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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스토테른하임의 벼락, 젊은 루터 생애를 바꾸다

[루터&종교개혁] 김현배 목사/ 베를린 비전교회/ 2회

스토테른하임에서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루터

1505년 7월 2일, 그 들판에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번쩍거렸다. 루터는 친구와 함께 허겁지겁 들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을 때 벼락에 맞게 되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친구(후에 알렉시우스라고 불려짐)가 벼락에 맞아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루터의 에르푸르트 대학 생활…

학문에 대한 열정이 점점 뜨거워진 18살의 루터는 독일에서 에르푸르트(Erfurt) 대학교에 입학했다. 독일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그 당시 이 대학에는 스콜라 철학자들과 인문주의 학문의 권위자들로 존경받는 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곳에서 루터는 중세 스콜라 철학을 공부했다. 주로 논리학, 변증법, 수사학, 물리학, 형이상학 등이었다. 또한 루터는 문학과 고대의 고전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루터는 라틴어 실력이 탁월하여 대학 도서관에서 라틴어 성경 전체를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음악을 사랑했으며, 즐겨 노래 부르고 악기를 연주했다. 그는 열의를 다하여 공부를 했고 좋은 성과를 얻었다. 루터는 1502년에 인문학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1505년에는 인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루터는 그의 아버지의 큰 기대에 따라 법률가가 되기 위해 에르푸르트 대학교의 법률대학원에서 법학 공부를 하였다. 드디어 아버지의 꿈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부친은 루터가 세속 법률 교육을 받도록 학비를 계속 지원했고, 심지어는 턱 없이 비싼 책인 법전까지 사 주었다. 1505년 부활절부터 법학 강의를 듣기 시작했던 루터는 갑자기 법률 공부를 그만 두었다. 신기하게도 루터에게 돌연한 방향 전환이 생겼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새로운 그의 인생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스토테른하임(Stotternheim) –  “루터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신다. 심한 폭풍 가운데 나타나서 욥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지축을 흔드는 천둥과 번개로 루터에게 나타나셨다. 에르푸르트 대학원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한 루터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먼 길을 걸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1505년 7월 2일, 그 들판에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번쩍거렸다. 루터는 친구와 함께 허겁지겁 들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을 때 벼락에 맞게 되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친구(후에 알렉시우스라고 불려짐)가 벼락에 맞아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루터는 큰 충격을 받았다. 천둥 번개는 그 자체로는 하나의 자연현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루터 시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벼락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상징이었다. 벼락에 맞아서 즉사한 친구의 죽음은 루터의 일생 중에서 가장 두려웠던 경험이었을 것이다. 평소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루터는 그만 땅바닥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그는 온 몸이 떨리도록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리고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다급한 심정이었다.  

그는 당시 광부들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 안나 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했다. 이것은 그가 아직 주님과의 만남이 분명치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성 안나를 향해 앞으로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을 했다. 루터의 서원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환경에 의해 일어났다.

훌륭한 법률가가 되겠다던 루터는 단 한 번의 벼락 사건 때문에 그의 인생 목표가 달라졌다. 그의 마음은 일순간에 수도사로 바꿔버렸다. 이와 같은 루터의 결단은 결코 소명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무서움과 다가올 심판에 대한 공포,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또한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도사가 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스토테른하임의 체험이다. 신비하고 하나님의 섭리가 놀라울 뿐이다.  

이 체험은 루터 생애에 있어서 놀라운 전환점이 되었다. 루터처럼 우리들도 생의 전화점이 되는 스토테른하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가슴 설레이고 감격스럽고 역사적인 현장인 스토테른하임의 주위는 넓고 푸른 들판뿐이다. 하지만 이곳은 루터가 벼락을 맞아서 수도사가 되겠다고 결심하던 지점이다. 이 위대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1917년 높이 2m의 비석이 이 지점에 세워졌다.

루터의 서원 기념비에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Geweihte Erde  거룩한 땅
Wendepunkt der Reformation  종교개혁의 전환점

In einem Blitz vom Himmel wurde der junge Luther hier der Weg gewiesen
하늘에서 이곳에 떨어진 번개가 젊은 루터에게 그 길을 보여주었다

2. Juli. 1505  1505년 7월 2일

Hilfe, Du Sankt Anna, ich will ein Mönch werden
도우소서, 성 안나여, 내가 수도사가 되겠나이다

Ex Thuringia lux  튀링겐에서 빛이 발하다

중세암흑기에 튀링겐에서 빛이 발하다 – “종교개혁의 불이 붙기 시작하다”

초대교회 당시,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많은 전도자들의 복음 전파로 인해 복음의 등불은 뜨겁게 타올랐다. 하지만 중세기 유럽에서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진리가 완전히 가리어져 있었다. 교회들은 참된 영적 생명과 활력이 없었다. 교회가 부패한 상태로 타락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개신교 설교자가 없던 시기이며 그 누구도 복음을 선포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로마 가톨릭교회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오랜 동안 종교적인 불만 및 소란함이 쌓이고 쌓였다. 그래서 중세 암흑기라고 부른다. 이제 중세교회의 억압은 깨트려지고 닫힌 문이 열려져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나타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악행을 정화하여 철저하게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종교개혁이 필요했다.

하나님은 부패한 중세시대를 마무리하시기 위해 루터를 고난 학교에 입학 시키셨다. 어린 시절부터 경건한 가톨릭 신자였던 루터는 신앙 교육과 삶의 시련으로 훈련되어져 가고 있었다. 경건한 평민에 속한 젊은 루터는 수준 높은 교육의 결핍과 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오히려 더욱 더 강인해 졌고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전투적인 성품을 가지게 되었다.

루터는 무엇인가 살아있는 신앙을 원하고 있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의 개혁이었다.

에르푸르트대학원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있던 루터는 벼락 사건으로 인해 법관으로서의 희망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의 부친은 루터가 장차 법률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가 수도사보다는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다. 루터는 아버지를 크게 실망시키게 된다. 루터가 수도사가 되기로 서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아버지는 큰 충격 속에 빠져 버렸다.

그런데 루터는 법학에서 완전히 신학으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루터는 결코 뒤돌아서지 않았다. 묵묵히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길을 걸어갔다. 그 길은 종교개혁자로서의 발걸음이었다. 결국 루터는 어거스틴 수도원을 향하게 된다. 1505년 7월 17일,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Augustinerkloster)의 문을 두드렸다.

루터의 내면에 변화가 일어났다. 루터는 1498년 청소년 시절, 아이제나흐 게오르규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처음으로 종교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1505년 스토테른하임에서 천둥 번개 치던 날, 루터는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하였다. 역사학자들은 사실상 루터의 종교개혁의 불은 스토테른하임에서 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렇다. 이곳에서 루터는 종교개혁의 불을 지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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