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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로마의 마차, 영국의 증기기관차, 미국의 우주왕복선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63회

전세계 기차선로 폭의 유래…로마제국 마차

“모든 작가는 웹스터 사전의 표절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과 같이 모든 사람은 과거의 것에 의존하거나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의 미국과 유럽, 전 세계의 기차선로 폭의 대부분은 영국의 기차선로에서, 영국의 기차선로는 로마시대 전차의 바퀴의 폭에서, 그리고 로마전차의 폭은 두 마리 말 엉덩이의 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고대 로마시대 마차의 폭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현대에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로마제국의 상징인 마차의 폭 1,435mm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프랑스의 시인, 라 퐁테뉴가 처음 사용한 말과 같이, 로마와 길은 떼어놓을 수 없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료에 따르면, 로마제국 최초의 도로는 BC 312년에 완공된 “비아 아피아”(Via Appia)가도로 알려져 있다. 또한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 284-305)시대 때에 “로마제국의 국영 도로는 372개로, 총연장 길이 약 8만5천 킬로미터에 달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현재 미합중국이 확보하고 있는 고속도로의 총 연장 길이 8만8천 킬로미터와 비슷하지만, 속주국과 연결한 도로 113개를 포함하면 훨씬 더 길다. 로마제국의 거대한 도로망은 정복과 군사목적으로 건설되었다. BC 220년경에 건설된 로마와 아드리아 해 연안의 프라미아 도로는 동부유럽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전략적 군사도로였다. 이어 BC 191년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점령한 후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이집트까지 연결, 북부 아프리카 연안 일대에 도로망을 건설했다. BC 180년까지는 리옹을 기점으로 네 개의 도로를 라인강과 연결시켰고, 영국을 점령한 후에는 서유럽의 도로를 도버해협을 건너 런던을 거처 요크까지 연결시켰다. 도로는 리옹을 기점으로 이베리아 반도로 남하해 스페인의 톨레도(Toledo)를 거쳐 대서양까지 뻗어나갔다. AD 20년에는 그 유명한 알프스 통로를 뚫어 프랑스의 리옹까지 연결, 리옹을 서유럽 도로교통의 중심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로마제국이 각 도시와 점령한 지역에 도로를 건설할 때, 도로의 폭은 당시 로마군의 주력 부대인 쌍두마차가 달릴 수 있는 폭을 기준하여 만들었다. 두 마리의 말이 편하게 달릴 수 있는 최소한의 폭, 즉 두 마리 말 엉덩이의 간격은 4피트 8.5인치로, 이것을 미터로 환산하면 1,435mm가 된다. 다시 말하면 로마가 수세기 동안 건설한 수많은 도로와 도로를 달리는 전차의 폭은 두 마리의 말 엉덩이의 간격이 기준이 된 셈이다. 광대한 도로망 덕분에 로마의 도로를 달리는 전차와 마차의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BC 1세기 중엽 줄리어스 시저는 하루에 160km를, 이로부터 100년 후에 티베리우스 황제는 하루에 300km를, AD 68년 네로 황제가 죽었을 때에, 죽음을 알리려 스페인으로 달렸던 전령은 540km를 단 36시간 만에 주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로마제국은 정복의 수단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도로를 만들었고 철저하게 관리했다. 오늘날 고속도로와 같이 로마는 이미 2천 년 전에 사람이 탄 마차는 하루에 120km, 화물수송 마차는 24km 정도만 달리도록 했고, 화물도 330kg을 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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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산업혁명의 상징인 증기기관차의 폭 1,435mm

