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문화칼럼 > 영국 시민혁명,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
문화칼럼오피니언

영국 시민혁명,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70회

세계사와 근대 국가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전환점

영국 시민혁명과 미국 독립전쟁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은 세계사와 근대 국가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중 영국 시민혁명은 근대 의회정치의 시발점이 되었고, 미국 독립전쟁은 압제받던 식민지 국가들이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열화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은 절대군주에게 억압받던 시민들이 자유와 권리를 찾기 위해 거리와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영국 청교도와 영국 왕권의 전쟁, 영국 시민혁명

“신이 하는 일에 왈가왈부 하는 것은 무신론이자 신성모독인 것처럼, 왕이 하는 일에 대하여 신하가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 또한 주제 넘는 짓이자 엄청난 모독이다.”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왕위를 이어 받은 제임스 1세(1603-1625)가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면서 전제정치를 강화하기 위해서 한 말이다. 제임스 1세(1566-1625)에 이어 아들, 찰스 1세(1625-1649)도 절대왕권을 고집하며 로마교회를 옹호하므로 의회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그는 영국이 중세로부터 시행해 오던 입헌주의 전통을 무시하고 의회의 승인 없이 세금을 징수하는 한편, 국교를 받아들이도록 강압하였다. 이로 인해 귀족들과 달리 중소상인, 수공업자 등 많은 국민들이 강하게 반발하였다. 찰스 1세의 전제정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스코틀랜드까지 강제로 국교를 강요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영국 국교회가 아닌 청교도의 신앙을 가능케 한 장로교회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에 찰스 1세가 요구한 사항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나아가 이런 적대적인 관계는 왕을 지지하던 왕당파와 왕을 비판하며 청교도 신앙을 옹호하던 의회 사이에 큰 내분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바로 이것이 청교도 혁명 혹은 영국 시민전쟁(1642-1651)의 단초가 되었다.

청교도 혁명은 결국 크롬웰(Cromwell, 1599-1658)이 의회파의 군대를 총 지휘하면서 승리로 이끌었다. 혁명은 결과적으로 찰스 1세는 처형되었고 찰스 2세는 추방되었으며, 의회파는 잉글랜드 연방(1649-1653)을 구성하여 크롬웰을 호국경으로 선출하였다. 영국의 시민혁명은 영국 역사에서 의회가 군주에 대항하는 첫 사례가 되었고, 이후 명예혁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영국은 시민혁명을 토대로 산업혁명을 일으켜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산업혁명으로 얻은  힘은 곧바로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국을 확장하는데 악용되기도 했다. 영국의 시민혁명은 존 로크(1632-1704)의 인간 오성론과 사회계약론 등이 영향을 주었고, 특히 존 로크가 말한 “권력자가 개인의 권리를 남용하여 불이익을 줄 때 국민은 위탁한 권리를 되찾을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 국민의 저항권은 이후 미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 청교도와 영국 왕권과의 전쟁, 미국 독립전쟁

1992년 영국이 EU 가입문제를 놓고 투표를 할 때에 반대자들의 구호는 “영원히 섬으로 남아야 한다.”였다. 영국이 한시적으로 EU의 회원국이 되긴 했지만, 또다시 섬나라가 되는 길을 택했다. 영국은 유럽 대륙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오히려 영국은 대서양 건너 미국과 더 가까워 “영미권”(英美圈)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인종과 문화적 유사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언어뿐 아니라 정치제도와 법률, 문화적 관습에서도 영국의 문화를 이어받은 것이 많다. 그럼에도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이다. 그것도 평화적이 아닌 양국 군대가 치열하게 싸워 독립하였다. 미국의 독립전쟁(American War of Independence, 1775-1783)은 미국의 13개주가 영국의 조세정책 등에 반발하여 식민지 독립을 위해 일으킨 전쟁이다. 1776년 7월 4일 13개 식민지 대표들이 서명한 독립선언문을 통해 미국의 독립을 천명하였다.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가운데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포함되어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그리하여 통치체제의 정당한 권력은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동의로부터 유래한다.”(미 독립선언문 중에서)

