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시사칼럼 > 프랑스에서 체험하는 “교회와 정치”의 관계
시사칼럼오피니언

프랑스에서 체험하는 “교회와 정치”의 관계

[프랑스포커싱]  채희석 목사/ 프랑스 침례교 목사/ 23회

프랑스, 200년 전부터 공화국 제도 채택한 나라

프랑스 공화국 제도는 근본적으로 국교로 군림하던 천주교 세력과 대항하는 의미에서 공화국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가 지배적인 교회(천주교)에 대해 투쟁을 벌인 결과가 현 정치제도의 근간이 된 것…..

교회는 정치에 관여를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은, 무엇보다 많은 이견이 서로 충돌하고 있어, 쉽게 접근하긴 어렵다. 교회 목회를 하면서 “정치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은 항상 생긴다. 특정한 정치 이슈가 전체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교회와 성도들의 삶과 가치관에 도전을 줄 때 더욱 더 그렇다. 그러면서도 목회자나 교회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기본적이고 윤리적인 입장을 헤아려 볼 때, 정치에 관하여 표현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이는 비단 목회자 개인이나 지역교회 차원뿐만이 아니라, 노회, 교단, 총연합회 차원에서도 비슷하다.

그렇다고, 입장 표명 없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용기가 없거나, 문제가 되는 정치를 암암리에 묵인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정치 세계에 대해 교회가 복음적인 메시지나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거나, 또는 사회에서 정의, 진리 또는 인권에 대해 교회가 윤리적 입장이나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비난을 받게 된다. 반대로 교회 또는 목사가 정치적 입장내지 개입을 하는 경우, 어떤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더 나아가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목사는 자신의 본분인 교회에만 충실하라는 핀잔을 받을 수도 있다. 교회가 전국 연합체 차원에서 입장을 강력하게 취할 때, 정교분리의 원칙을 넘어선 교회의 정치적 간섭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어쨌든 현실에선, 정치계나 일반 시민들은 교회 입장을 세심히 살펴 보고 이해하기 보다는, 그들 스스로 상상하거나 기대하는 것에 비춰, 교회의 입장을 쉽게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상의 정치에 대해 교회가 갖는 문제의식이나 사회가 보이는 다양한 반응 또는 역반응은 프랑스 교회나 목회자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겪는 현상들이다. 물론 유사한 경험을 다른 나라에서도 겪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겪는 <교회와 정치>의 관계는 사뭇 독특한 점이 많이 있다. 이것을 세가지 면에서 그 연유와 특징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교회와 정치의 <긴밀성>이다.
이는 중세 유럽을 지배해 왔던 <정교 일치>를 상징하는 콘스탄틴 시대의 유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복음과 세상의 문화가 상호 갈등관계에 있거나 배타적인 입장에 있다기 보다는, 서로 융합되고 더 나아가 결속되는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기독교가 국교로서 받아 들여진 사회를 대 전제로 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건에서, 신앙과 사상 또는 과학이 분리되어 있다기 보다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정교 일치>가 지나친 권력 집중화와 세속 제도와 교회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폐단이 있다. 하지만 비 유럽권 출신인 저자가 볼 때, 콘스탄틴 시대의 유산은 과거의 것이지만, 오늘날 유럽에서만 볼 수 있는 교회와 사회 간의 광범위하고 밀접한 관계 속에 형성된 독특한 문화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소위 <기독교 문화>내지는 <기독교 문명>은 하루 아침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콘스탄틴 제도권 속에서 천 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황제의 권력과 교황의 교권이 합쳐진 정교 일치의 국가는 절대적인 안정된 정권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유럽의 중세를 지배해 왔던 정교 일치의 콘스탄틴 제도는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저항과 도전을 받아 주춤하게 된다. 왕정이 무너지고, 계몽주의와 의회주의가 기반을 잡기 시작한 19세기에는 새로운 정치판이 형성이 된다. 교회가 국가가 아닌 한 정당 차원에서 협력하는 새로운 정치패턴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기독교가 주축인 된 정당, 소위 기민당(기독교 민주당)이 출현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기독교 가치관을 내세워 교회 유권자에게 영향을 주거나, 국회나 정당에서 기독교 그룹을 만들거나 로비를 하는 것은 이런 19세기 근대 정치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1905년 <정교분리>의 원칙이 프랑스 헌법의 기본 정신으로 채택된 이후 원색적으로 기독교 자체를 내세우는 정당은 정치권에서 점점 사라지게 된다. 사실 기독교 차원에서 볼 때, 어떤 의미에선 기독교 정당은 결코 필요한 것도 바람직한 것도 아니었다. <정교 일치>라는 테두리 안에서 세속 사회에 적응하며 동화된 기독교 정당 정치는 결국 그 순수성이 훼손되었고, 더 이상 정당 행위를 통해 복음의 효력과 능력을 드러내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당처럼 민주주의 다수결 논리에 부합하여 일반 정치 논리에 일치 내지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할 뿐, 사회를 새롭게 개혁하는 추진 세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특징은 <교회와 정부의 분리> 원칙이다.
