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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23회

신앙의 본질 훼손, 성화가 주범 역할

→ 로지에 반 데르 웨이덴 (Rogier van der Weyden, 1400년 – 1464년) 작품

막달라 마리아과 과연 그렇게 청순한 모습으로 금실로 수놓아진 고풍스런 유럽풍의 드레스를 입고 기도문을 읽었을까? … 오늘날 그 성화들은 미술사적으로는 가치가 있을지라도 신앙적으로 잘못된 이념을 심어 주었던 주범이었다.

신앙은 과거를 바르게 해석하는 것에 있다.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해석하여 시대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율법학자들이 고민하며 공부했다. 그들이 공부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모세율법이었다. 특히 에스라는 포로 생활에서부터 포로귀환 시대에 등장한 율법학자였다. 에스라의 개혁운동은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회복운동이었으며 훗날 역사는 에스라 말씀회복 운동의 공동체를 유대교라 부르게 된다. 성경을 잃었을 때 거기에 상응하는 고난을 받았던 것이 구약의 역사이다. 오늘날도 신앙은 다르지 않다. 성경을 잃어 버렸다면 그 신앙은 거짓일 뿐이며 왜곡된 종교일 뿐이다. 유럽의 신앙은 거의 천년 동안 성경 없는 종교생활을 해왔다. 영국의 존 위클리프에 의해 1382년에 처음으로 신구약 성경이 영어로 완간되었다.

당시 교회인 로만카톨릭은 성경을 라틴어로만 읽게 했으며, 개인이 성경을 소지하거나 읽고 해석하는 것을 법으로 금했다. 위클리프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주장과 함께 그가 번역한 영어 성경을 가르치자 이단으로 정죄하게 된다. 위틀리프는 당시 청빈했던 사제들을 모아서 성경을 전하고 가르치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집단을 롤라드(Lollard, 권서인-colporteur-)라 칭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게 하는 일,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위클리프 종교개혁 운동이었다. 교회는 이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사제 감찰단을 조직하여 성경을 가르치고 전하는 자인 롤라드를 색출하여 재판 없이 현장에서 처형을 시켰다. 1384년 롤라드의 수장인 위클리프가 사망한 이후에도 성경 보급이 활성화 되자 성경을 회수하며 불태우고 성경을 소유하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화형에 처해졌다. 그래서 롤라드들은 성경을 보급할 수 없어서 성경 자체를 암송하게 된다. 한 사람이 창세기를, 그 다음 사람은 출애굽기를 그렇게 해서 66명이 모이면 성경 한권이 완성되었다. 롤라드라는 말이 중얼 거린다는 의미인데 그들이 가는 곳 어디서든 성경을 암송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롤라드의 신앙부흥운동이 식어지질 않자 위클리프가 사망한지 44년이 지난 후에 그의 시체를 꺼내어 부관참시를 시키게 된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청교도 신앙운동이 확산되기 시작된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사제들일지라도 성경의 내용을 알지 못했던 시기에 가장 많은 성화들이 교회의 제단화로 그려졌다. 성도들은 성경을 통하여 성경 내용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 벽에 그려진 성화들을 통하여 성경을 이해하게 되는 시기가 중세 교회의 암흑기였다. 성화 자체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신성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성경의 사건은 당시의 시각으로 수천 년 사건을 재현해 낸 것이다. 오늘날 그 성화들은 미술사적으로는 가치가 있을지라도 신앙적으로 잘못된 이념을 심어 주었던 주범이었다. ‘로지에 반 데르 웨이덴’이 1438년경에 그려진 <독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The Magdalen Reading> 역시 유럽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이 불붙던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신앙의 본질이 성경에 있다고 개혁했던 사람들은 당시 성화를 불신하는 운동을 함께 벌였다. 그들이 할 수 만 있었다면 그 성화들을 모아다 불태우기 위해 힘썼을 것이다. 파괴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대로 신앙생활하기에 인위적으로 제작된 성화들이 신앙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많은 성화들이 불태워졌다.

막달라 마리아과 과연 그렇게 청순한 모습으로 금실로 수놓아진 고풍스런 유럽풍의 드레스를 입고 기도문을 읽었을까?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는 그림일 뿐이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그 모습이 막달라의 모습이라는 것을 사실로 믿었다. 이는 마치 작은 빵과 포도주가 사제가 기도할 때 그것이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뀌는 화체설을 믿은 것과 같았다. 그림의 왼쪽에 불은 도포 자락 끝에 보이는 발은 사도 요한의 발이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그 뒤를 따라는 자는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이라 설명한다. 막달라 마리아 옆에는 예수님께 부었던 향수병이 놓여 있다. 성경과 관련된 명화 앞에 선다는 것은 성경과 명화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단지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후세 사람들이 신앙적 열망으로 재해석하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지 그 그림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불신앙을 초래할 뿐이다.

신앙은 과거를 해석하는 것에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 할 때 새로운 신앙철학으로 백성들을 통솔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과거에 약속한 내용을 되새기는 것이었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것을 붙잡은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알려 준다 했을 때 제자들 역시 기대했을 것이다. 어떤 새로운 것을 주실까 기대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새로운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옛 계명을 그대로 주신 것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사랑하라는 것은 모세 시대부터 존재했던 계명인데 예수께서 새로운 계명이라 이름을 붙인 것은 그 사랑을 직접 본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대 문명에서 오히려 신앙의 길을 잃어버리기에 과거보다 좋은 환경일 뿐이다. 안락하고 편리하여 고난 없이 신앙생활을 원하는 시대이다 보니 더더욱 그러하다. 신앙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신종학문이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고 과거에 주어진 말씀을 현대 문명사회에서 지키는 것이다. 문명은 새로운 것을 향해 발전하는 것이지만 신앙은 새로운 것이 아닌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필자: 박심원 목사/ 런던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순회선교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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