미국 독립선언서는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이 기초한 것으로,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 등,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는 천부의 권리를 선언하고 있다. 또한 그 권리의 확보를 위하여 정부가 조직되어야 하는데, 정부의 정당성은 국민의 동의에 의해서 유래한다고 식민지 독립의 정당성과 함께 독립전쟁의 취지를 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길을 택할지 모르지만, 나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달라.” 1775년 3월 23일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의 세인트존 교회에서 패트릭 헨리가 한 말에서도 미 독립전쟁의 목적과 정신을 분명히 하고 있다. 1789년 미국은 새 연방이 탄생하고 하원과 상원이 조직되어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역설적으로 미 독립전쟁은 제임스 1세에 의해서 쫓겨난 영국의 청교도들과 그 후예들이 미국 땅에 있는 대영제국의 봉건적 구질서와 특히 왕권의 세력을 완전히 쫓아낸 격이 됐다. 이로써 영국의 청교도들이 영국과 미국에서 연거푸 전쟁에서 승리한 셈이다.

인간의 자유와 봉건적 제도와의 전쟁, 프랑스 대혁명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1789년 8월26일 프랑스 국민의회가 채택한 인권선언 제 1조이다.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 새롭게 국가를 건설한지 불과 6년이 지난 후 프랑스 대혁명(1789-1794)이 일어났다.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은 봉건적인 구체제의 모순(앙시앵 레짐, Ancien Regime)을 척결하는데 있었다. 앙시앵은 “낡은”이란 의미며, “레짐”은 “체제”를 의미한다. 즉 “앙시앵 레짐”은 봉건적인 낡은 신분체제를 말한다. 실제로 당시 왕족과 귀족 그리고 고위 성직자 등, 인구의 2 퍼센트가 면세 등의 혜택을 누리면서 주요 관직을 독점하고 있었다. 반면 인구의 약 98 퍼센트인 평민들이 무거운 세금을 부담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왕실의 과도한 소비로 국고는 바닥이 났고, 미 독립전쟁 참전으로 국가 재정은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볼테르, 쟝 작크 루소 등에 의하여 확산된 계몽주의 영향으로 자유, 평등주의가 확산되면서 귀족과 성직자의 특권층에 대한 평민들의 비판 의식이 결국 혁명을 가져오게 했다. 1792년 국민의회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으로 하는 공화정을 선포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반면 루이 16세를 비롯, 1300여명을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참극도 뒤따랐다.

프랑스 혁명은 우선 정치적인 면에서 절대왕정과 군주제를 타도하므로 봉건제도가 막을 내린 대신에 시민의 자유, 평등을 확립하는 의회정치 형태로 전환되었다. 경제적인 면에서 영주의 토지소유 특권과 독점을 없애고 교회 및 귀족들의 토지를 몰수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사회적인 면에서 신분으로 인한 불평등과 특권을 제거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 주체가 되는 근대사회의 길을 열었다. 프랑스 혁명은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인간의 자유와 평등, 인간은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사실을 주지시켰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힘이 소수의 왕족과 귀족에서 시민에게 옮겨지는 역사적 과정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은 주위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면서 19세기 이후 각국의 시민 혁명의 촉발제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은 러시아 혁명을 비롯, 아시아만 해도 인도와 파키스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수십 나라가 독립하였고, 아프리카에서는 무려 53개국 이상이 독립하였다. 또한 중동의 많은 나라, 동구권까지 모두 주권을 회복하는 영광을 안았다. 나아가 한국의 근대사, 3.1운동, 8.15 해방, 4.19, 광주 항쟁 등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빅토르 위고(1802-1885)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100년 동안 프랑스가 겪어야 했던 격변기(프랑스 민중들의 비참한 삶과 1832년 프랑스 6월 봉기 등)의 상황을 약 20년에 걸쳐서 레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 1862)이란 작품 속에 담았다.

필자 : 김학우/ kmadrid@hanmail.net/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READ  누가복음서의 찬송 이야기

Leave a Reply

Be the First to Comment!

Notify of
wpDiscuz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
Social Media Auto Publish Powered By : XYZScrip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