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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머리를 받는 살로메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19회

Salome receives the Head of Saint John the Baptist

카라바조 (Caravaggio, 1573 – 1610)

카라바조는 그가 화폭에 담아내야 했던 사실은 1500년 이전의 현장을 형상화 시켜야 한다. 그러하기에 화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받는 살로메” (Salome receives the Head of Saint John the Baptist)는 사실적 묘사라기보다는 화가의 상상력의 창고에서 만들어진 논픽션(Nonfiction)인 것이다.

카라바조는 17세기 정물과 초상을 사실기법으로 묘사하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이며 유럽회화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화법을 따르는 자들을 일컬어 ‘카라바지스티’(Caravaggisti) 부르며 그러한 추종자들이 전 유럽에 편만해 있었다. 그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명암으로 시각적 충격과 심리적 압박을 극단적으로 표현해 내는 대담한 자연주의 화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의 행실은 선술집에서의 폭음, 주변 사람들과의 격렬한 몸싸움, 감당할 수 없는 금전적 빚, 음탕을 공유하는 친구들, 반복된 투옥, 살인혐의로 수년간의 도주 생활 중에 로마 교황청은 사면을 해줌으로 그의 재능을 활용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의 나이 불혹의 문턱인 39세 때, 교황청의 부름을 받아 가는 길에 열병에 걸려 객사하게 된다.
천재가 무엇인가? 기능면의 뛰어남에 초점을 두는 것에 반기를 든다. 이를테면 뛰어난 암기력, 본 것이나 들은 것을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는 복제력에 기준을 둔다. 본 것을 그대로 표현해 내는 것은 탁월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천재라 말할 수 없어야 한다. 천재는 책상위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로 증명 되어야 한다. 어떠하든 ‘카라바조’는 정서불안에서 비롯된 제멋대로인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의 재능을 본받는 것은 중요하겠지만 그의 삶은 본받지 말아야 한다. 이는 마치 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마23:3) 그들은 율법을 기억하여 암기하는 일에 있어서는 천부적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천재적 재능이 율법을 본질 그대로 보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며 순종하는 일에는 본받지 말아야 했다.
카라바조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가 정립해 놓은 미술 사조는 배워야 하고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본받지 말아야 할 어둠으로 가득했던 암울한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로 초상화, 정물화에 뛰어났고, 사실적인 종교화를 그려냈다. 그가 화폭에 담아내야 했던 사실은 1500년 이전의 현장을 형상화 시켜야 한다. 그러하기에 화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받는 살로메” (Salome receives the Head of Saint John the Baptist)는 사실적 묘사라기보다는 화가의 상상력의 창고에서 만들어진 논픽션(Nonfiction)인 것이다.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내야하며 그를 죽여야만 했던 헤롯 대왕의 심리적 묘사를 표현해 내야 했다.
헤롯 안디바는 아우인 빌립을 죽이고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왕비로 맞이한다. 이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토픽이었지만 모두가 권력 앞에 잠잠해야만 했다. 오직 한 사람 광야에서 의를 외쳤던 세례 요한만이 그 사실을 지적했다. 헤롯 안디바는 세례요한을 존경하면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옥에 가둬야 했다.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 때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는 자극적인 춤을 추어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왕은 술에 취에 약속을 한다. 천하의 절반도 줄 수 있다는 공약을 하게 된다. 살로메는 어머니인 왕비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묻게 된다. 어머니는 뜻밖의 것을 요구한다. 물질이나 명예나 권력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세례요한의 목 이었다.
세례 요한은 비록 옥에 갇혀서 활동의 제한을 받았지만 목이 잘림으로 의는 죽음을 맞는다. 잘린 목을 애절하게 바라보는 헤롯의 좌절스런 눈빛, 요한의 목을 받아 든 살로메의 모친 헤로디아도 기쁘지 않다. 안디바의 좌절은 최고 권력자이면서 자신을 향해 의로운 길을 제시할 선지자를 잃었다는 절망이었을 것이다. 최고 권력자의 내면을 잿빛 어둠으로 표현해 내려는 것은 어찌 보면 화가 자신의 속내였다. 그의 삶은 만신창이었다. 악의 늪으로 더 깊이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를 어둠의 세계에서 구해 줄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세례 요한이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눅3:7-9)
카라바조는 성경의 사건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여 이해하려 했다. 그것이 당시 성경을 이해하는 사조였다. 화가 자신의 삶에도 세례요한 같이 도끼와 채찍을 들어 삶을 질타해 주는 선지자가 필요했다. 그가 요한의 목 메임을 그린 것은 성경적 사실로 믿기 보다는 개인 드라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헤로디아의 계략에 의해 의의 기준인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했다. 화가의 삶에도 더 이상, 그의 어둡고 암울한 삶을 질타할 진리가 죽어 버린 것이다. 안디바의 표정은 바로 화가 자신의 내면의 표출이다. 삶은 재능으로만 살아 갈 수 없다. 비록 천재라 불리는 영광을 잠시 얻었지만 삶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온 통 어둠뿐이다. 그 어둠을 질타해줄 선지자 세례 요한도 목배임을 당했다. 이제 더 이상 어둠을 향해 의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화가 자신이 겪은 삶의 여정을 성화의 한 장면에 담으려 했다. 화가 자신이 살았던 무대는 신앙 없이는 삶아 갈 수 없는 종교제일주의 시대였다. 모든 학문과 예술은 성경 이야기로 도배가 되었다. 성경을 알지 못하면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러면서 개인 신앙은 무신론에 가까웠다. 성경에 관한 그림을 그릴 뿐 그것이 개인의 신앙과는 별개의 것이었다.
오늘날도 그러하다. 성경과 신앙이 만남의 극치를 이루지 못한다. 개인 신앙은 존재하지만 성경적 세계관은 빈약하다. 다시 말하면 신앙철학이 없다는 의미다. 중요한 사실은 기독교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성경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다. 말씀이 더 이상 삶의 영향력을 줄 수 없는 시대이다. 화가가 살았던 시대나 오늘날이나 별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화가가 살았던 시설에는 모든 사람들이 말씀을 읽을 수 없었다. 특정 지도자들만 성경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성경에 관련한 사건을 그림으로써 백성들에게 전달하려 했다. 교회 안에는 온통 성화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말씀을 직접 읽어 성령의 조명을 받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이해한 내용이 그림으로 그려져 성도들은 그 그림으로 성경을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성경의 본질은 빛을 잃고 그려진 그림이 정경의 위치에서 숭배를 받기도 했다. 모든 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잃어 버렸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세례 요한이 목배임을 당한다는 것은 어둠의 세상을 향해 거룩한 빛을 외칠 진리의 빛이 꺼져 버린 것이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삶에 말씀의 빛이 꺼져 버렸기에 어둠의 삶을 살았던 것을 성화로 표현하려 했다.
그것은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말씀을 떠나 기독교라는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삶과 무관하지 않다. 어둠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말씀의 빛뿐이다. 어둠이 문제가 아니라 말씀의 부제가 세상을 더 어둡게 만들고 있다.

필자 : 박심원 목사
런던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순회선교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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