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문화칼럼 > 속지(屬地)주의, 계약(契約)주의, 속인(屬人)주의
문화칼럼오피니언

속지(屬地)주의, 계약(契約)주의, 속인(屬人)주의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72회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결코 실리보다는 앞설 수 없다

유럽을 비롯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적을 취득하는 두 가지 방법이 통용되고 있다. 바로 속지주의와 속인주의에 의한 것이다. 속인주의는 부모가 국적을 가지고 있을 때에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반면 속지주의는 말 그대로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일단 그 나라에서 태어나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프랑스 속지주의가 만들어낸 다문화 정책
같은 유럽이지만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서로 다르다. 서로 다른 대표적인 두 나라는 프랑스와 독일이다. 프랑스는 속지주의에 따라 국적을 취득하고 있으나 독일은 속인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속지주의란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아이가 그 나라에서 태어나면 무조건 그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을 말하며, 반대로 속인주의는 지역과 장소에 상관없이 부모의 혈통에 따라 자녀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는 미국과 같이 자국에서 태어나면 부모의 국적을 불문하고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혈통이나 민족에 관계없이 프랑스인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은 가히 혁명적(革命的)이다. 프랑스 “도미니크 다비드”교수는 “세계사에서 인류 보편주의를 주창하거나 수출해 온 나라는 프랑스와 미국 두 나라뿐이다.”라고 말하면서 유럽에서 프랑스가 가장 보편적인 인류애 사상을 가진 나라라고 역설하였다. 속인주의가 민족과 혈통주의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속지주의는 인류가 평등하다는 보편적인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스포츠나 예술 분야에서도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국가 대표 팀이나 리그 팀 가운데서 유색인종 선수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프랑스 축구 대표 팀의 경우, 아프리카 팀인지 중동 팀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흑인선수들과 아프리카선수들 일색이다.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 백인 선수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에 반해 독일 선수들은 하나같이 금발머리이거나 푸른 눈의 백인들이고 대부분 전형적인 게르만 혈통들이다. 비록 두 나라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는 특정한 민족이나 혈통이 아닌 프랑스라는 지리적 영토 위에서 모인 사람들에 의해 문화를 수용하면서 건설된 국가답게 가히 인종의 용광로라 할만하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예술인들 가운데 외국계 혈통이 어느 유럽나라보다 많은 편이다. “이방인”(異邦人)이란 작품으로 칭송과 프랑스 문단에 우뚝 선 “알베르 까뮈”는 알제리 태생으로 프랑스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이자 현대 연극의 스승으로 불리는 “사무엘 베케트”(1906-1989) 또한 아일랜드 출신이었으나 프랑스에 귀화하여 영문, 불문의 전위적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여 명성을 떨쳤다. 스페인 출신의 “파블로 피카소”나 네덜란드 출신 “반 고흐”는 파리에서 활동하며 프랑스 미술사를 빛낸 사람들이다. 이런 프랑스적인 문화를 가능케 해준 토대는 다름 아닌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수용하게 만든 속지주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READ  바로 그 교회 그리고 멈춰진 시간

독일 계약주의가 만들어낸 실리주의 정책
유럽 대부분은 프랑스 대혁명 후 선포된 프랑스 인권선언 제 1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또한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라고 명시한 프랑스 인권선언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속지주의를 폐기한 상태나 다름없다. 지구상 존재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다. 그 가운데 독일은 2000년 1월 1일 이전까지는 혈통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한 속인주의를 채택하였다. 독일은 자국 혈통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면 그가 언제 어디에서 출생하여 몇 백 년을 외국에서 살았던 지 상관없이 자국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자국인의 혈통에 대하여는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면 타 민족에 대한 배타성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독일을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 “게르만민족” 혹은 “나치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말은 곧 민족주의자란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독일은 이런 배타성과 속인주의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였다. 곧 노동계약에 의한 국적취득이다. 독일은 양부모가 독일 혈통이나 시민권자가 아니더라도 노동계약에 의하여 독일 시민권을 획득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독일이 2차 대전에서 패한 후 막대한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노동계약에 의한 이민정책 덕분이었다. 독일은 미국처럼 이민국가가 아니면서 노동계약의 정책으로 외국의 고급인력을 끌어들여 시민권을 부여함으로 경제대국을 만들어 냈다. 그뿐 아니라 민족주의자라는 오명을 씻고 내부적으로 국가 최대의 과업인 통일을 이루어 냄으로 한꺼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셈이다. 그 결과 경제는 물론 “도미니크 다비드”교수가 말한 “가장 보편적인 인류애 사상”을 가진 나라로 변모하게 되었다. 지금 전 유럽이 난민들이 자국 내로 들어 올까봐 안절부절 하고 있는 상황에도 독일만큼은 여유만만하다. 그것은 이미 독일이 계약주의를 통해 실리주의의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유럽이 지금도 여전히 외국인들에게 발붙일 틈을 주려하지 않지만 독일이 시도한 노동계약을 통한 국적 취득에는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상태다. 지금 유럽은 혈통이 아닌 능력 있는 사람을 손짓하고 있다.

READ  종교개혁 500주년과 연합운동

강대국의 속인주의가 만들어낸 정복주의 정책
2세기 경 로마제국의 영토는 유럽과 중 근동 그리고 북아프리카 까지였다. 비잔티움에 수도를 둔 동로마제국이 1453년 오스만 튀르크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약 1천 년간 유럽과 중 근동을 지배했다. 로마는 정복한 모든 나라와 국민에 대해서 속지주의와 속인주의 정책을 동시에 펼쳤다. 즉 로마가 정복한 영토는 곧 로마제국이며 동시에 그 영토 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이것은 피정복자에 대한 보상이자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15세기 동로마제국이 멸망하자 곧바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하면서 제국주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네덜란드가 대서양과 태평양의 패자(覇者)로 등극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유럽 선박의 5분의 4 가량을 보유하고 있었고,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인구 중 절반인 100만 명 이상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통해 아시아와 세계로 진출했다. 4백 계주를 하듯 영국이 그 다음 바통을 이어받아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 때는 최대 황금시대로 세계 인구와 영토의 4분의 1을 지배하기도 했다. 전 세계의 도시와 강과 호수, 건축물에 그녀의 이름이 붙여졌고, 세계 군주들이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고 영연방에 합류했다.

유럽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하면서부터 세계는 정복자와 피정복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이분화 되면서 속지주의가 뿌리를 내렸다. 이렇듯 속지주의는 타민족과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이었다. 그에 반해 피지배자들은 생존을 위해서 같은 민족끼리 힘을 모을 수밖에 없었고,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속지주의, 속인주의는 정복자와 피정복자, 강자와 약자사이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지금 유럽은 표면적으로 속인주의를 표방하고 있지 않지만, 내면적으로는 과거 자신들이 지배했던 지배국들에 대하여 후견인 내지 종주국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영국은 과거 지배했던 나라들과 영연방국가에 대하여 속지주의 정책을 적용하고 있으며, 프랑스 또한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에 대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스페인 또한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는 남미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곧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결코 실리보다는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셈이다.

필자 : 김학우 목사 <kmadrid@hanmail.net>

Leave a Reply

Be the First to Comment!

Notify of
wpDiscuz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
Social Media Auto Publish Powered By : XYZScrip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