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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통령 당선인 슈타인마이어

[독일시사리뷰]  이성춘 목사, 프랑크푸르트국제교회/ 24회

독일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 가는 방향 “대조된다”

슈타인마이어(Frank-Walter Steinmeier, 1956년 1월 5일 ~ )는 자신의 인사말을 통해서, 세상과 독일 안에서의 우파적인 사람들,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 이미 풍성한 살고 있는 사람에게 경고를 보내었다. 불안과 위협을 당하는 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서, 세계를 분열시키거나 고립시켜가는 것이 아니라 협력해 가도록 이끌어 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외형적으로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과 정책의 방향이 대척점을 이루는 모습인데, 서로 함께 대립과 반목이 아닌 보완과 협력의 관계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한다.


지난 2월 12일에 독일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외무부 장관으로 있었던, 사회민주당 소속의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가  참여 선거인단의 총 1253표 중에서 931표, 74%의 지지를 받고 1차투표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슈타인마이어는 현재의 불안전한 국제정세 시기에, 외무부 장관의 직무를 위해서 자신을 불태운 사람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었다. 슈타인마이어가 작년 크리스마스 이전에 대통령후보자로서 녹생당의 위원회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에, 세계정상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세계정치 흐름을 만들어갔던, 화려한 외무부 장관이 국내의 일들 중심으로 가장 단순한 일들을 감당해야하는 대통령직을 선택하게 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받았다. 국민의 대다수도 여론조사에 의해서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선호하는 대통령후보이었다. 그의 대통령직은 3월 19일 부터 시작되어 5년 동안 지속된다.

독일은 개신교 공화국인가?
뮌헨에서 발행하는 남독일 신문에서 헤리베르트 프란틀은 “독일 대통령직은 화려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개신교적이다. 그직은 능력이 있음에도 뽑내지도 않고, 눈부실 만큼 화려하지 않고, 호사스럽지도 않다.” 이 대통령직은 그 자세가 개신교적으로 각인된 시민의 삶의 환경에 맞추어져 있는, 이성적인 자기훈련의 자세에 어울린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힘을 가진 그의 외형은, 개신교 교회에서의 장식과 같이 단순하며 뒤에 물러서 있는 것 같은 것으로 설명하였다. 교회 안에서는, 영적인 설교, 기도, 공동의 찬양 등과 같은 실제로 중요한 것들이 장식에 의해서 방해 받아서 안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힘은 말의 능력에 있으며, 그는 설득시켜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설교가 언제나 중요한 개신교 교회에서는 사람들은 45분 이내로 설교하는 목사에 대하여 그가 일하기를 거부한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독일 대통령직에 대한 감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프란틀의 이해는 적절하면서 놀랄만한 분석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대통령은 개신교의 윤리, 곧 근면, 자기훈련, 조심스러움과 단순함을 지녀야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특성들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11명의 대통령 가운데에 두명만이 카톨릭 신자이고, 9명의 대통령이 개신교인었다는 것이 우연한 것만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개신교 대통령과, 개신교 목사의 가정의 출신이, 현 수상인 메르켈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독일공화국을 “개신교 공화국” 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독일이 언제나 개신교 공화국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이런 개신교 공화국 같은 독일에서도 모슬렘 대통령이 나오지는 않을까?  