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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지지 말라”, Noli me Tangere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21회

“나를 만지지 말라”, Noli me Tangere, 1512년 제작

티치아노 Tiziano Vecellio (이탈리아, 1488년 추정 – 1576년)

‘놀리 메 탕게레’ 라틴어로 ‘나를 만지지 말라’는 의미다. ‘티치아노’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발발하기 전 1514년에 ‘놀리 메 탕게레’ 성화를 화폭에 담아낸다. 그는 65년 동안 화가로서 역사상 가장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에게 나셨기에 100% 사람이시며, 성령으로 잉태되셨기에 100% 하나님이시다. 또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100% 사람이시며, 죽음 가운데 머물지 않고 부활하셨기에 100% 하나님이시다. 완전한 사람이시면서 완전한 하나님이신 분,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다. (빌2:6-8)

하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초림 사건이다. 이 과정을 성육신(Incarnation)이라 하며 사역의 핵심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기 위해 오신 것이다. 이제 주님은 다시 오신다. 이때는 성육신의 개념이 아니라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재림하신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종교적 교리가 아니다. 정말 그가 하나님이심을 역사적으로 증명해 보이셔야 했다. 그 증명이 바로 부활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것은 교리적으로나 신학적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 스스로 증명해 보이신 영적 실체이며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 되심과 동시에 하나님 되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믿음이라 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예수의 신성을 믿으나 인성을 믿지 않은 경우가 있었으며, 반대로 인성을 인정하면서 신성은 인정하지 않은 역사적 흔적이 있다. 영생은 바로 신성 100%, 인성 100%를 믿는 것이다.(요17:3)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았던 인류 중에 이 사실을 믿는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는 많지 않다. 예수의 탄생과 죽으심에 관하여는 인정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 것이 생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의 증거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과 마지막 재림을 믿지 못한다. 아니 인간의 이성으로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이라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 재림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다. 신존재의 개념은 인간이 가진 이성을 초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인간이 이해하는 신개념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전락시키게 된다. 공자나 소크라테스, 붓다가 4대 성인의 반열에 들어간 것은 가문의 영광을 넘어선 그들이 창시한 종교나 철학 학파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불명예이며 그 자체가 불신앙이 아닐 수 없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홍익인간의 구호처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아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일컬어 4대성인이라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치욕적인 표현 그 자체인 것이다.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태어난 목적은 사람에게 도를 전하고 그 받은 도를 통하여 인간을 유익하기 위한 인본주의적 목적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처음부터 죽으러 오신 것이다.(눅19:10) 이는 예수의 주장이 아니라 구약성경 4천년 역사를 통하여 빈틈없이 예언하셨던 것이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그 모든 역사적 예언을 다 이루셨다고 선포하신 것이다.(요19:30)

믿음이란 무언가를 얻기 위한 기복적인 차원이 아니라 어린양이신 예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다.(계14:4)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에 비유한 것은 구약4천년의 예언이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셨던 것이다.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는 예수의 성육신에 관한 논쟁은 끊이질 않는다. 어떻게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힘주어 강조한다. 그러나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단들은 자신이 신적 존재임을 주장했다. 신이 된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 증거는 “창조주인가? 역사적 예언에 의한 성취인가?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죽음을 이겨냈는가? 구원할 뿐 아니라 심판하시는 분이신가? 그러면서 사랑과 정의가 공존하는가?”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증명했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이 아닌 신으로 믿는 것은 바로 그 문제인 것이다. 즉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실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하나님은 인류일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오심을 증명하셨다. 그러하기에 마지막 날에는 그 누구도 그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놀리 메 탕게레’ 라틴어로 ‘나를 만지지 말라’는 의미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모습을 처음으로 본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이다. 주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마리아는 주님을 만지려 했다. 그러나 주님은 아버지께로 오르지 못하였기에 나를 만지지 말라(요20:17) 하셨다. ‘티치아노’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발발하기 전 1514년에 ‘놀리 메 탕게레’ 성화를 화폭에 담아낸다. 그는 65년 동안 화가로서 역사상 가장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는 왼손에 낫을 가졌다. 이는 계시록에 심판하시는 예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계14:14, 17,18) 티치아노 시대 보다 현대는 더 풍요롭고 신앙적 가치가 보편화 되었고 대중화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다원주의 문화로 예수의 신성을 강조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오직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라 강조하는 신앙인들을 향해 외골수라 평가하는 시대이다.

분명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셔서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고 다시 완전한 하나님으로 계시면서 인류를 심판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재림을 남겨두고 계신다. 인간이 이룩한 풍요로움은 심판과 구원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이 불편의 법칙을 티치아노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낫을 들고 마리아를 향해 ‘나를 만지지 말라’ 라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 주이심을 화폭에 담아내려 했다.

필자 : 박심원 목사
런던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순회선교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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