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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흑인소녀를 위한 노래

[시 해설 산책]  송광택 목사/ 출판평론가

랭스턴 휴스(Langston  Hughes), 흑인소녀를 위한 노래…

<흑인소녀를 위한 노래>는 차별받던 흑인인권을 위해 쓴 시 가운데 하나다. 휴스는 흑인 사회에서 성장했기에 그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문제의 본질도 꿰뚫어볼 수 있었다. 그는 차별의 실상을 몸으로 경험했고, 흑인의 언어로 그 고통과 곤고함을 글로 표현했다. 그는 시를 통해 인종차별을 고발하고 불의에 정면으로 맞섰다. 당시 미국 남부의 여러 주에서 흑인들을 향한 린치(lynch, 법적 절차 없이 폭력을 가함)는 일상적이었다. 특히 흑인 여성은 이중 삼중으로 잔혹한 대우를 받았다. 시인은 나무에 매달려 죽어간 흑인소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이 짧은 시를 통해 분노하고 애도한다.

흑인소녀를 위한 노래/ Song for a Dark Girl

저 남쪽 딕시에서/ Way Down South in Dixie
(난  고비를 겪고 있다.)/ (break the heart of me)
그들은 내 사랑이던 젊은 흑인을/ They hung my black young lover
길 건너 나무에 매달았다./ a cross roads tree.
저 남쪽 딕시에서/ Way Down South in Dixie
(공중 매단 몸은 멍들었다.) / (Bruised body high in air)
난 백인인 내 주님께 물었다/ I asked the white Lord Jesus
기도가 무슨 소용이냐고./ What was the use of prayer.
저 남쪽 딕시에서/ Way Down South in Dixie
(난  고비를 겪고 있다.)/ (break the heart of me)
사랑은  비틀리고 벌거벗은 나무 위/ Love is a naked shadow
빈 그림자./ on a gnarled and naked tree.

‘흑인문학’은 흑인 작가에 의한 문학의 총칭이다. 흑인문학은 노예제나 인종 차별 문제와 관련하여 독특하게 발전하였다. 글을 배운 흑인들은 흑인영가(黑人靈歌)를 지었으며, 19세기 중반에는 윌리엄 웰스 브라운(William Wells Brown)이 <클로텔, 제퍼슨 대통령의 딸>(Clotel, or The President’s Daughter)이라는 흑인 최초의 소설을 썼다.
랭스턴 휴스(Langston  Hughes)는 미국의 시인, 사회운동가, 소설가, 희곡 작가, 그리고 칼럼니스트였다. 그는 재스 시(jazz poetry)로 불리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문학 형식을 개척한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뉴욕시에서 ‘할렘 르네상스’(Harlem Renaissance)의 지도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랭스턴 휴스는 흑인의 대중적인 노래인 블루스(Blues)를 시의 경시로 승화시켜 최초의 시집 〈슬픈 블루스 The Weary Blues〉(1926)를 펴낸 뒤 소설 〈웃음이 없지도 않아 Not Without Laughter〉(1930)를 선보였다.
휴스는 당시의 흑인작가와 예술가들처럼 차별적인 미국에 대한 대안으로 공산주의의 약속에 끌렸다. 그의 덜 알려진 정치적인 글들은 미주리 대학교 출판부에 의해 두 권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다수의 정치적 우파로부터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그 자신은 언제나 부인했다.
말년에 그는 명백히 정치적인 시보다 서정시를 더 많이 썼다. 1959년에 나온 그의 시선집(Selected Poems)을 출판할 때 그는 1930년대에 쓴 급진적인 사회주의적 시들을 모두 제외하였다.1963년 그는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하워드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1964년 웨스턴리저브대학교로부터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67년 전립선암 수술 후 그 후유증으로 깉은 해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2002년 미 우정국은 흑인 유산 우표 시리즈에 휴스의 사진을 추가하였다.
<흑인소녀를 위한 노래>는 차별받던 흑인인권을 위해 쓴 시 가운데 하나다. 이 시에서 딕시(Dixie)는 미국 남부의 여러 주, 특히 아메리카 남부 연합국(1860~65)에 속했던 여러 주를 가리킨다. ‘딕시’라는 이름은 1859년 대니얼 디케이터 에밋(Daniel Decatur Emmett)이 작곡한 노래 제목에서 유래했는데, 그 곡조는 남군의 행진곡으로 널리 불렸고, 때로는 아메리카 남부 연합국 국가로 여겨지기도 했다.
휴스는 흑인 사회에서 성장했기에 그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문제의 본질도 꿰뚫어볼 수 있었다. 그는 차별의 실상을 몸으로 경험했고, 흑인의 언어로 그 고통과 곤고함을 글로 표현했다. 그는 시를 통해 인종차별을 고발하고 불의에 정면으로 맞섰다.
당시 미국 남부의 여러 주에서 흑인들을 향한 린치(lynch, 법적 절차 없이 폭력을 가함)는 일상적이었다. 특히 흑인 여성은 이중 삼중으로 잔혹한 대우를 받았다. 시인은 나무에 매달려 죽어간 흑인소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이 짧은 시를 통해 분노하고 애도한다.
신학자 제임스 콘은 자신이 흑인이기 때문에 갖는 한계를 다음과 같이 고백한 적이 있다. “나의 신학적 한계와 내가 흑인들의 사회적 조건에 밀착되어 있다는 사실이 복음의 진리를 제대로 볼 수 없게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한계가 있다. 우리의 처지와 경험, 선입견은 삶과 사물을 제한적으로 보게 만든다. 독자는 이 시를 통해 흑인이 겪는 고난의 세월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때로 시는 이전에 무심히 지나친 이웃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작은 씨앗을 마음에 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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