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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소위 칼뱅의 도시로 일컬어지는 제네바는 어떻게 개혁되었는가?(2)

[프랑스포커싱]  채희석 목사/ 파리 모두 제자교회/ 20회

칼뱅이 제네바 사역을 통해 남긴 유산 (3) :

제네바는 주 후 3세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며, 6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카톨릭교회가 자리를 잡게 된다. 중세 내내 제네바 시에 천주교 주교가 군림했지만, 실제 모든 권력은 시당국이 점유했던 도시국가였다. 종교개혁이 발생하기 전, 제네바 시는 잦은 소요, 도박, 사교 춤, 음주벽, 방탕 등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제네바를 통해 보여준 세상을 향한 개혁
제네바 시를 개혁하고자 한 칼뱅의 신념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일상생활을 사는 것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어 세상을 향해 복음의 새로운 빛을 비추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교회가 말씀 위해 제대로 세워지고, 교회와 정부가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고, 시민 사회가 건전한 도덕성을 가지고 회복하는 것이 기본적인 목표가 되었다.

이런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네바 시민과 유럽난민들은 세상을 향해 두 가지 기본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다. 이 섬김 또는 봉사의 정신으로 인해, 제네바 도시가 활력을 얻고, 노동과 기업 활동이 장려되었고, 그 당시 산업계의 별인 시계업, 인쇄업, 은행업 등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기술과 지식을 가진 수많은 난민들이 직업을 형성하면서 상호 협조하며, 가난한 자들을 돌보며 연대하는 도시가 되어간다. 더 나아가, 이들 난민 중에는 수많은 목사, 성경선생들도 많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제네바가 개혁 도시가 되는데 기여했고, 인쇄술과 더불어 칼뱅의 개혁 사상을 1550년에서 1600년 사이에 온 유럽에 전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는 오늘날도 제네바가 세상을 향해 열려있고, 경제적 부를 누리며, 많은 국제기구의 본부가 있는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모두 개혁의 유산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혜택이 없었다면 실현하기 어려운 것임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 과연 종교개혁의 현장, 제네바는, <하나님의 도성> 내지 <신정국가> 체제였는가? 많은 종교역사학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5. 다시 말하면 종교가 정치 위에 군림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칼뱅 자신은 어떠한 정치적 권력을 수임하지 않았고, 교회가 국가의 간섭에서 보호되길 바랬을 뿐이다. 그는 국가 수반이 교리를 판단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어디까지나 칼뱅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통치는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한 나리의 경제적 부나 정치적 위엄에 있지 않는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약자를 받아들이는 곳이다. 칼뱅은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 말씀의 법에 따라 점점 일치해 가는 도시국가 건설이 이루어 지도록 각 신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를 위해 그는 정부가 교회와는 분리되어야 하지만, 또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오늘날 정교분리 원칙이 적용되는 작금의 현실과는 다른 16세기 특수한 환경에서 한 말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가 의도한 것은 “제네바가 어찌하든지 복음에서 멀어지는 자들에게 비취는 강력한 등불이 되고, 금수에 의해 겁박 당하는 작은 새와 같은 연약한 신자들에게 둥우리 겸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6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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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간, 새로운 문명을 꿈꾸다
칼뱅은 어는 종교개혁자보다도 그 시대의 어두운 진상을 잘 이해하였다. 특히 배우지 못한 무지로 인해 신앙을 올바로 갖지 못하는 자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기 위해 성경번역과 많은 저서와 서신을 썼지만, 학교를 통한 계몽과 신앙교육에도 누구보다 앞서 추진하였다. 1541년부터 제네바 중학교(Collège de Genève)를, 1559년에 대학수준인 제네바 아카데미(Académie de Genève)를 세웠다. 그는 마치 제네바가 마치 <학교도시> (ville-école) 되길 바랬던 것 같다고 올리비에 아벨(Olivier Abel) 교수는 말한다7.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이 교회와 국가에 유익한 인물로 인격과 신앙을 쌓아지도록 추구하였다 또 그는 그 시대의 누룩과 같았던 미신, 점성술, 마술, 우상숭배, 방종에 벗어나도록, 세속함과 성스러움, 과학과 미신, 정치와 종교 간의 차이를 밝히고,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와 올바른 이성으로 현실을 이해하도록 일깨워 나갔다.

또 그는 성서적인 노동과 경제관을 제시하였다. 죄를 행하는 일이 이 아닌 이상, 모든 직업은 기독교의 완전함에 이르게 하는데 기여한다고 말했고 사회적 지위 차이는 존재할 지라도 모든 자가(왕들이나 농민이나) 하나님 앞에서 연약하고 불쌍한 존재로서 평등하다는 생각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 외에 이 세상 것들을 신성화시키는 것에 반대했고,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은 빈부격차,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지는 삶, 연대하는 삶을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가르쳤다.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노동은 부의 창조 뿐만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수단이 됨도 강조했다. 현대 사회학의 아버지 막스 베버(Max Weber)는 이런 개혁사상이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고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말하고 있다8. 끝으로 칼뱅은 신자의 양심이 하나님의 선함과 긍휼함을 신뢰할 때 참 휴식을 얻을 수 있으며, 비록 사람은 죄인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삶의 의미와 가장 큰 소망을 소유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교육, 사회, 경제, 정치 모든 면에서 칼뱅의 종교개혁은 그 당시 새로운 문명의 지평선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각주
5. Franck Belloir편집, Jean Calvin : de l’humanisme aux lumières de la foi, Paris Max Chaleil, 44-45쪽.
6. 상동, 46쪽.
7. 상동, 47쪽.
8. Max Weber, L’éthique protestante et l’esprit du capitalisme, Plon,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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