지난 연말에 현 대통령인 요아킴 가우커가 모슬렘 정치가도 자신의 후임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언급하여, 정치가들과 교회지도자들 사이에서 찬반논쟁이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이때에 모슬렘정치가가 독일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웬말인가? 라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영국의 런던 시장처럼 현대화된 모슬렘이 독일 대통령이 되는 것이 무엇인 문제인가? 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다. 독일 대통령 선거는 교회의 총회장을 선출하는 일이 아니기에 후보자의 종교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말들도 나왔다. 현시대는 다문화, 다종교 사회이며, 이런 사회에서 사회의 구조는 통합과 관용이라는 틀로 형성되어 간다. 이것은 곧 개신교 공화국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의 정치적인 모토는?
슈타인마이어는  자신의 정치적인 모토에 대하여 질문은 받으면 손사래를 하였다. 그것은 대통령은 전혀 교황이 아니며, 대통령의 직을 나타내는 어떤 문양이나 문양 언어가 필요하지 않으며, 또한 시간이 흘러감으로 추진되어지는 모토가 결정체로 남기 때문이다. 요한네스 라우 전대통령은 “분열대신 화해”를 자신의 모토로 가졌고,  로만 헤어족은 독일 전체를 관통해 가야하는 충격, 밀치기를 자신의 대통령 임기의 마지막에 발견해 냈다고 한다.
“민주주의에서의 이성을 구원하기  위하여”의 기고하면서, “세계화의 세상에서 문제들이 언제나 복잡화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 문제의 해결도 단순해질 수 없다”고 슈타인마이어는 자주 언급했는데, 이것이 한 모토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슈타인마이어의 첫 번째 인사말은 독일이 용기를 필요로 하다는 것이었다. 튀니지에서 온 여성이 독일에서 와서, “당신들은 나에게 용기를 주기도 했지만, 경제의 세계화로 불안함을, 또한 안전과 삶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주었다”라는 말을 했는데, 슈타인마이어는 그 말을 공감하며 당선인 인사말에서 그 말을 인용했다.
슈타인마이어는 모든 상황들이 긍정적이지 않지만, 자신들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노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슈타인마이어가 용기를 주고자하는 사람들은 기득권의 사람들이 아닌 위태롭고 위협을 당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렇게 슈타인마이어는 불안함으로 정치를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과 외침으로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하였다. 현 대통령인 요아킴 가우커가 자유를 중심 주제로 삼았는데, 새 대통령 당선인은 용기를 중심주제로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인사말에 대해서, 마티아스 하이트만은 대통령 당선인인 슈타인마이어는 “전혀 흔들어 깨우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불안해 하는 정치적인 계층을 안정시키고, 다시 잠으로 이끌어가고자 노력하는 마취의사와 같다” 고 그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우리가 용기를 가지자!” 는 것은, 어두운 지하실에서의 휘파람과 같이 울리고 있다고 폄하했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일어서기와 변화를 위한 용기가 아니라 조용히 계속해서 잠에 빠져들게 하는 용기일 뿐이다.  오늘의 세계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잠에 취한 개념의 추구자가 아니라 스스로 서며, 깨어나고 깨우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동일한 표현에 대하여 다양하게 평가가 이루어지며, 사회가 다양한 것들을 포용하고 있음을 본다.

