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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샤토”, 이탈리아 “끼안티”, 스페인 “쉐리”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75회

“신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

“신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 빅토르 위고가 남긴 말이다. 세계 3대 포도주 생산지와 명품을 말한다면 프랑스의 보르도, 이탈리아의 끼안티 그리고 스페인의 쉐리를 들 수 있다. 그 외 독일 라인강 상류에서 생산되는 감칠맛과 수분이 많은 모젤 와인과 또한 포르투갈 포도주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단맛이 입안에 착 달라붙는 포르토 포도주를 빼 놓을 수 없다.

하늘이 내린 프랑스 보르도의 샤토(Château)

프랑스는 와인의 종주국으로 에펠탑과 함께 프랑스를 상징한다. 로마시대의 시인 오조니우스(Ausonius)에 의하면 보르도에 와인이 들어 온 것은 기원전 56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르도 와인이 프랑스 국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세기 부터였다. 프랑스의 포도주 생산 역사는 이탈리아보다 한참 늦지만 오랜 시간동안 와인의 품질을 향상시킴으로 세계시장에서 고급와인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는 1900년부터 시작하여 1935년에 확립된 “원산지 명칭 통제 제도”(AOC)를 시행함으로 포도주 품질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원산지 명칭 통제 제도”(AOC)는 전통적으로 유명한 고급와인의 명성을 보호하고, 그 품질을 보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법률에는 각 포도재배 지역의 경계와 그 명칭을 정하고, 사용되는 포도의 품종, 재배방법, 단위면적당 수확량의 제한, 그리고 제조방법과 알코올 농도에 이르기까지 규정을 정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와인 생산지는 크게 8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잘 알려진 보르도를 비롯, 부르고뉴, 론, 루아르, 알자스, 프로방스, 랑그독-루시용, 상파뉴 등이지만,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지역은 보르도 지역과 부르고뉴 지역 그리고 샹파뉴 지역이다.

특히, 보르도의 포도주는 “하늘이 내린 포도주의 성지”라는 찬사를 받으며, “마법의 포도주”로 불린다. 하지만 1152년 영국의 헨리 2세는 보르도 지방의 왕녀 에레나와 결혼함으로 보르도는 통째로 영국의 땅으로 넘어가게 된다.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모든 포도주가 영국으로 넘어가자 프랑스인들의 불만이 고조된 것은 물론 훗날 백년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보르도 포도주로 인해 영국과 프랑스는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00년 넘게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후 프랑스 잔 다르크 승리를 이끌므로 보르도 지방의 포도주는 다시 프랑스로 넘어 왔다. 보르도에서 나오는 최고급 와인은 “샤토”(Château)이다. 원래 샤토는 불어로 성 또는 대저택을 의미하나 규정된 포도원을 의미한다. 샤토는 일정 면적 이상의 포도밭이 있어야 하고, 와인을 제조하고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는 1855년부터 포도주에 등급을 매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포도주가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심도 있게 연구한 루이스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간파한 “포도주는 건강에 가장 유익한 것이다.”라는 문구는 아직도 유효하며, 프랑스 포도주 광고판마다 빠지지 않고 애용되는 문구이기도 하다.

