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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저널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초상, “아담과 하와”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수마을커뮤니티교회 담임/ 13회

Jan Gossaert, Adam and Eve

범죄 한 인류의 조상은 남성의 완벽함과 여성의 아름다움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땅도 저주를 받게 되었다. (창3:17-18) 그들의 모습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초상이 되었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담겨 있다.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그의 부모를 만나지 않더라도 사용하는 언어나 행동으로 가정에서 일어나는 것을 상상으로 그려 볼 수 있다. 그렇게 그려진 상상도를 가지고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전혀 다른 그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엔 그의 인생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조상들과 심지어는 주변 인물의 삶도 담겨 있다 해도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 민족의 발달사는 시대별 얼굴을 분석해 보면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민족의 얼굴 형태는 둥근 계란형이 주를 이뤘다. 달덩이 같은 얼굴이 미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얼굴이 달덩이 갔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욕이 된다. 사람의 얼굴 형태는 음식문화와 생활환경에 의해 변형된다. 현대인들은 우리 민족이 가졌던 전통적인 둥글하고 넙적했던 얼굴 형태를 버리고 브이 형태의 턱 선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자연적 힘으로 안 된다면 과학의 힘을 빌려서라도 갸름한 얼굴 형태와 바다 같이 큰 눈과 오뚝 솟은 코를 후천적으로 만들어 간다.

아들들만 득실거리는 가문에 딸아이가 출생 했다. 공주의 출생은 가문의 기쁨이었기에 온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병원으로 달려갔다. 신생아실에서 만나는 손녀의 모습은 못생겨도 너무 못생겼다. 며느리를 보면 연예인 같은 외모인데 그 몸에서 태어난 딸아이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생아여서 그러려니 하고 일 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성대한 돌잔치를 하는데 참석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미인인데 애기는 누구를 닮은 거냐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안에 이런 생각이 멤 돌았다. 원판 불변의 법칙을 초월할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땅에 존재했던 인류 중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 가장 아름다운 인간은 아담과 하와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양과 형상으로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담이나 하와의 모습은 상상력으로 그려낼 수 있지만 실제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웠을 것이다. 노아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천년 가까이 살았다. 백년도 못사는 현대인들이 천년 가까이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베스트 셸러였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있었다. 요즘 이 책을 패러디 하여 ‘아프니까 노년이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백년을 살지 못하지만 노년의 삶이란 질병으로 인하여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천년 가까이 살면서 병으로 죽었다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건강하게 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땅을 떠나 영원한 나라로 가는 것이다. 하루살이가 인생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백년도 못사는 인간이 천년을 살았던 사람들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들은 완벽한 인간 본형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 본형은 고장 난 인간을 수리해서 사용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가장 남자다운 모습은 아담일 것이며, 가장 여성스런 모습은 하와일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 함으로 그 모든 본형을 잃어 버렸다. 사람의 형태만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야 하는 땅 조차도 형벌을 받았다.

천년 가까이 살았던 아담을 생각할 때 어떻게 그렇게 긴 세월을 살았을까 의구심을 갖게 된다. 현대인들은 백년도 못 살면서 치아는 노년이 되기 전에 의치를 해 넣어야 하고 건강 상태는 만수까지 건강한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 노년을 살아야 한다. 아담은 천 년 가까이 살면서 그의 치아는 어떠했을까? 그의 건강상태는 어떠했을까 상상할 수 없게 된다. 실상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지으신 것이다. 천년은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이지만 영원에 비한다면 지극히 짧을 뿐이다. 영원에 천년은 하루만 살 수 밖에 없는 하루살이보다도 짧은 인생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천년이 하루 같다는 사실을 실감하기에 인간은 비좁은 식견으로는 역부족일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가장 완벽한 남성과 여성은 아담과 하와였을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증거도 제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이 틀리지 않을 수 있음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 아담이 범죄 하기 직전에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플랑드르의 화가인 ‘얀 호사르트’의(Jan Gossaert) 아담과 이브의 그림엔 전현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 그들의 얼굴을 일그러진 있다. 죄를 지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죄의 속성을 그들의 얼굴에 담아냈다.

무엇이 그들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만들었을까? 결론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죄를 지었다는 것의 다른 의미는 하나님의 형상의 파괴인 것이다. 화가가 그리려 했던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지 않았을 때 그들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완벽한 남성, 아름다운 여성의 모델이며 본질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는 순간 그들이 가졌던 고유의 남성미와 여성미는 파괴되었다. 성경에 하와의 죽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담은 에덴동산을 쫓겨나서 930년까지 살았다. 그의 나이에 에덴동산이 포함되는지 동산 밖에서의 나이인지는 정확치 않다. 아담과 하와에 대해서는 성경에 그렇게 많은 기록이 없기 때문에 영적 상상력으로 그들의 모습을 그려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담이란 이름은 하나님께서 언제 그 이름을 지어 주셨는지 언급하지 않으신 상태에서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라 하실 때부터 ‘그 사람’에서 ‘아담’으로 불려졌다.(창2:16, 19) 하와의 이름은 범죄 한 이후에 아담이 지어주었다. (창3:20) 범죄 한 인류의 조상은 남성의 완벽함과 여성의 아름다움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땅도 저주를 받게 되었다. (창3:17-18) 그들의 모습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초상이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었기에 땅도 함께 타락한 것이요, 세상에 어둠의 문화가 지배하게 되었음을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입혀 주신 (창3:21) 최초의 복음으로만이 가능한 일이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은 얼굴엔 자신의 인생이 담겨 있다. 일그러진 얼굴을 가지고 은혜로 산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아담이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음으로 회복되는 것이요, 회복된 얼굴에는 그리스도의 향기 뿐 아니라 인자함이 배어나올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일그러진 얼굴로 에덴동산을 쫓겨났을지라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에덴동산을 회복하여 천국의 한 모퉁이가 되게 할 수 있다. 지옥과 같은 이 땅에서 살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한 모퉁이인 에덴동산을 회복하여 살다 천국 본영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현대를 살아가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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