1905년도는 프랑스 천주교가 천 년이 넘게 누리던 국교의 지위를 상실하는 역사적으로 비극의 해였다. 반면 개신교는, 양심의 자유와 종교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의 우산 아래, 종교개혁 때부터 지하 종교로서 명목만을 유지해 오던 것에 종지부를 찍는 희망의 해였다. 핍박 3세기만에 종교 선택의 자유, 집회의 자유에 대한 법적 보장을 20세기 초반에 와서야 처음으로 얻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헌법이나 정치 논리로서만 해석이 제한된 것이 아니었다. 개신교가 <정교 분리>의 원칙을 대환영한 또 다른 이유는 신학적 이유에 있었다. 성 어거스틴이 주장하고,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주장된 개신교의 핵심 신조 중의 하나인 <두 종류의 통치> 개념에 있었다. 은혜로 인해 다스려 지는 영적인 통치 즉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이성과 법에 의해 다스려 지는 통치 즉 이 땅 위의 나라이다. 이 신학적 개념은 작금 프랑스 정치의 기본 정신이자, 때에 따라선 뜨거운 감자처럼 사회정치 문제로 대두되는 <라이씨떼>(laïcité), 즉 정교분리의 원칙을 정당화시킨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이 두 가지 통치를 뚜렷하게 구분하거나, 분리되지 못하는 모호성 내지는 부조화가 존재한다. 개인의 삶에서도 공적, 사적의 공간 개념이 그렇게 칼 자르듯이 구별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사실 이 두 종류의 통치는 서로 의존 관계에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문화가 근본이 나쁘다고 말하기 보다는, 이를 다스리는 방식과 원칙이 복음의 것과 다른 것이다. 자연법이나 사회법은 이성의 산물이며, 이는 또한 기술이나 행정을 주관하고 있다. 반면 복음은 영혼의 구원, 인간 관계, 긍극적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이 된다. 사실 기독교인은 이 두 가지 통치에 모두 소속되어 있다. 교회 안에서의 삶과 교회 밖에서의 삶이 일관성이 있는 것이지 별개의 것이 아닌 것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만, 공적인 장소에서 신앙의 제한이 있다면 온전한 신앙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기독교인이 피해야 할 경계가 있다. 교회와 정치를 혼돈하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는 정당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한 구원과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스스로의 사명은 있지만,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강요할 순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인이 아닌 경우, 그에겐 교회가 선포하는 것을 반드시 경청해야 할 의무나 윤리적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는 이 단순하고 명료한 이 사실을 가끔 잊고, 국회나 정치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로비 활동을 하거나 직접적인 정치적 행위를 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물론 교회 내부적으로 윤리의식, 사회평등, 경제질서, 사법정의, 환경보호 등에 대해 토론을 하고, 기독교 윤리에 기초하여 시대 각성을 유도하거나 의견을 제안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법령이나 정책 방향이 기독교 가치관과 정면으로 대치할 때, 그런 법령이나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고 철회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정치 세력과 독립적으로 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교회의 관점은 복음에 기초한 것으로서, 세상의 관점과는 다르며, 또한 세상의 관점은 교회의 관점과 다르기 때문이다”1.  예를 들어 교회관련 세금혜택 또는 낙태금지 등을 위해, 교회가 사회에 기독교 가치관을 강요하거나, 세상 정부와 협상을 하는 그런 교회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교회의 이런 자기 중심적인 자세는 결국 복음의 걸림돌이 되거나,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작금의 프랑스 공화국 제도와 개신교의 역할이다.
프랑스는 200년 전부터 공화국 제도를 채택한 나라이다. 프랑스 혁명(1789) 이후 시민이 정치의 주역이 되었고,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대통령 중심제로 행정부 권한이 보다 강화된 제 5공화국(1958년 ~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신교 인구는 총 국민 중 불과 2% 정도에 불과하지만, 제 5공화국 시대에 미셀 로카(Michel Rocard), 리오넬 조스펭(Lionel Jospin) 수상을 위시하여, 비에르 족스 (Pierre Joxe) 내무부 장관, 카트린 트로트만(Catherine Trautmann) 문화부 장관 등 여러 내각 수반 장관들이 개신교 출신이었다. 이들은 나름대로 공화국 상류사회의 핵심 세력이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가 사회 속에 존재했던 영미권과는 달리, 프랑스 공화국 제도는 근본적으로 국교로 군림하던 천주교 세력과 대항하는 의미에서 공화국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가 지배적인 교회(천주교)에 대해 투쟁을 벌인 결과가 현 정치제도의 근간이 된 것이다. 한 사회학자이자 역사학자(Emile Poulat)는 이를 보고 “두 개의 프랑스가 투쟁한다”2고 언급하였다. 결과적으로 기독교 내에서도, 천주교와 개신교의 정치와 정치권에 대한 입장이 다른 것이다. 프랑스 개신교의 초기 정치적 성향은 1789년의 혁명 정신을 이어 받아, 좌파적인 위치에 있었고, 천주교는 보수주의 우파 성향을 보였다. 오늘날의 개신교는 보다 다양한 정치색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과반수 이상은 진보적인 입장에 있다. 비록 소수의 세력이지만, 개신교는 공화국 제도의 토대를 견고하게 새우는 역할을 꾸준히 감당하고 있다.

매듭짓는 말로, 교회와 정치의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가 조화와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프랑스를 통해서 배운다. 교회는 항상 정치에 대해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독교 신앙이 어떤 정치인이나 정치적 입장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합법화 시키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어떠한 정치 제도도 복음과 온전히 일치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교회가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한 태도를 보일 때, 교회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될 수가 없고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없다. 교회는 정권에 대해 권면과 경고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교인들의 투표 행사에 영향을 주는 직접적인 개입을 하는 것은 영적 남용이 될 것이다. 토론과 성찰을 통해 문제의 성격을 기독교 정신에서 규명할 수는 있지만, 교회가 정치 집단처럼 행동하거나 이데올로기에 빠지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사료한다.

1. Stanley Hauerwa & William H. Willimon, Etrangers dans la cite, Cerf, Paris, 2106, p.28-29.
2. Sébastien Fath, Les protestants, la Cavalier Bleu, Paris, 2003, p.105.

READ  프랑스, 중산층의 위기가 곧 교회의 기회인가?

Leave a Reply

Be the First to Comment!

Notify of
wpDiscuz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
Social Media Auto Publish Powered By : XYZScrip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