역사에서 바퀴가 발명된 것은 수천 년 전이었지만, 이전의 바퀴들은 대부분 수동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바퀴가 자동으로 움직이게 되었을 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인류사회에 자유와 평등을 고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영국의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의 질과 가치를 제공한 것이라 할 만하다.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영국의 경제학자인 아놀드 토인비(1852-1883)가 그의 저서 “산업혁명”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는 1760년부터 1840년대에 영국에서 농업 및 가내수공업에서 기계 공업으로 변화했던 과정을 산업혁명이라고 불렀다. 이후 산업혁명이란 말은 유럽은 물론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경제, 사회적 변화를 지칭하는 말로 확대되었다. 산업혁명은 제임스 와트(1736-1819)의 증기기관의 발명과 철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스티븐슨(1781-1848)이 증기 기관차를 발명하므로 산업 혁명에 크게 이바지하였고, 세계의 교통수단에 새로운 혁명을 가져왔다. 영국도 초기엔 지역마다 철로의 폭이 서로 달랐지만 1846년 영국의회는 궤간법을 제정하고 모든 영국 본토의 철로의 폭을 1,435mm로 하는 표준궤를 도입하여 스티븐슨의 이름을 따서 “스티븐슨 게이지”(Stephenson Gauge)라고 불렀다. 하지만 조지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하고, 철로의 폭을 설정할 때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고, 이미 로마제국이 기준으로 삼았던 마차의 폭, 4피트 8.5인치, 즉 1,435mm와 동일한 폭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현재 전 세계 60% 이상이 “스티븐슨 게이지”라고 불리는 표준 궤간인 4피트 8.5인치, 1,435mm를 채택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 궤간을 사용하고 있다. 이 표준 궤간보다 넓으면 광궤(廣軌)라고 하고 좁으면 협궤라 부른다. 그러나 스페인은 나폴레옹의 침공이후,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표준궤간보다 넓은 1,520mm와 1,668mm의 광궤를 선택했다.
지금 전 세계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의 자판기 배열도 1867년 처음 수동타자기에서 사용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루소는 “좋은 제도가 좋은 미덕을 만든다.”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제도란 두 개념 “System”과 “Institution”을 포함하고 있다. 전자(System)는 지배적이고 명령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면, 후자(Institution)는 오랜 시간에 걸쳐 능동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조지 스티븐슨은 후자(Institution) 즉 능동적인 제도를 따랐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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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첨단 과학의 상징인 우주왕복선의 폭 1,435mm

미국도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지역마다 다양한 규격의 열차선로가 존재했다. 그러나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한 후 미국 대부분의 철로는 스티븐슨 게이지인 1,435mm로 통일되었다. 그것은 영국의 기술자들이 미국 철도를 건설했기 때문이었다. 1869년 완공했던 미국 최초의 대륙 횡단 철도 이후 모든 미국의 철로의 폭 역시 1,435mm로 통일되었다. 이런 미국의 선택은 비단 철로의 넓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07년 8월 미국 나사(NASA)에서 우주왕복선 인데버(Endeavour)호를 쏘아 올렸던 적이 있었다. 우주왕복선에 부착되는 “솔리드 로켓 부스터”(Solid rocket booster, SRB)는 이륙 후 2분쯤 지나 약 67km의 고도에서 분리되어 바다에 떨어진 후 회수하여 다시 사용된다.
처음에 나사측은 “부스터”를 좀 더 크고 입체감 있게 만들려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공장이 있는 유타주에서 “부스터”를 만들어 발사대까지 기차로 운반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기차선로보다 크게 만들 수 없었다. 결국 나사측은 추진 로켓 “부스터”를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차의 선로의 폭과 동일한 4피트 8.5인치, 1,435mm로 설계하여 만들 수밖에 없었다.
물리학에서 “경로의존”(path dependence)이론과 “스노볼 효과”(Snow-Ball Affect)란 이론이 있다. “경로의존”이론이란 관성의 법칙과 유사한 개념으로, 물체가 일단 어떤 한 경로를 선택하여 진입하면 그 경로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이론이다. “스노볼 효과”이론 또한 눈송이가 높은 산에서 아래로 굴러가면서 작은 눈덩이들을 흡수하여 갈수록 더 커지는 효과를 말한다.
2천 년 전 로마제국의 두 마리 말 엉덩이에서 비롯된 1,435mm, 마차의 폭은 철을 삼키고 재생하던 근대 산업혁명도 감히 바꾸지 못했고, 나아가 인류 최첨단의 과학 기술도 우주왕복선의 넓이를 자유롭게 바꿀 수 없게 되었다. 중국어에서 “말(馬)엉덩이를 다독이다.”(拍)라고 하면 “아부하다.”라는 뜻이고, 몽골인은 “자기 말(馬)을 칭찬하면 좋아 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중국식으로 하면, 오늘날 인류는 과거의 역사에 대하여 아부를 하고 있는 것이 되고, 몽골식으로 하면, 과거 역사를 아주 좋아한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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