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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시키는 승리만 승리가 아니다

[로마칼럼]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황제는 회개하시오! 라는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

암브로시우스는 당시 동서 로마를 통일한 강력한 황제 테오도시우스와의 대결로 유명하다. 황제는 죽을 때 이런 고백을 남겼다. “내게 진리를 말해준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다.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다.”

바티칸 성당에는 사도 베드로가 의자에 앉아 있는 형상이 있다. 그 앉아 있는 의자의 네 모서리를 들고 있는 네 사람들을 가톨릭의 4대 박사라고 칭한다.
그들은 서방의 박사로 암브로시우스(Ambrosius340-397), 어거스틴, 그리고 동방의 박사로 아타나시우스와 크리소스톰이다. 이토록 암브로시우스는 아주 중요한 인물로 여긴다. 암브로시우스는 저 유명한 밀란의 감독으로 어거스틴에게 세례를 베푼 사람이다. 위대한 사람이 위대한 사람을 태어나게 하는 것 같다.
암브로시우스는 로마귀족의 아들로 아버지의 근무지인 독일 남부의 트리어에서 340년에 출생했다. 부친이 죽은 후 그는 부친의 친구인 프로보스의 도움으로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법학과 수사학을 공부했고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프로보스의 보좌관으로 있다가 밀란 지역의 집정관이라는 관직을 맡아 취임하게 되었다. 당시 밀란의 주교 선출문제로 대립하고 있었는데 중재를 훌륭하게 해냈다.
당시 밀란은 이단으로 판단 받은 아리우스파와 정통파의 대립이 심각했다. 주교 선출 문제의 소란한 질서 유지를 위해 참석하던 중 회중을 향해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연설을 하던 중에 한 어린아이가 “암브로시우스를 감독으로” 라고 외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리에 운집한 수많은 사람들이 합창으로 “암브로시우스를 감독으로!”  “암브로시우스를 주교로!” 외침으로 밀란의 주교로 취임하게 되었다. 30세의 젊은 나이에 말이다. 아직 세례도 받기 전이었기 때문에 급히 세례를 받아야 했다. 이는 아주 예외적인 사건이었고, 그 일이 성령께서 지시하신 일로 여겨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수사학을 전공하였기에 설교에 아주 능했다. 무엇보다도 담대한 믿음으로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그는 특히 당시 동서 로마를 통일한 강력한 황제 테오도시우스와의 대결로 유명하다.
테오도시우스 황제(379-395)는 신앙이 투철하였던 황제였다. 그래서 이름도 하나님께서 주신 자(Theo, dosius)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로마제국의 유일한 신앙으로 공식적으로 공포한 황제였다. 그래서 로마제국은 비로소 기독교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는 황제였지만 수도사적 경건한 삶을 살았던 보기 드문 훌륭한 황제였다.
그에게 390년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로마의 주둔군이 있는 데살로니가에서 주민들의 폭동으로 야기된 일이다.
당시 데살로니가 총독으로 고트 즉 출신인 부테릭이 로마군 사령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참모들과 함께 시민들의 재산을 탈취했고 격분한 시민들은 반란을 일으켜 사령관과 참모들을 돌로 쳐 죽였고, 그 시체를 끌고 거리를 행진했다. 그 보고를 받은 황제는 군대를 보내 항거한 주민들을 죽이라는 명을 내려 보냈다. 그 명령을 받고 로마군인들은 무려 양민 6천명을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소식을 들은 감독 암브로시우는 황제를 향해 대노했다. 편지를 보내 공식적으로 참회하고 교회 출입을 금하도록 했다.
그러나 황제는 부활절에 측근을 이끌고 교회에 들어오려 하였으나 주교는 교회 입구에서 완강하게 들어오기를 거절하였다. 황제는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고 성탄절에 다시 들어오려고 했다. 그러자 주교는 또 다시 교회 입구를 막아서서 먼저 참회를 요구했다. 그러자 황제는 성경에 보면 다윗도 죄인이 아니었습니까? 라고 했다.
그러나 암브로우스는 황제께서는 다윗의 죄만 모방하시겠습니까? 다윗의 참회도 모방하셔야지요?
황제는 마침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성찬례에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달라고 간청했다. 황제는 시민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였다. 그리고 비로소 주교의 용서를 받고 성찬례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는 죽을 때 암브로시우스의 품에서 죽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했다.
“내게 진리를 말해준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다.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다.”
나는 이런 일로 암브로시우스 주교도 대단하지만 더 대단한 사람은 황제가 아닐까 한다.
막강한 권력을 손에 잡고 있는 황제요, 명령 한 마디로 주교를 날려버릴 수 있는 사람인데, 주교의 책망을 듣고 젊은 주교의 말에 순종한 그 겸손함은 설명의 여지가 없다 하겠다.
변명 같지만 황제는 로마 총독을 죽인 데살로니가 시민들을 보복하라고 하였지만 곧 지나치다고 여겨 그 명령을 철회하려고 신하를 보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재차 내린 명령은 너무 늦게 도달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감독 암브로시우스는 동서 로마를 통일한 대단한 황제를 철저하게 굴복시켰다.
자신의 우렁찬 명령, 황제는 회개하시오! 라는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저 위대한 황제가 성전 입구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그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황제가 젊은 주교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전 로마제국이 주교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시민들은 암브로시우스의 담력에 놀랐을 것이고, 또한 비범한 황제의 양 같은 순전한 겸손함에 놀랐을 것이다. 권력과 세상 힘이 클수록 비례하여 자존심이 높은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지도자는 여간해서는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자신의 명령에 굴복하는 황제를 눈앞에 보고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전신을 타고 흐르는 통쾌한 승리감 때문에 몹시 흥분했을 것이다. 남자의 속성은 이런 데에 있다 싶다. 그래서 너도나도 대통령 되겠다고 나서는 게 아닌가!
새파랗게 젊은 회장이 늙은 중역들을 세워 놓고 아이 나무라듯 꾸짖을 때, 고개를 푹 숙이고 침을 꼴깍 꺼리는 정황을 보며 속으로 그 얼마나 통쾌할까 싶다. 아마도 암브로시우스는 이런 비슷한 심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에 비해 황제는 비례적으로 패배자로서의 울분을 느꼈을 것이고—
물론 신앙심이 돈독한 황제이니 그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신앙의 세계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황제가 감독의 그 어떤 책망도 수용할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굳이 그런 식의 책망이 필요했을까 싶다. 요즈음으로 말한다면 그를 당회장실로 불러 이번 일에 황제는 잘못 했소이다. 회개하시오.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 둘만의 자리에서 회개하고 용서를 베풀어 주었다면 결과는 어찌되었을까?
암브로시우스의 이런 일방적인 승리는 후에 앙금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교황들에게 교황은 황제보다 위다!  라는 논리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 논리를 적용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논리를 교황 수위권(首位權)의 신수설(神授說)이라고 한다. 이 치열한 싸움은 온통 진흙 탕 싸움이었다.
진리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동물적인 싸움, 내가 당신보다 높다 라는 치졸한 싸움 말이다. 이런 싸움들이 인류 역사에서는 끊임없이 점철되었다. 우리의 주님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는데 말이다.
어떤 경우에서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겸손을 추구하려고 할 때만이 서로에게 윈윈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교회 역사에서 이런 부분을 배우고 삶에 적용해야 할 것 같다.
즉, 온전히 굴복시키는 승리만이 진정한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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