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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결혼과 가정생활

[루터&종교개혁] 김현배 목사/ 베를린 비전교회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9)

루터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수녀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 1499-1552년)와의 결혼이다. 1525년 6월 13일 오후 5시, 비텐베르크 시교회 요한 부겐하겐 목사의 주례로 루터는 카타리나와 블랙 수도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은 루터에게 있어서 자신을 개혁해야 하는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루터의 결혼신학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서 수도사가 결혼한다는 일은 엄청난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더 나아가 수녀와 결혼한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루터가 개혁을 요구하는 사항 중에 하나는 사회적 변화로서 성직자가 결혼하는 것이었다. 수도원 건물에 살면서 복음이 주는 자유를 누려왔던 루터는 세계에 성직자들이나 기독교도들은 자유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직자의 결혼과 복음적인 가정생활은 신학적 새로운 인간 실존의 모습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했다. 루터는 결혼이 하나님께서 가장 오래 전에 세상에 제정해 주신 제도로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결혼하고 살도록 지으셨다고 확신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며 거룩한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이요 소중한 보물이라고 생각했다. 루터는 하나님 말씀 다음으로 결혼을 매우 소중히 여겼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기적으로 존중해 주신 결혼이라는 거룩한 상태에 대해서 감사를 드렸다. 이와 같이 성경적인 결혼에 대한 신학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루터는 결혼생활이 독신 생활보다 훨씬 따뜻하고 단정하다고 했으며, 만약 이것이 없다면 지옥과 다름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루터는 종신 독신 서약이 성경의 교훈에 위배된다는 확신 속에서 온갖 악과 타락을 발생시킨 성직자의 독신제도를 반대했으며, 거룩한 결혼에 반대하는 자들은 인간으로 사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루터는 결혼하지 않는 거룩한 성직자와 결혼으로 자녀를 가지는 세속화된 일반 신도를 나누는 역할, 즉 중세 로마 교회가 말하는 결혼관을 비판했다.
그러므로 루터는 수도사들과 수녀들의 결혼을 위해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것은 성직자의 독신을 주장하는 로마의 독재로부터 구출하고 싶었고 성직자들도 이 결혼 제도의 유익을 얻을 권리가 있음을 몸소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이로써 성직자들의 가정생활이 세상에 다시 있게 되었다. 루터의 큰 영향력이다. 루터는 “행복한 결혼 생활보다 더 감미로운 연합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루터의 결혼관으로 인해 독일 사회에 새로운 개혁의 물결이 파도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1524년부터 수도사와 수녀들은 수도원 담을 넘어 탈주하기 시작하였다. 청어를 담는 텅 빈 통속에 12명의 수녀들이 숨어 수도원을 탈출했다. 그들이 세상으로 나옴으로서 결국 수도원들은 도처에서 텅텅 비어 있었다. 신부들의 결혼이 금지되었지만 그들은 결혼을 감행하였다.

루터와 카타리나의 결혼 생활

루터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수녀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 1499-1552년)와의 결혼이다. 1525년 6월 13일 오후 5시, 비텐베르크 시교회 요한 부겐하겐 목사의 주례로 루터는 카타리나와 블랙 수도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은 루터에게 있어서 자신을 개혁해야 하는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루터의 사생활이 개혁된 것이다. 42살의 수도사 루터는 독신을 청산하고 수녀 출신 26살의 카타리나를 아내로 맞이했다. 카타리나 역시 성직자 독신 생활의 굴레를 벗어나 진리의 자유 안에서 축복된 결혼이라는 진정한 삶을 시작하였다. 그녀의 신학적 역할은 크고 위대했다.
루터가 결혼했다는 소식이 비텐베르크에 유포되면서 그 땅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루터의 결혼 소식을 믿지 않으려 했다. 친구들이 놀랬다. 동역자 슈팔라틴은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라고 말하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적대자들은 루터의 결혼에 대해 비방하며 그가 정절 서약을 파기했다고 험담했다. 하지만 루터는 자신의 결혼을 터무니없이 비방하는 것을 명예로 간주했으며, 그런 비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루터는 결혼을 너무 기뻐했고 신부는 하나님께서 내게 선물로 주신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확신했다. 루터의 결혼 소식이 전 세계로 전광석처럼 날아갔다.
작센의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는 40개의 방이 있는 수도원 건물을 루터 부부에게 선물했다. 이곳에서 보금자리를 꾸렸던 루터와 카타리나는 8년 동안 3남 3녀, 총 6명의 자녀를 낳았다.
루터가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었을 때는 그의 나이 43세였고, 루터는 자녀들과 행복해 했다. 또한 루터는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녀들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돌볼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두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어린 자녀들을 마귀에게서 항상 지켜 주시기를 기도했다. 루터는 자녀들을 포함하여 모든 손님들까지 참석하는 가정 예배를 자주 드렸다.
루터는 강인하고 화를 잘 내는 반면에, 카타리나는 훨씬 더 매사에 온유했다. 루터는 결혼 생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결혼은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상호 노력해야 하는 일이며, 기도해야 하는 일이다. 아내를 얻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결혼생활에서 조화보다 더 달콤한 것은 없으며, 불화보다 더 씁쓸한 것은 없다. 그리고 불화 다음으로 쓰라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식을 잃는 일이다. 나도 그 아픔을 안다.” 루터는 아내를 존경했고 끔찍이 사랑했다. 루터는 “나는 프랑스나 베니스를 다 준다 해도 카타리나와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 일생에 제일 귀한 선물로 카타리나를 주셨고, 나는 그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비텐베르크의 새벽별, 카타리나 –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해 당신을 살리겠어요”

