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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묵상문화/예술

경계표 이동

[그림이 있는 말씀일기]  손교훈 목사 글, 아들 손민해 그림/ 12회

본문말씀 : 신명기 19장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신명기 19장 14절)

소유를 향한 욕심에 끝이 없는 게 인간인가?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게 인간이고, 가능하기만 하면 네 주머니 속 좋은 것이 내 주머니 속에 들어오면 좋겠다 싶은 게 인간인가 보다. 그 욕심이 커지면 힘으로라도 그렇게 해버리는 게 인간인지도. 더군다나 땅의 ‘경계표’는 눈에 띄지 않게 잘 만 옮겨 놓으면 상대의 것 대부분을 건드리지 않고도 그 이상의 큰 효과를 낼 수 있으니, 이스라엘이 이런 욕심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과 재벌이 가까이 하며 서로를 이용하는 이유도 이런 데 있을 것이고…

전해 내려오는 어느 신부님 이야기가 생각난다. 교회 생활을 잘 하지 않던 한 사람이 죽어가며, 살아 생전 자신의 신앙생활이 부끄러울 뿐이지만 죽어서 만이라도 꼭 교회 마당 묘지에 장사되고 싶다고 신부님께 간청한다. 그 사람은 죽고, 그러나 신부님은 교회에 내려오는 규칙에 따라 그 사람의 시신을 교회 마당에 묻을 수 없다고 통보하고, 결국 그 사람의 자녀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교회 울타리 바로 바깥에 아버지 시신을 장사한다. 이 후, 죽은 이와 유가족을 마음 깊이 사랑하는 신부님은 지혜를 발휘하는데, 바로 교회 울타리를 조금 넓힘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사람의 묘지를 교회 마당으로 포함시키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렇다. 경계표를 옮기는 것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내 관용의 경계표를 넓혔다고 뭐라 말할 사람 없을 것이고, 이웃의 경계표를 내 쪽으로 더 옮겨와 이웃의 땅을 더 넓혀 주었다고 그 이웃이 쫓아와서 멱살 잡을 리 없다. 대형 교회 목사들의 부자 세습은 문제가 되지만, 만약 자립도 어려운 시골 교회를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사역하려 한다면 도리어 많은 사람들이 칭찬할 것이다.

복음이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경계표를 옮겨 놓으신 것 아닌가! 인간을 사랑하사 자신의 거룩한 하늘 경계를 넘어, 굳이 오시지 않아도 될 세상 속으로 인간에게로 오신 하나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다 허물어 주시고, 죽음이라는 경계표를 꺾어 다시 생명으로, 영원까지 이르는 엄청난 사랑의 ‘경계표 이동’,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이 신비한 사랑의 경험 속에 사는 자가 무언가를 더 소유하려고 자기 영역을 확장하느라 애쓸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저, 어둠의 세계에서 어둠의 자식으로 살 수 밖에 없던 나를 빛으로 확 감싸주시고 그 빛의 울타리 속에서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신 은혜에 감사 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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