 세상의 차원을 넘어서서 신의 존재를 규명하려 한다. 이는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 의해 유전자를 물려받는 것이라 주장하는 제한된 억측인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도록 되어 있다.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인간에 의해 지배당하는 세상, 인간에 의해서 신 존재가 규명되는 세상이다. 이는 윤리와 도덕, 사회적 가치 판단이 있다 할지라도 극도로 타락한 인간본성의 표출일 뿐이다. 내가 속한 세계를 다스릴 수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세계를 넘보며 다스리려 하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더 나아가 인간에게 주어진 세상을 거룩함으로 다스릴 수 없으면서 신의 영역 까지 침범하여 인간의 발아래 굴복시키는 것은 심판을 자처하는 행위인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존재하셔야 하며, 인간은 인간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짐승은 짐승으로 존재해야 한다. 짐승이 인간이 될 수 없으며 또한 인간이 하나님으로 둔갑할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오래전에 끝이 난 역사적 사실이다. 주님은 이제 십자가에 계시지 않다. 만약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끝이 난다면 예수는 인간일 뿐이며 그 누구도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 바라보는 십자가의 현실은 그리스도께서 못 박혀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욕망으로 가득한 내 자아일 뿐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마귀의 일인 사망권세인 것이다. 왜곡된 십자가 성화 앞에서 성호를 그으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종교적 위선이며 우상숭배이다. 바울의 고백이 진정한 십자가 수난에 대한 묵상이며 십자가 고난에 참여하는 정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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