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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그리는 사람들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18회

The Supper at Emmaus (1601)

→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1571-1610, 로마)

예수는 어떠한 형체도 남기지 않으셨다. 잘생기면 얼마나 잘 생기셨으며, 또 못생기셨으면 얼마나 못 생겼겠는가? 외적 모습은 인간이 보는 시각이요 여론일 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신의 모양을 형상화 시켰다. 신의 모습이 형상화되지 않은 것은 종교라 할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를 종교라 하지 않고 신앙이라 부른다. 신앙 역사 이래 구약과 신약시대를 통틀어서 신앙의 세속화 되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부터 최대 강대국인 애굽을 전멸하다시피 했다. 백성들의 전술전략이 아니었다. 광야 40년간 많은 전쟁이 있었다. 전쟁의 승리는 당연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갔다. 백성들이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이 직접 싸워 주셨기 때문이다. 가나안에 입성할 때 첫 번 관문은 여리고성이다. 당시 여리고성은 철옹성이었다. 그 누구도 침략할 수 없는 무적의 성이었다. 역사적으로 여리고성은 싸움에서 진적도 없었으며, 침략해서 성공을 거둔 나라나 군대는 더더욱 없었다. 여리고성을 침략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그것은 보편적 상식이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예측했을 것이다. 광야에서의 전투는 승리했을지라도 여리고성과의 전투에서는 폐할 것이라는 전술적 예측을 했다. 광야에서의 전투와는 차원이 다른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시의 합리적이며 객관성 있는 여론이었다.
그러한 예측은 이미 출애굽 한 이후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냈을 때 이미 형성된 여론이었다. 현대는 여론에 의해 움직인다. 이미 확정된 드라마 주인공도 죽일 수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이 여론이 가진 힘이다. 여론은 현대 뿐 아니라 인류가 번성할 초기부터 이미 존재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뒤에 두려운 것이 있었다. 당연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회개해야 할 터인데 그가 두려워 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인 여론이었다. (창4:14) 가인은 주의 낯을 뵙지 못한 것을 두렵다는 고백을 했다. 거기까지는 믿음의 고백이라 할 수 있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주를 떠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의 최종 두려움은 만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즉 당시의 여론인 셈이다. 신앙이 타락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인류는 시작부터 여론을 두려워했고 악의 존재는 여론을 움직여 믿음으로 살려는 사람들의 신앙을 흔들었다. 이스라엘 초대왕인 사울도 여론으로 인하여 크나큰 죄를 범하게 된다. 블레셋 연합국은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병거 삼만, 마병 육천,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총공격을 감행했다. (삼상13:5) 사무엘 선지자는 정한 기한인 7일이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백성들은 사울을 버리고 도망하기 시작했다. 적들이 포위를 한 상태여서 즉각적으로 군대를 동원해야 하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언제 올지 모르는 상태였다. 일주일은 백성들을 설득하여 기다렸지만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었다. 사울은 여론에 밀려 번제를 집례 했다. 번제를 마칠 때쯤 사무엘 선지가 온 것이다.
사울은 왕이신 하나님의 뜻 보다는 백성들의 여론을 중요시 여겼다. 전쟁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그는 알지 못한 것이다. (삼상17:47)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에 정착했을 때 두려워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가나안에 정착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많은 나라와 무수히 싸워야 하는데 어떻게 백성들이 그 많은 전쟁을 버텨낼 것인가? 이는 세상에서 보는 여론이었다.
하나님의 시간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다. 오히려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들의 문화와 동화 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가졌던 바알과 아세라 문화는 신을 형상화해서 섬겼다. 당연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그들의 종교 문화를 본 받아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서 섬기려 했던 것을 두려워하라 하신 것이다. 그래서 아예 십계명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을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 형상을 만들지 말라 하신 것이다. (출20:23)
중세 교회 시대에는 성상을 숭배했다. 종교개혁의 일환은 성상 숭배를 하지 않는 것도 포함되었다. 성상 숭배가 우상 숭배임을 인정하지만 당시에 그려진 성상들이 예술적 가치가 탁월하기에 교회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게 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형상 안에 갇히지 않으신다. 그분의 형상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그러하시다. 그는 완벽한 신이시면서 또한 완벽한 인간이셨다.(빌2:6-7) 인간의 종교적 심리는 반드시 신앙의 대상이 눈으로 보이는 형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보이지 않는 신을 믿기 보다는 보이는 신을 만들어 믿는 것이 인간이 가지는 종교성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 시내산 정상에서 모세가 죽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런 결론을 내린 광야백성들을 향해 불신앙의 행동이라 돌을 던지는 것을 삼가 해야 한다. 제한된 광야에서의 환경이라면 그 누구도 모세가 죽었다는 여론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믿음이 없어서 그러한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니다. 광야에 고립되다 보면 한 사건이 주어지면 그 사건에만 몰입하게 되고 그것이 진실이 된다. 그 시대로 갈 수 있다면 우리도 그런 결론에 동의했을 것이다.
시내산 정상은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는 돌산이다. 한 낱에는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뜨겁다. 달아 오른 돌에 요리를 할 수 있을 만큼 온도가 높다. 물 한 모금 없는 그곳에서 한 달여 시간을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은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성을 가진 백성들의 결론이었다. 설혹 한낮의 뜨거운 뙤약볕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한들 한밤의 영하 기온에서 얼어 죽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이성을 가진 인간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모세가 백성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행했던 신적 형상의 부재나 다를 바가 없었다. 우상이 지배하는 이집트 문명에서 그들에게 익숙한 신의 모습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형상이어야 했다. 하나님의 대행자인 모세가 보이지 않고 산에 죽었다는 여론에 휩싸이자 백성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보이는 신의 형상을 만들기를 원했다. 그것이 송아지 형상이었다. 송아지 형상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었다. (출32:4) 그들은 우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보이는 하나님을 만든 것이다. 성경은 그것을 우상이라 말씀하신다. (출20:23)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초상화로 그려진 모습만 해도 수백 가지는 넘을 것이다. 잘생긴 백인의 모습으로, 혹은 동양인으로, 통통한 어린 아이 모습, 21세기에서는 흑인 예수가 등장하기도 했다.
예수는 어떠한 형체도 남기지 않으셨다. 그의 모습은 잘 생긴 영화배우가 아니라 인류의 고통을 품으시고 죄를 속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오셨기에 이 땅 자체가 고난이요, 고통의 가시밭길이셨던 것이다. 잘생기면 얼마나 잘 생기셨으며, 또 못생기셨으면 얼마나 못 생겼겠는가? 외적 모습은 인간이 보는 시각이요 여론일 뿐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는 언제나 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간혹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 앞에서 화가를 꿈꾸는 젊은 화가 지망생들이 예수를 모방하여 그리고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아니라 화가가 그려낸 과거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리라. 그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임을 부정할 수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광야에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마11:7) 목적은 한 가지다. 군중이 아니라 선견자여야 했다. 오늘날 교회에 군중들이 모여든다. 그렇게 모여든 목적이 교회가 줄 수 있는 고급문화가 아니어야 한다.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를 잃어버리고 있다. 예수의 모습이 아님에도 예수의 거짓 형상의 사진을 걸어 두고 위로를 받으려 하고, 세련된 종교 문화가 오히려 구원자 예수를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필자: 박심원 목사
런던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순회선교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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