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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되는 종교개혁의 불길

[루터&종교개혁] 김현배 목사/ 베를린 비전교회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12)

교황이나 황제, 공의회 그리고 제국의회의 그 어떤 권력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 이와 같이 종교개혁 운동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게 된 개혁 수단은 루터의 설교와 펜이 전부였다. 루터의 설교는 많은 도전과 깨우침 그리고 감동을 주었다. 또한 루터가 번역했던 독일어 신약성경은 구텐베르크에 의한 활판 인쇄술의 출현으로 인해 수백만 부 인쇄되어 독일의 50개 이상의 도시들에 배포되었다….

확산되는 종교개혁 운동의 힘 – “루터의 설교와 펜”

독일 전역과 유럽으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교황이나 황제, 공의회 그리고 제국의회의 그 어떤 권력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 이와 같이 종교개혁 운동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게 된 개혁 수단은 루터의 설교와 펜이 전부였다. 루터의 설교는 많은 도전과 깨우침 그리고 감동을 주었다. 또한 루터가 번역했던 독일어 신약성경은 구텐베르크에 의한 활판 인쇄술의 출현으로 인해 수백만 부 인쇄되어 독일의 50개 이상의 도시들에 배포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루터의 자국어 성경이 교황의 권위를 압도하면서 빛과 자유와 평안을 갈망한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또한 루터의 95개 조항 반박문과 경건서적, 교부 문서, 각종 고전, 종교, 신학관계 서적들 그리고 독일어와 라틴어로 된 루터의 소책자가 매일 쏟아져 나왔다. 특별히 루터가 쓴 종교개혁의 3대 작품 “독일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교회의 바벨론 유수, 그리스도인의 자유” 등의 저서들이 종교개혁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리고 개혁의지를 담은 루터의 크고 작은 저서들이 제후들과 사제들, 시민들, 농민들, 농부들, 기술자들과 교수들에게 보급되었고, 은혜의 교리들로 가득 찬 루터의 독일어 찬송들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루터가 쓴 책들은 인쇄기에서 나오자마자 무섭게 팔렸고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다. 이처럼 루터를 중심으로 한 개혁운동은 하나의 커다란 조직을 갖추면서 독일 내에서 새로운 신앙운동을 일으키며 확산되어 갔다.

종교개혁이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다

비텐베르크에서 시작된 루터 종교개혁의 영역은 1520년대부터 1530년대까지 안할트-데사우, 메클렌부르크, 포메라니아, 하노버, 브레멘, 뤼벡,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마그데부르크, 슈파이어, 아우구스부르크 등 독일 동부와 북부 그리고 서부와 남부 지역으로 까지 점점 계속 확산되었다.

▶비텐베르크(Wittenberg)는 유럽을 흔들며 개신교를 탄생시킨 독일 내에서도 작은 도시이다.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해 1517년 10월 31일에 성 교회에 붙인 이후 종교개혁의 불꽃은 여러 도시로 불붙기 시작하였다. 성 교회의 문은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역사적인 문이 되었다. 종교개혁 운동의 진원지 비텐베르크에서 루터를 중심으로 멜란히톤과 요나스, 부게하겐의 도움을 받아 개혁 운동이 퍼져 나갔다. * 작센(Sachsen) 지역은 루터의 설교에 감동받은 요한 공작(Herzog Johann)이 복음주의 교회 구조의 주춧돌을 놓았다. 요한 공작은 특별이 루터의 두 왕국론 설교, 즉 영의 통치와 세상의 통치에 대한 설교를 듣고 크게 도전을 받고서 설교 내용을 책으로 출판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루터는 곧 출판하게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1526년 농노들에 대한 압정으로 유명했던 필립 백작(Landgraf Phillip)이 자기 영토에 종교개혁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다.

▶라이프치히(Leipzig)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St. Thomaskirche)는 루터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은 요한 세반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가 27년간 교회 지휘자로서 봉사했던 교회이다. 또한 그 시기에 바흐는 약 140곡 이상의 교회 칸타타, 마태수난곡,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등 많은 교회음악을 작곡하였다. 교회 안에 바흐의 무덤이 있으며, 교회 창문에서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바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고 성 토마스 교회에서 열정적으로 봉사했던 바흐의 신앙이 우리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는 16세기 유럽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루터가 방문한 걸로 유명하다. 1539년 루터가 이곳에서 설교했으며, 그로 인해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후 이 교회는 개혁교회 노선을 걸었으며, 종교개혁 시대에 개신교의 본부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곳은 루터파의 주요 대학교이며 고전학과 개신교 신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개신교 출판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마그데부르크(Magdeburg)는 멜키오르 미리쉬(Melchior Mirisch)가 1522년에 루터의 교리를 전파했으며, 1524년 종교개혁 시기에 루터파(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였다. 또한 이곳에는 마르틴 루터가 방문한 요한교회가 있으며, 바로 교회 옆에 루터상이 있다. 루터가 방문해 설교한 이후 대부분의 시민들이 개종하는 역사들이 있었다. 마그데부르크 대학교는 최초로 창설된 루터파 대학이다.

