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문화칼럼 > 1492년 스페인, 1492년 영국, 1492년 유럽
문화칼럼

1492년 스페인, 1492년 영국, 1492년 유럽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69회

2천년 세계사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건이 무엇인가?

“2천년 세계사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건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미국인 90퍼센트 이상이 답한 것은 “1969년 7월20일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착륙한 것”이라고 했다. 그에 비해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지난 2천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1492년, 1498년의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과 바스코 다 가마마의 인도양 발견이라고 지적했다.

1492년, 스페인이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의 해가 되다.

1492년은 스페인 역사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해로 기록되고 있다. 1492년 스페인은 한 해 동안 세계사적으로 엄청난 세 가지 사건이 있었다. 먼저, 1492년 1월 2일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 나스르 왕국을 무너뜨리고 국토회복운동(Reconquista)을 완성하여 국토를 통일하였다. 이로써 스페인은 711년부터 1492년까지 약 800년 동안 아랍인(무어족)이 지배하던 전 이베리아 반도를 되찾았다.
둘째 1492년 3월31일, 스페인은 유대인의 추방령인 알암브라 칙령(Alhambra Decree)을 내렸다. 알암브라 칙령은 스페인이 그라나다를 침공하여 국토를 통일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시행했다. 칙령에 명시한 추방의 이유는 다름 아닌 “유대인들이 로마교회 교리를 무너뜨렸다.”라는 것이었다. 일부 유대인들은 단 4개월 만에 떠날 것을 강요받거나 개종을 명령 받았다. 스페인은 “유대인의 모든 재산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며, 동산과 부동산을 자유롭게 처분해 국외로 반출할 권리를 부여한다.”라고 명시하였지만 단서 조항으로 “금과 은을 비롯해 국가가 정하는 품목을 금지한다.”라고 했다. 겉으로만 재산의 반출을 허용했을 뿐 실제로는 금지시켰다. 스페인에서 유대인 추방령은 향후 세계 강대국의 변천과 부의 이동과 직결되었다는 점에서 세계사에서 주요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유대인 추방은 스페인에 치명적인 것으로, 바로 스페인에서 모든 자산과 브레인이 빠져나간 것을 뜻했다. 유대인들이 스페인을 떠났을 때에 유대인을 흡수한 나라들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를 부자로 만들기 위해 스페인은 가난을 택했다.”
셋째 1492년 8월 3일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0-1506)가 대서양을 출발하여 그해 10월12일 신대륙에 도착했다. 스페인이 마지막으로 유대인을 추방하던 8월 3일, 콜럼버스는 세 척의 배에 3백 여 명을 태우고 대서양을 출항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결혼한 사람답게 항해를 위해 먼저 포르투갈 왕에게 교섭을 했으나 성사되지 않자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원조를 받아 출항하게 되었다. 그는 1492년 10월12일 “구아나아니” 섬을 점령한 후에 산살바도르(San Salvador, 구원자)라고 명명했다. 그 후 쿠바 등 여러 섬들을 발견한 후 1493년 3월15일 귀환하여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 후에도 콜럼버스는 세 차례나 신대륙으로 건너가 온두라스, 파나마, 자마이카 등을 점령하고 귀환했다. 스페인은 1492년, 세 개의 영광의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92 세비아 EXPO”를 개최한바 있다.

1492년, 영국이 최초 ‘브렉시트’를 당한 해가 되다.

