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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벨사살 왕의 연회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16회

렘브란트/ Harmensz van Rijn Rembrandt (네덜란드, 1636- 1669)

역사적 사건을 렘브란트가 그려낸 것은 부흥에 취해 본질을 잃어가는 네덜란드 교회를 향한 힐책의 의도가 분명하다. 경제적으로나 숫자적으로 교회는 분명 부흥의 상승 곡선을 이루고 있다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기법의 대가인 렘브란트의 주 활동 무대였던 17세기 네덜란드는 최고의 번영을 이루는 황금시대를 맞는다. 선과 점이 배합하여 그림이 된다는 것은 빛과 어둠의 조화로움으로 가능하다. 키아로스쿠로는 빛과 어둠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기법이다. 렘브란트는 이 기법의 대표적 화가다. 빛과 어둠을 단순하게 배합하는 기교적 방법이 아니라 빛과 어둠에 대한 미술학적 철학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경제적 황금기의 정점을 이뤘던 17세기 네덜란드 교회역시 교회 부흥의 전성기를 맞는다. 교회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교회가 위기의 늪에 빠지기 시작할 때는 교회 부흥의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모든 교회가 부흥에 취해 있을 때 교회는 서서히 본질을 잃어 가게 된다. 이는 사견이 아니라 교회 역사가 말하고 있다.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순교의 선혈을 흘려 가며 초대교회는 부흥의 국면을 맞는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교회는 더 이상 한 곳에 머물 수 없게 된다. 목숨을 위협하는 핍박이 그들로 하여금 세계로 흩어지게 했다. 교회는 신앙의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 생명이다. 신앙의 본질은 단순하다. 예수께서 제자 베드로에게 당부하셨다.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것이다.(마16:18) 교회는 거룩한 곳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살아 갈 수 있다 가르치고 배우고 주장하는 음부인 세상 안에 세워지지만 음부로부터 물들지 않고 복음의 순결함으로 오히려 음부의 어둠을 복음의 빛으로 바꾸는 것에 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교회는 예루살렘 뿐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주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의 부흥과 동시에 교회의 순결을 잃어 가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핍박이 그들을 세계로 흩어지게 하지만 그 역사는 반복된다. 순결한 신앙이 로마로 가서 의식과 제도가 된다. 그 의식과 제도가 유럽에 정착하여 부흥의 국면을 맞을 때 문화와 예술로 꽃을 피워낸다. 문화와 예술의 옷을 입은 복음이 미국으로 들어가 상업화 되며 기업화 되었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교회가 작았을 때는 타락하지 않는다. 순결을 잃지 않는다. 복음이 제도의 옷을 입고, 제도는 다시 문화와 예술이 되고, 그 문화는 상업과 기업화 되어왔다. 그 교회는 한국에 정착해서 교회사에 없었던 매가처치 시대를 여는 대기업으로 발전이면서 동시에 순결성을 잃어 가는 족적을 남기고 있다. 교회가 외적 성장하는 부흥은 하나님 나라 확장, 죽은 영혼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부흥하는 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 보다는 교회의 세력은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의 문을 막는 역할을 해 왔다. 이는 현실이면서 주님께서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지도자들에게 지적한 사안이기도 하다. (마23:14)

이와 같은 맥락으로 17세기 네덜란드의 교회 부흥은 최고의 문화와 예술의 꽃을 피워낸다. 복음의 순결성, 교회의 거룩성은 문화의 꽃에 가려지는 안타까운 역사를 남긴다. 교회의 부흥은 현실적 안일과 이생의 복만을 강조하는 기복적 신앙이 핵심신앙을 이룬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렘브란트는 경제적 발전 시기와 맞물려 부흥하는 네덜란드 교회를 성경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을 화폭에 담아 그 의미로써 고발하고 있다. 다니엘서 5 장 말씀에 기록된 내용이다. 느부갓네살의 아들 벨사살 왕은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귀족 천명을 불러 큰 찬치를 베풀어 준다. 아버지의 영광이 자신에게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곳에 참석했던 천명은 당시 바벨론이 지배했던 속국 나라를 대표했던 지도자들이었다. 벨사살은 자기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느부갓네살이 탈취해 온 예루살렘 성전의 금과 은으로 된 성물로 술을 마시면서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는 예술문화를 즐겼다.  

그렇게 축제가 최절정에 다다를 무렵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기록하였다. 그 광경을 지켜본 벨사살 왕은 뼈마디가 녹아져 내릴 만큼 떨었다.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단5:6) 가진 자는 그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무속적 신앙에 맹신하게 된다. 벽에 써진 글씨는 사라지지 않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당시 최 강대국인 바벨론의 모든 학술과 박수들을 불러 이 글을 해석하는 자는 나라의 세 번째 자리에 앉게 하겠다는 어명에도 뜻은 고사하고 글 자체를 읽지도 못했다. 다니엘이 등장하면서 그 말을 읽고 해석을 하게 된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의미는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단5:26-27) 며 하나님의 뜻을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전한다. 벨사살은 자신이 망한다는 해석을 듣고는 기분나빠하지 않고 오히려 약속한대로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게 한다.(단5:29)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렘브란트는 경제 부흥기와 교회 대 부흥기에 맞춰서 그려낸 것은 부흥에 취해 본질을 잃어가는 교회를 향한 힐책의 의도가 분명하다. 경제적으로나 숫자적으로 교회는 분명 부흥의 상승 곡선을 이루고 있다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인 것이다. 성공이라는 세상 시각으로 본다면 분명 네덜란드 교회는 부흥의 시기이며 사회에 큰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보니 교회의 본질을 잃어 가고 쇠퇴되어 가고 있음을 역사적 사건을 끄집어내어 화폭에 담아냄으로 시대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성경에 있다. 성경을 시대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교회 형태는 다르게 나타난다. 예수께서도 이러한 사실에 대해 즉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마9:17) 새 술은 변하지 않는 말씀의 본질이다. 새 부대는 시대에 담겨지는 문화이며 문명이다. 현실 세계에서 매 주일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고 예배드릴 순 없다. 새 부대는 본질인 새 술을 보존하기 위한 비본질의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 나를 포함하여 교회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이 “데겔”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는 말씀으로 부터 자유 할 자 누가 있겠는가? 교회를 책임지는 지도자 뿐 아니라 교회의 주체인 성도 한 사람도 하나님의 저울에 자유 하기는 어렵다. 교회가 어려워지면 지도자를 향해 돌을 던진다. 그것이 교회역사였다.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도 작은 어려움만 봉착하게 되면 모세를 향해 원망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목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성도의 짐이 가벼워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교회는 세속으로부터 자유 할 힘이 없다.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세상으로부터 왔으며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면 세속의 물결이 교회를 물들여 갈 뿐 아니라 교회를 판단하는 기준이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부흥의 전성기를 맞았다. 지금은 그것을 유지하기 보다는 어떻게 보면 이미 하향 곡선을 그린지 오래 되었다. 낯선 사역자들과의 만남이 때론 두려울 때가 있게 된다. 그것은 처음 나누는 말이 교회의 크기에 대한 정보를 묻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부흥했다는 것이 몇 가지 외적인 판단으로 결정되어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교회를 병들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한다. 교회의 초점은 하나님께 있다. 교회가 세상에 속해 있다지만 땅의 문화가 기준이 아니라 말씀이 기준이며 위엣 것을 생각하고 찾음으로(골3:1-2) 교회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렘브란트가 17세기 네덜란드 교회 부흥의 전성기에 그려낸 벨사살 왕의 연회에 관한 그림의 의미이며, 이 시대 교회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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