900년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의 끼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이탈리아는 세계 최대 와인생산국이며 수출량 또한 세계 최대 규모이다. 이탈리아는 3천 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여 와인을 생산하였으며, 현재도 이탈리아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포도밭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전 지역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이탈리아처럼 와인의 다양한 향기와 맛을 가진 나라도 없다. 이탈리아 북서부 지역은 주로 강한 맛의 레드와인을 생산하는 반면에, 동쪽지역에선 아주 가벼운 맛을 내는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포도생산의 긴 역사 속에서도 프랑스 와인과 비교할 때 그 유명세가 더디게 알려지게 된 것은 마케팅 활동이 늦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1963년부터 이탈리아는 프랑스 포도주 등급 제도를 모방하여 시행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탈리아의 최대 명품으로 알려져 있는 포도주는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피렌체 토스카나 지방에서 생산하는 “키안티”(Chianti)와인이다. 키안티라는 이름은 700년대부터 사용되었는데 토스카나 키안티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을 뜻한다. 특히 토스카나 키안티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057년부터 지금까지 32대에 걸쳐 와인을 만들고 있는 리카솔리 가문으로 900년이라는 오랜 역사와 함께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다. 리카솔리 가문의 출신 베티노 리카솔리는 높은 도덕심과 청렴성으로 이탈리아 최초로 총리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는 총리직에서 사임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포도 재배와 와인을 생산하며 연구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키안티 와인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키안티 지역 내에서도 생산되는 키안티 클라시코, 이탈리아 최고급 와인등급(DOCG)과 그 외의 키안티 지역에서 생산되는 키안티이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차별화를 위해서 검은 수탉 그림을 사용하고 있다. 끼안티 클라시코는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와 동시대 유명한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다는 소문을 듣고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이 피렌체 토스카나 지역을 찾고 있다.

죽은 자를 살리는 스페인 리오하의 쉐리

“페니실린이 병을 고친다면, 쉐리는 죽은 자를 살린다.(If penicillin cures illnesses, sherry revives the dead.)” 알렉산더 플레밍(1881-1955)의 명언은 스페인 포도주 쉐리를 명문 반열에 올라 놓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스페인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와인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다. 포도밭의 면적은 160만ha로서 세계에서 가장 넓다. 스페인 제 1의 포도주 명산지로는 Rioja(리오하)지방이며, 특히 헤레스(Jerez)지방에서 생산되는 “셰리”(Sherry Wine)가 최고로 유명하다. 셰리 와인의 기원은 기원전 11세기의 페니키아인들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셰리 와인이 유럽 시장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영국의 마틴 경이 1587년에 에스파냐의 카디스를 습격하여 포도주 3,000드럼을 탈취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마틴은 강탈한 셰리 와인을 런던으로 수송하여 경매에 넘겼는데, 영국 궁정에서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고, 이때부터 영국에서 셰리 와인이 유행하게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활약했던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에서 셰리 와인에 대하여 자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는 “헨리 4세”와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 에서 폴스타프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셰리 와인을 격찬하고 있다. 폴스타프는 “셰리 와인이 흐리멍덩함을 없애주고 명민함을 더해준다고 호탕하게 주장한다. 그는 만약 헨리 4세가 총명하고 용감하다면, 그것은 원래 조상에게 그러한 특질을 물려받아서가 아니라, 헨리가 셰리 와인을 즐기는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유럽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문명화되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재배되어 왔다. 고대그리스와 로마는 와인 신을 신봉했고, 영토를 확장하는 곳마다 포도 재배를 장려했다. 로마제국 이후에는 교회가 포도주를 성찬예식에 사용하면서 더욱 포도주 문화는 가속화되었다. 15세기 이전까지 아메리카 대륙에는 단 한 알의 포도조차 없었지만 콜럼부스를 통해 포도재배와 그리고 와인 제조법이 유럽을 통해서 전달되었다. “골프장에 잔디가 마르면 와인 값이 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비가 적고 햇빛이 많을수록 골프장의 잔디는 마르겠지만 포도는 색깔이 짙고 당분이 많아져 좋다는 뜻이다. 포도주는 기온과 강우량 그리고 일조시간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기에 그 해의 일조량이 포도의 품질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그러므로 유럽의 농부들은 일조량에 따라 울기도 웃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알프스 남쪽 지중해 연안인 이태리, 프랑스 남부, 스페인은 포도주 문화권, 독일, 체코, 네덜란드 중부 유럽은 맥주 문화권,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은 위스키 문화권, 그리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 추운 지방은 보드카 문화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마르틴 루터는 자주 포도주를 마셨지만, 그의 삶에서 느낀 와인보다 더 필요한 것에 대해 이렇게 회고 했다. “와인은 강하다. 왕은 더 강하고, 여자는 더욱 더 강하다. 그러나 가장 강한 것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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