대통령 당선자의 가정
대통령 당선인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가 겸손한 개신교 기독교인으로서,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20세의 딸인 메리트와도 좋은 관계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더욱 빛나고 있다. 슈타인마이어는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사람이며, 양노원에 들어가서 테이블에 앉아 거리낌없이 노인세대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의 부인인 엘케 뷔덴벤더는 그의 남편이 대통령이 될지라도, 자신은 여판사로서 계속 일하기를 원하였다. 그런데 현대통령 부부와 만남을 가진 후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그녀는 생각을 바꾸었다. 가우커의 동거녀도 저녈리스트로서의 직업을 포기했었던 것이다. 두 가지의 일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카레테 스토코브스키는 “영부인 역활이 과연 직업인가?”라고 질문하면서 영부인은 전혀 공식적인 직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자원봉사자로서의 일이며, 전통에 따라서 지켜지는 일이며, 임금도 지급되지 않는 것이다. 이 영부인 자리는 가부장적인 시대의 잔재인 것이다. 이 가부장주의는 여성들이 앞만보고 가는 그들의 남편을 뒤에서 도와주는, 남편의 자기실현을 위해서 뒤따라 다니면서 정리해주는, 다른 한편에서는 남편 옆에 서서 잘 보여지면 되는 것을 주 역활로 삼게 하였다고 비판한다. 오늘날 이런 모습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원하지 않으며, 21세기에는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퍼스트 레이디로서 후원 역활과 어린이, 어머니, 노인, 환자, 지체장애자들을 위한 사회적 참여가 좋은 일이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왜 자원봉사인가? 라고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퍼스트 레이디가 되지 않고도 이런 영역에서 참여하고 있는  다른 수천의 사람들도 그런 질문을 받고 있다.  그것은 잘 조직화된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가족과 보건 영역에 대한 장관들이 있는, 돌봄의 사역의 거대한 형태의 대안이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대통령 영부인은 단지 옆에 서 있는 것외에 자신의 의견이 거의 물어지지 않는, 업무 여행에 있어서 장식품이 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며, 자신의 남편을 위해서 그녀의 직업을, 단 5년을 위해서 포기해야만 한다면, 특별히 고귀한 것이 아니라 슬픈 것이라고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현대통령과 미래의 대통령의 비교
현 대통령인 요아킴 가우커의 개신교 교회와는 거리를 두는, 신학과 정치의 많은 부분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2011년 헤센-나사우의 교회의 날  행사에서 그는, “서독의 기독교는 70년대와 80년대에서 좌파적 성향이라고 언급했다. 2010년에는 신문에 기고하면서, “교회는 반드시 그의 근원을 확신해야하며, 자신의 이미지의 경영자만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이것은 바로 개신교인들에게는 큰 유혹이 될 수 있다. 그들은 현실을 만들어가고자 하며, 시대정신에 근접해서 함께 과도하게 이끌려지고 있다” 고 했다.
2017년 1월의 개신교 아카데미 튜찡에서의 새해인사에서는 그는 교회의 아카데미의 사역에 대한 비판적인 조언을 허락했다. “나는 다른 세속적인 교육을 감당하는 자들로부터 구별되는 고유의 특성이 여러분들에게는 주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밝히지 않고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아카데미가 우리들의 사회를 영향을 주는 모든 토론에서, 기독교의 믿음이 우리 삶에 제공해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들을 추가해주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세상에 가져다 주고 있는 큰 소망과 위대한 헌신을 알고 있다. 그럼으로 이러한 믿음의 중심적인 주제들이 논의의 주제들로 남아있어야 한다.”
이에 비해 새로운 대통령이 될 슈타인마이어의 신앙의 입장은 보수적 경건주의자들의 신실함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독일교회 협의회의 신앙노선에 가까이 있다. 이 교회협의회의 총회장인 모든 영역에서의 주제별 사고가 녹생당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다행히도 슈타인마이어는 보수주의자들과 대화를 거부하지 않고, 함께 기도하는 사람이다.   2019년에 도르트문트에서의 교회의 날 행사의 의장이지만, 대통령이 됨으로서 그는 이 역활을 아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
슈타인마이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라인교회의 의장인 만프레드 레코브스키(뒤셀도르프)는,  당선인이 교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고 표명했다. 카톨릭교회의 주교회의 의장인, 라인하르트 마르크스(뮌헨)도 기독교인으로서의 슈타인마이어의 공개적인 활동과  일상생활에서의 자기희생적인 참여와 독일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하여 관심을 깨우는 그의 높은 감각 등을 칭찬 하였다. 유대인 중앙회의 의장인 요세프 슈트터는 슈타인마이어를 대화의 사람으로,  대화의 파트너에게 대화의 추진능력과 공개성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으로 인정하였다.
대통령 선거를 진행한 국회의장인 노어베르트 람메어트는 참여한 선거인단들에게 “자기비판과 자기 수정”의 태도를 견지하여, 고립주의와 보호주의에 반대하여, “우리가 먼저” 라는 것을 철회하기를  권고하였다.  대통령 선거 이루어진 독일의회에서 진행된 것이 반 트럼프 연설이었던 것이다.   “우리 자신은 강한 유럽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한다.” 고 하여 도날드 트럼프와 블라디미어 푸틴에 대하여 대립각을 세웠다.
슈타인마이어도 자신의 인사말로 독일 대통령과 미국의 대통령이 가는 방향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슈타인마이어는 자신의 인사말을 통해서, 세상과 독일안에서의 우파적인 사람들,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 이미 풍성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경고를 보내었다
불안과 위협을 당하는 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서, 세계를 분열시키거나 고립시켜가는 것이 아니라 협력해 가도록 이끌어 가겠다는 슈타인마이어를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외형적으로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과 정책의 방향이 대척점을 이루는 모습인데, 서로 함께 대립과 반목이 아닌 보완과 협력의 관계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필자:이성춘목사 <paulusmissi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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