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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참 복음을 되돌아 본다

[유크시론 186호]  이창배 발행인


여호와, 우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4월, 이제 만큼은 겨울색을 완전히 벗어던지는 달이다. 3월 하순 아직 채 피어나지 않는 가로수에 새순이 돋고, 먼 산 활엽수에 옅은 노란색, 분홍색, 초록색 물감이 번져가기 시작하면 그날로 완연한 봄날이 온다.

한낮의 햇빛은 따사롭고, 집뜰 가장자리 담장에는 화들짝 피어난 개나리 꽃이 고운 노란색으로 총총히 박혀 눈 호강을 한껏 시켜준다. 한결 옅어진 하늘색은 눈에 담아도 차갑게 시렵지 않고, 하늘을 날아 얼굴에 와닿는 바람엔 한줌 온기가 실려져 있다.

고맙다. 누군가 있어 내게 보내주는 선물인양 이 따스함에 마음도 풀어지고 이내 두 손을 들어올려 자쳐져라 기지개를 펴본다. 이 아름다운 봄 날의 서정을 누가 일러 그것을 잔인하다고 했을까?

사실 독일보다는 한달 정도가 빠를 미국 LA의 봄날을 겪어보고 돌아왔다. 지난 3월초 약 2주간에 걸쳐 다녀온 사역일정인데, 그 때 LA의 날씨가 지금 독일, 유럽의 날씨와 거의 다를 바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해 보자면 해맑은 하늘과 빛나는 태양, 따스한 기온에 이미 봄기운이 물씬 풍겼다. 게다가 평소에는 결코 볼 수 없는 온통 푸른 풀밭, 푸른 초원이 형성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도시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말 그대로 행운이다. 왜냐하면 필자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 쯤에 장마성 폭우가 쏟아져 그 동안 6년 가물어 말랐던 댐과 지하수가 다시 채워질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수풀이 살아나고, 나무들이 싱싱해져 연푸른 잎새들을 마음껏 돋구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LA 북부를 지나 센프란시스코 방향으로 올라가는 5번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가면 베어마운틴이라는 산이 나온다. 평소에는 황량한 산이다. 거치른 돌과 흙, 듬성듬성 작은 나무들이 서있는 볼품없는 이 산에도 마치 잔디 카페트를 깔아놓은 것이나 아닌지 착각을 할 정도로 고운 풀밭이 한없이 펼쳐진 경이로운 광경을 보았다. 그야말로 사막지대가 초원으로 바뀐 것도 아름다운데, 거기에 노오란 들꽃이 바다를 이룬듯 잔잔하게 일렁거리는 그 모습이야말로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세상 말로 개그맨은 가짜를 가지고 사람을 웃기고 울린다. 그런데 목사는 진짜를 가지고도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는 말이 가슴을 찌른다.

봄은 오는데, 봄은 또 간다.
봄은 오는데, 봄은 또 간다. 이렇게 꽃을 피우고, 싹을 틔우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해온 날 수는 길었는데, 그 영화는 짧다. 뜨거운 열풍이 부는 사막지대에 며칠 내린 비로 순식간에 초원이 만들어졌지만 그것도 잠깐, 그토록 신선한 아름다움도 곧 사그러들고 말리라. 누구를 탓하랴. 이게 대자연의 법칙이고 보면 그 사정을 봐주지 않고 쓸어가는 시간의 물결을 어찌 너무하다고 따질 수 있겠는가.

아니다. 따지는 것은 사람에게나 있는 일이다. 자연은 순응한다. 그 짧은 시간, 그 잠시의 영화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순간 최고의 절정을 통해 드러내는 창조주의 영광, 이것이 피조물의 사명이다.

한자로 ‘자연’은 스스로 자(自)와 그럴 연(然)으로 이루어진 말로써 자연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인 것을 나타낸다. 곧, 모든 만물을 아무 생각도 없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도 예외없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로써 그 용도와 쓰임새에 맞게 만드신 것이니 자연에는 하나님의 경륜이 그대로 투영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1, 9) 다윗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 땅’과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그 영광과 그 선하심을 느낀 지혜자이자 시인이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야말로 바로 사람을 위해서 지으신 작품이라며, 하나님께 대한 감격과 찬양을 드린다. 시 8:4절“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장마비로 수량이 풍성해지고, 산위 눈녹은 물이 불어나 엄청난 굉음을 내며, 떨어져내리는 요세미티 폭포의 장관을 물보라가 소낙비처럼 뒤덮을만큼이나 가까이 가서 목도했다. 원시림에 둘러쌓인 아름답고 웅장한 대자연 속에 필자는 한없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이렇듯 약하디 약한 인간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사유케 하심을 통해 그분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게 하시질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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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참 복음을 외치라.
이제 부활절을 맞이한다. 참 복음을 외치자. 이 기쁜소식을 외치는 자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너무도 선명하다. 아직도 우리가 죄인으로 하나님께 반역적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있었을 때,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이로써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로마서 5:8) 그리고 성경에 약속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망에서 부활시키사 믿는 자들에게 산 소망(벧전 1:3-4)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죄사함과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세상을 보라. 가짜는 흥왕하고 진짜는 의기소침해 있다. 한 때 부흥을 구가했던 전통적 교단을 배경으로 하는 LA 한인교회들은 저마다 문제로 지금도 분열과 다툼의 와중에 흩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잡음도 없이 어느 틈에 대형 한인교회가 무너진 자리를 차지하고, 임대료 3만 5천불을 거뜬히 지불하며 매주 칠백명 이상의 성도들을 끌어모으는 어떤 교회가 있다.

특이한 현상은 이렇다할만큼 알려진 목회자도 없다. 다만 전도사라는 젊은 사역자가 목회를 하는데, 주변을 긴장시킬만큼 부흥하고 있다. 그 예배의 수준이 만능 엔터테인먼트를 동원한 것 같다고 우정 이 교회를 다녀온 지인은 토로한다. 하지만 그 설교와 가르침은 지방교회 이단교리라고 분명히 못을 밖았다. 사실 맥이 빠지는 소식이다.

세상 말로 개그맨은 가짜를 가지고 사람을 웃기고 울린다. 그런데 목사는 진짜를 가지고도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는 말이 가슴을 찌른다. 우리는 이번 부활절에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자신을 되돌아 보자. 과연 당신은 십자가 대속의 복음을 믿는가? 이 믿음을 무엇으로 나타내는가? 이 질문에 스스로가 대답을 해보라.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1, 9). 과연 우리가, 이땅의 교회들이, 이름모를 들꽃처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지, 그것으로 만인이 입술을 열어 하나님을 찬송케 하는지, 더 늦기 전에 되돌아 보고 그 방향을 찾아야 한다.

만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란 강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있다면 참 복음이 없는 것이리라.

이달의 말씀 | 누가복음 10: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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