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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번뇌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20회

Agony in the Garden (1459년 경)

안드레아 만테냐 Andrea Mantegna, 1431~1506

안드레아 만테냐 (Andrea Mantegna)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번뇌 (Agony in the Garden) 그림 역시 많은 상상력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들은 허구적 사실이거나 화가 자신이나 당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혼합신앙에서 오는 염원이 담겨 있게 된다.

그림에는 귀로 들려지지 않는 이야기가 담겨 있게 된다. 그 이야기는 화가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이거나 당시 관습화 되어버린 종교와 시대적 상황, 혹은 그림을 그려야 하는 배경을 극도의 사실주의가 아닌 비유적으로 표현해 내야 하는 화가의 상상력이 담겨 있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그림이 성경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성화라 할지라도 본질적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이야기들은 허구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성화뿐 아니라 역사적 고증을 거친 그림이라 할지라도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특히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주제로 한다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예수의 탄생, 성장, 사건,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그림이 그러하다. 주인공이신 예수를 어떤 모습으로 그려야 하는지, 주변 환경과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하며, 어떻게 디자인된 복장을 입혀야 하는지 화가 자신만이 가지는 비본질적인 상상력으로 완성시켜야 하는 픽션인 것이다.

다섯 아동 천사 등장
그림 상단 왼쪽에 다섯 명의 벌거벗은 갓난아이 모습을 한 천사들이 등장한다. 이런 그림이 꾸며낸 허구이거나 타락한 종교, 다시 말해서 성경과 관련 없는 제단화 성격을 띠고 있다.
성경 어디에서 갓난아이, 혹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천사가 등장한 적은 없다. 그렇게 표현해 내는 것은 당시의 종교적 상황인 것이다. 벌거벗은 갓난아이 모습으로 천사를 표현해 내는 것은 세속으로부터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을 그려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의 신앙 배경은 성경의 사건을 믿기 보다는 화가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불신앙이 지배했던 것이다.

검은 독수리 등장
그림의 오른쪽 위에도 무속적 개념의 새를 등장시킨다. 검은 독수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가올 죽음의 운명을 표현해 내고 있다. 이는 지극히 일상적인 해석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화가 내면의 생각과 당시 문화적 배경이 그림으로 표현된 것이다.
당시의 종교문화는 일반 성도들에게 성경을 해석한 권한을 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여 삶에 적용한다는 것은 화형을 당할 만큼의 불경죄에 해당했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 반사회적인 범죄 보다 더 무거운 처형이 내려지는 것은 성경을 임의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일반 성도들은 성경의 내용을 전혀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시는 모습이 그려진 감람산의 최후의 기도역시 화가의 상상력을 성경적 사실로 믿었던 것이다. 이는 이방종교의 관습을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현재까지 존재하는 모든 종교가 그러하다. 그림이거나, 돌, 주물로 만든 제품이 신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그렇게 일반 종교화처럼 그려낸 것이다. 이러한 비신앙적인 종교적 행동을 개혁하기 위해 1517년 종교개혁은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비진리로 진리를 대신할 수 없기에 발생한 신앙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개혁이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다섯 가지 강령인 5대 솔라(Sola)를 회복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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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a Scriptura 오직 성경 /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 Sola Gratia 오직 은혜 / Sola Fide 오직 믿음 / Soli Deo Gloria 오직 주만 영광 받으심

성경으로 돌아가게 되면 예배당 안에 그려졌던 수많은 성상과 제단화들은 우상이 되어 버린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니며, 마가다락방에서의 최후의 만찬 모습도 그것은 화가의 상상력일 뿐이지 실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비성경적 종교화로 전락하게 된다.
당시 예배당은 정교의 권력의 상징이었다. 모든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 권력의 핵심은 교회에 있다고 믿었던 시대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그 모든 벽화들은 난도질당하거나 제거되어야 하는 쓰레기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당연 그렇게 주장하는 개혁자들을 화형 시키거나 이단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는 정교적 상황이었던 것이다.

안드레아 만테냐 그림 배경
1415년 이탈리아의 미술을 대표하는 안드레아 만테냐 (Andrea Mantegna)에 그려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번뇌 (Agony in the Garden)는 그의 나이 62세 즈음에 목판에 담아낸다. 물론 기본 펙트(fect)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얼마나 그 기도가 간절하셨던지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었다. (눅22:44)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본체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동안 수석 제자로 칭하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육체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한 채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전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마지막 피를 토해내는 기도를 드리셨다. 그림의 핵심은 그렇게 기도하셨기에 오늘 우리는 구원의 특별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명화 속에서 우상적 메시지를 제거해 버리고 내가 그 현장에 있음을 시공간적 개념을 뛰어 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시공간의 개념을 깨트리셨다.(히13:8)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잠을 자는 제자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아니라 오늘 우리 자신이어야만 한다. 우리는 그 자리에 있었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못 박힐 때에도 2천년의 시공간의 차이가 있지만 내 자신이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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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이것이다. 그림으로 성경을 해석하려 하지 말고 성경으로 그림을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의 틈새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존재였다. 그러하기에 당연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골고다 언덕을 올라 그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힘으로 속죄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필자 : 박심원 목사
런던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순회선교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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