당시 모든 종교개혁자들이 다 가난했으며, 재물을 탐하는데서 거리가 멀었다. 루터 역시 정말 가난하게 살았다. 그의 결혼생활과 여러 활동을 위한 물질적인 여건은 매우 열악했다. 하지만 루터 부부는 친절하고 항상 남을 잘 대접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넓은 집에는 항상 전 유럽에서 몰려온 가난한 학생들, 친구들, 개혁자들, 방문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카타리나는 많은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보살피고자 새벽부터 일어나서 가정 사역에 정성을 다 쏟았다. 그녀는 가사를 돕기 위해 수도원 건물 지하에서 맥주를 양조하면서 생활했으며, 양봉을 하고 밭을 열심히 가꿔 채소를 재배했다. 작은 양어장도 만들고 여러 가축 사육과 우유를 얻기 위해 양과 젖소를 키우기도 했다. 특히 그녀는 돼지치기에서 많은 소득을 얻기도 했는데 루터는 아내를 친애하는 ‘돼지를 파는 여주인“이라고 칭했다. 카타리나는 고된 노동을 즐기는 여성이었고 경제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했다.
카타리나의 삶은 더욱 분주하고 피곤했다. 왜냐하면 갈수록 남편 루터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고 더욱이 자주 아팠기 때문이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루터가 죽을 정도로 심하게 앓았을 때가 있었다. 그때 카타리나는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해 당신을 살리겠어요”라며 밤잠을 가리지 않고 극진하게 간호했다. 아내의 아름다운 내조 덕분에 루터는 다시 건강을 회복되어 설교하고, 강의하고, 책을 쓰고, 서신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카타리나는 남편이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편안하게 해 주었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시중을 들었다.
카타리나는 남편의 육적 건강뿐 아니라 그가 영적으로 낙심하고 괴로워할 때에도 그를 돕고 위로했다. 수많은 사상적 대적들을 늘 곁에 두어야 했던 종교개혁자 남편 루터에게 그녀의 따뜻하며 예리한 조언은 정금같이 귀한 것이었다. 카타리나의 상복이야기는 유명하다. 루터가 낙심하며 좌절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카타리나는 루터 앞에 상복을 입고 나타났다. 루터는 “누가 돌아가셨느냐?”고 물었다. 남편의 질문에 그녀는 “하나님이 죽으셨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루터가 화를 내면서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소리를 쳤다. 그때 아내가 말하기를 “만약에 하나님이 죽지 않고 살아계신다면 당신이 이렇게 좌절하고 낙심할 이유가 무엇이냐?”며 루터에게 용기를 주었다. 루터는 영적으로 다시 깨어나 일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 이후 첫 번째 개신교 목사 부인은 카타리나이다. 그녀는 위대한 종교개혁자 남편을 위해 부름 받은 신실한 여종이었다. 아내로서 카타리나는 놀라운 지혜와 따뜻함, 용기, 큰 사랑을 소유하였다. 그녀는 경건하고 신실하고 의지력도 강했다. 그녀는 종교개혁자 루터의 지혜로운 조언자였다. 카타리나는 루터를 유명하게 만드는 일에 확실하게 조력한 여인이었다. 종교개혁은 숨은 동역자 아내 카타리나와 함께 이루어진 신적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루터는 개신교의 아버지로서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불사조와 같은 개혁자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헌신이었다. 종교개혁이라는 전쟁터에서 아내를 통해 받은 힘과 위로를 루터는 “지상에서 아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없다”고 고백했다. 또한 루터는 아내 카타리나를 ‘나의 사랑하는 케테, 나의 갈비뼈, 나의 이브, 나의 비텐베르크 새벽별’이라고 불렀다. 아내에 대한 루터의 감사는 차고 넘쳤다.

첫 개신교 목회자 루터 부부가 주는 교훈

루터와 카타리나의 모범적인 가정생활의 모습은 여러 세기 동안 독일 가정의 모본이 되고 있다. 그들은 서로 잘 어울리는 부부였고 행복했다. 루터는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는 남편이요, 자녀들과 가정을 잘 돌보는 가정적인 아버지로서 많은 교훈과 감동을 주고 있다. 또한 카타리나는 남편과 자녀들의 필요를 잘 보살피는 훌륭한 독일 주부였다. 카타리나를 통해서 제시되는 개신교 첫 번째 사모의 모습은 개신교 목사 사모들에게 많은 감동과 도전을 던져 주고 있다. 이들 부부의 모습은 교회사에서 가장 멋진 사랑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꽃을 피웠다.
이 시대에 많은 가정이 무너져가고 있다. 서부전선 이상 없지만 부부 전선에 이상이 너무 많다. 평신도들의 가정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역자들의 가정도 많이 흔들리고 있다. 사랑이 식어져가면서 무너지는 가정과 부부가 많다.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러한 때에 루터 부부처럼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헌신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께서 허물 많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사역자들이 끝까지 사랑하는 부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요 13:1). <필자:김현배목사 <revivalk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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