▶브레슬라우(Breslau)는 요한 헤스(John Hess)가 1524년 개신교 교리를 잘 변호했다. 브레멘(Bremen)은 1522년 11월에 하인리히 몰러(Heinrich Moller)를 앙스가리 교회로 초청하고, 후에 다른 개신교 목사 두 명을 더 초빙함으로써 개신교를 받아들였습니다. 몰러는 종교개혁 교리를 설교했으며, 나중에는 광신도들에게 붙잡혀 불에 타 죽었습니다. 1527년에 브레멘의 모든 교회들이 개신교 목사들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뤼벡(Lubeck)은 처음에는 루터 설교자들을 추방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그들을 다시 불러 들였으며, 1529년에는 로마 교회 사제들을 추방했다. 비텐베르크의 부겐하겐이 이 도시의 개혁 작업을 완수했다. * 함부르크(Hamburg)는 1523년에 개신교를 받아들였다. 이 도시에는 서유럽의 대표적인 개신교 교회로 불리우는 성 미가엘 교회가 있다. 교회 앞에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이 동상은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항하던 개신교의 역사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특별히 종교개혁의 실천자, 요하네스 부겐하겐(Johannes Bugenhagen, 1485-1558)는 함부르크에 청빙 받았다. 그는 곧바로 개혁 작업을 시도했다. 부겐하겐 목사는 예배와 성찬과 그리고 세례 등 이 모든 예전을 바꾸었다. 또한 그는 개혁 교회 규정을 작성하여 교회 조직을 근본적으로 개혁했다. 그가 작성한 교회법은 다른 교회들에 모범이 되었고, 북부 독일 함부르크와 뤼벡, 브라운슈바이크, 뤼네부르크 까지 전하여 실천되어졌다. 그는 개신교 개혁의 물결을 확장시키고 뿌리를 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슈파이어(Speyer) 제1차 제국의회가 1526년에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각 지역마다 그곳을 통치하는 제후의 종교를 믿게끔 허용해 주었다. 개신교 진영의 제후들 대부분이 각 도시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루터파 교회를 세울 수 있고 루터의 종교개혁을 채택할 수 있게 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는 종교개혁사 초반에 중요한 도시로 떠올랐다. 1530년에는 루터교의 표준 신앙고백서가 나옴으로 인해 개신교는 실질적인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뉘른베르크(Numberg)는 성 제발두스 교회와 성 로렌츠 교회의 설교자들이 종교개혁을 따랐다. 또한 루터의 친구인 벤체슬라우스 린크(Wenzelaus Link)의 복음적인 설교는 뉘른베르크의 종교개혁 진영에 크게 이바지했다. 린크 다음으로 종교개혁을 크게 진척시킨 사람은 평신도 라자루스 슈펭글러(Lazarus Speegler, 1479-1534)이다. 그는 루터를 예찬하는 글과 이신칭의를 주제로 한 대중 찬송을 썼고, 개신교 대학 설립을 도왔다. 또한 신학자인 안드레아스 오지안더(Andreas Osiander)는 성 로렌츠 교회에서 로마의 적그리스도를 비판하는 설교를 했으며, 1524년 미사가 폐지되었다.

유럽 전역으로 타오르는 종교개혁의 불길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왕국들은 결정적으로 가톨릭에서 단절되는 최초의 나라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루터의 종교개혁의 불길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으로 더욱 확장되어 나갔다. 1520년부터 루터의 사상이 전파되었던 덴마크가 프로테스탄트 영역으로 들어온다. 1529년 크리스천 피터슨(Christian Peterson)이 신약성경을 덴마크어로 번역 출판했다. 또한 덴마크는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채택하고 이듬해 슈말칼덴 동맹에 가입했다. 스웨덴도 프로테스탄트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복음 설교가 전파됐다. 비텐베르크에서 교육받은 울라프(Olaf)와 라르스 페트리(Lars Petri), 그리고 라르스 안테르쏜(Lars Andersson) 등은 루터주의를 전파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성경을 스웨덴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핀란드도 자연스럽게 루터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핀란드의 개혁자인 마이클 아그리콜라(Michael Agricola)는 시편, 예언서들 중 일부와 신약을 핀란드어로 번역하였다. 이를 통해 핀란드어가 문학어로 발전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에도 종교개혁의 영향이 크게 미쳤다. 네덜란드 영토였던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지역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으며, 1525년 5월, 네덜란드 의회가 복음의 순수한 선포를 공인하였다. 스위스에도 이러한 확산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루터와 동 시대의 사람, 울리히 츠빙글리(Ulich Zwingli, 1484-1531)는 스위스 종교개혁자이다. 그는 취리히에 있는 그로스민터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폭넓은 복음적 개혁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이어 종교개혁은 계속해서 프랑스, 영국, 스코틀랜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프로이센 등으로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그 결과 이 나라들은 루터교를 국교로 삼았다. 또한 루터 개혁운동은 폴란드, 보헤미아, 모라비아, 헝가리 및 다른 동남방 제국에서도 급속히 발전되었다.

루터 종교개혁의 불길이 끼친 영향력

루터는 개신교 개혁의 물결을 확장시키고 뿌리를 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칼빈의 영향도 컸다. 숨겨진 진리를 재발견한 루터, 한 사람의 영향력이 너무 컸다. 종교개혁의 진원지, 비텐베르크에서 지펴진 종교개혁의 부흥은 독일 동부와 북부와 남부 그리고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종교개혁의 부흥의 불꽃은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종교 등 여러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유럽교회사에 나나났던 부흥은 말씀 부흥임을 교훈하고 있다. 개혁과 부흥은 전염성이 강하다. 개혁을 위해 사도들이 붙잡았고 루터가 붙잡았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도 다시 붙잡아야 한다. 말씀 없이 부흥 없다. 유럽은 다시 말씀으로 돌아갈 때만이 희망이 있다. 지금 유럽은 반성경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말씀을 벗어나 살았던 삶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먼저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야 한다. 말씀 아닌 것을 철저하게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유럽 땅에 가득차기를 사모해야 한다. 500년 전 독일 제국을 넘어 유럽 전역까지 확산되었던 종교개혁의 불길이 쇠퇴하고 있는 유럽 땅에 다시 타오르도록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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