2016년 6월, 영국은 유럽연합탈퇴를 위한 국민투표에서 51.9퍼센트의 찬성과 반대 48.1퍼센트로 유럽연합 탈퇴를 확정했다. 이것을 “브렉시트”(Brexit)란 말로 표기하는데, 영국(Britain)과 탈퇴(exit)란 말이 합쳐진 합성어이다.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인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함으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번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한 마디로 유럽과의 분리를 의미하는 동시에 영국인 스스로가 섬나라가 되겠다는 것을 선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은 지금부터 500년 전만 해도 섬나라가 아니었다. 영국은 프랑스 본토 북서쪽 브르타뉴(Bretagne)를 오래 동안 차지하고 있었다. 영국은 프랑스 내에 있는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 끝없이 전쟁을 감수하였다. 국토 분쟁으로 양국 간 가장 치열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100년(1337-1453)전쟁이었다. 하지만 1492년 영국은 “에타플 조약”(the Treaty of Etaples)에 따라 유럽 대륙내의 마지막 발판이었던 브르타뉴를 프랑스에 내어준 이후 5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섬나라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였다. 프랑스인에게 1492년은 수세기 동안 빼앗겼던 브르타뉴 땅을 되찾은 기쁜 날이지만, 영국인에게 1492년은 뼈아픔의 해로 남게 되었다. 프랑스는 브르타뉴를 되찾기 위해 영국과 백년 넘겨 싸웠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Jeanne d’Arc, 1412-1431)가 등장하면서부터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원래 프랑스 브르타뉴는 BC 2세기부터 유럽에 흩어져 있던 켈트족이 이주해 온 지역으로, BC 57년에는 로마가 정복한 후 약 4세기 동안 통치하였다. 그 후 4-6세기에는 영국인(les Bretons)들이 바다를 건너 이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오늘날 프랑스의 브르타뉴는 켈트족과 로마인, 그리고 영국에서 이주해온 브르통들의 후손에 의해서 이룩된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영국의 입장에서 브르타뉴는 영국에서 건너간 브르통인들이 400년 이상 거주한 땅이므로 엄연히 영국의 땅이라고 할만하다. 그럼에도 영국은 땅과 주민 모두를 동시에 잃음으로 유럽본토에서 강제적으로 브렉시트를 당한 결과가 되었다.

1492년 유럽이, 전 세계를 식민지화 한 해가 되다.

2세기 경 로마제국의 영토는 유럽과 중동, 그리고 북아프리카 지역까지였다. 비잔티움에 수도를 둔 동로마제국이 1453년 오스만 튀르크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약 1천 년 동안 유럽과 중 근동을 지배했다. 동로마제국이 멸망하자 곧바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하면서 제국주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후 백년이 지난 16세기 후반까지 영국을 비롯하여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본격적으로 아메리카 정복을 통한 식민화 정책(European Colonization of the Americas)을 시도하였다. 가장 먼저 아메리카 정복에 나선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다. 스페인은 1492년 국토회복 전쟁을 끝낸 직후, 16세기 말까지 브라질을 제외한 모든 라틴 아메리카를 점령했고, 포르투갈은 동부 남아메리카를 차지하며 이를 브라질이라고 했다.
또한 4백 계주에서 마치 바통을 이어받듯, 스페인의 뒤를 이어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특히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와 빅토리아 여왕1819-1901)때는 황금시대로 세계 인구와 영토의 4분의 1을 지배하기도 했다. 전 세계의 도시와 강과 호수, 건축물에 그녀의 이름이 붙여졌고, 세계 군주들이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고 영연방에 합류했다. 유럽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하면서부터 세계는 정복자와 피정복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이분화 되면서 식민주의가 뿌리를 내렸다. 1600년대에 이르러 네덜란드는 서인도 제도에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1614년에 처음으로 맨해튼 섬과 허드슨 강변에 뉴 네덜란드 식민지를 건설했다. 1621년에 서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무역 활동을 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네덜란드는 미국의 뉴욕 주, 뉴저지 주 등에 뉴 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을 건설하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유럽 선박의 5분의 4 가량을 보유하고 있었고,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국내 인구의 절반인 100만 명가량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통해 전 세계로 진출했다. 프랑스는 루이 14세 때에 미시시피 강 일대에 광대한 루이지애나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리고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그린란드에, 러시아 제국이 알래스카를 획득했다. 1492년 이후부터 세계사는 지중해를 넘어 유럽이 정복한 국가들과 함께 기록되기 시작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인간은 도처에 있는 쇠사슬에 얽매어 있다.” 사람이 어디서 살든 어느 땅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필자: 김학우/ kmadrid@hanmail.net/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READ  음악가 바흐, 개혁자 루터, 루터와 바흐의 만남

Leave a Reply

Be the First to Comment!

Notify of
wpDiscuz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
Social Media Auto Publish Powered By : XYZScrip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