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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산 마루턱에 오른 12월

[유크시론 194호]  이창배 발행인

저만치 2018년이 보이는 데

곳곳에 쌓여있는 이런저런 산적된 문젯거리는 개인을 불문하고, 사회든 국가든 온통 없는 분야가 없다. 그래서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러한 산을 넘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인가 보랴? 하물며 넘어가기도 버겁고, 하나를 넘는다 한들 멈출 것도 아니고 보면 더욱 그렇다.
쉬운 말로 앞이 보이질 않는다. 이대로 주저앉아 쉬고픈 나그네의 푸념이 배어나듯 왜 이다지도 끝이 보이질 않는가? 한숨이 서린다. 이렇게 2017년은 고갯마루 턱에 올라섰다. 저만치 2018년이 보이는 데까지 말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참으로 오랜만에 떠올려보는 아리랑 노랫가락이다. 이 황금 같은 연말에 웬 아리랑 타령인가? 그럴만한 궁금증도 생길 법하다. 하나 그렇다고 어떤 대단한 것도 없이 그냥 감성적인 표현이라면 족할 수 있겠다 싶다. 때가 때이니만큼.
‘시절이 하 수상하니’라는 시구가 있다. 조선 인조 때 문신‘김상헌’이 병자호란에 패한 치욕 속에 청나라에 끌려가는 절박한 상황에서 읊은 서정적 자아의 절규가 아니던가?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쟈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라는 시조에 나오는 귀절이다. 그는 다시 정든 땅 고국산천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먼 길을 떠나는 처지에서 ‘시절의 하 수상’함을 느꼈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이에게 주는 ‘시절의 하 수상’함은 아예 다시 돌아옴은 훌훌 먼지를 털어내듯 미련을 떨구는 그런 심정이 아닌가를 여실히 느끼게 된다.
독일 기상청 보고로는 백 년 만의 추위를 예상한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확연히 예년과는 달리 벌써 추위가 느껴진다. 날씨는 그렇다 치고 뉴스로 보면, 유럽의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밤거리를 아름답게 장식해놓는 시장을 떠올리게 되는데, 공공연히 IS는 테러하겠다고 공언했다하니 일상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조차 파괴하려는 극단적인 테러리즘 까지 엎친 데 덮치는 격이다.
그런가 하면 고국 땅에서는 어쩌면 인류 최대의 재앙이 될지도 모를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인 채 언제 어떻게 쏘아댈지 모르는 예측불허로 인해 미국의 예방적 선제타격이 언제 이뤄질 것인지 모두가 전쟁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곳곳에 쌓여있는 이런저런 산적된 문젯거리는 개인을 불문하고, 사회든 국가든 온통 없는 분야가 없다. 그래서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러한 산을 넘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인가 보랴? 하물며 넘어가기도 버겁고, 하나를 넘는다 한들 멈출 것도 아니고 보면 더욱 그렇다.
쉬운 말로 앞이 보이질 않는다. 이대로 주저앉아 쉬고픈 나그네의 푸념이 배어나듯 왜 이다지도 끝이 보이질 않는가? 한숨이 서린다. 이렇게 2017년은 고갯마루 턱에 올라섰다. 저만치 2018년이 보이는 데까지 말이다.

다윗이 울며 오른 올리브 산 마루턱
올리브 산의 고갯마루가 생각난다. 사무엘 하 15장 30절의 말씀에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고 했다.
왜 그리도 황급히 피난길에 올랐는지를 성경은 아주 단순명료하게 그 이유를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바로 다윗이 총애하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하기 위해서, 절치부심하고 4년간 백성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행했던 모든 수단과 방법이 비로소 때를 얻어 모반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세상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는 철저했고, 완벽하리만큼 시나리오를 잘 짜낸 방송 대본과 같이 한순간에 백성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을 만큼 지혜로운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모반이 틀림없이 성공할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일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압살롬의 편에 선 사람들은 이점을 간과했고 들떠서 성공을 확신했다. 곧, 권력을 탐했지만, 그들에겐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없었다.
그 반면에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에 대해 힘으로 대항하지 않고 순순히 도망치는 모습, 참 무기력한 왕의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던 단 하나의 이유는, 압살롬의 힘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성과 백성이 해를 입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죽을지언정 이것만은 견딜 수 없기에, 왕의 체통도 모두 던져버리고 울며, 맨발로 황급히 올리브 산을 넘어 광야로 피해갔다. 이것이 왕의 마음이었고, 그 마음이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결국, 이 사건의 결과는 다윗의 회복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에서 교훈은 바로 이스라엘의 왕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여 세운 자라야 한다. 세워진 왕은 백성들을 사랑과 긍휼로써 다스려야 한다. 즉 힘의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연약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왕의 역할인 것을 증명한 사건으로 중요성을 가진다.

새로운 시대적 교회 리더의 자격
Peter Drucker는 “조직의 규모가 배로 커질 때마다, 리더십의 절반은 쓸모없는 구식이 된다고 말하며, 그리고 그 절반을 대체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다윗이 겪었던 올리브 산 마루턱을 넘던 모습을 기억하는 새로운 시대적 교회의 리더가 가져야 할 자격은 어떠한 것일까? 그 중 주요한 몇 가지 아젠다를 옮겨본다.(출처: A Church for the 21st Century by Leith Anderson)
-새로운 시대적 리더는 그들의 문화에 맞추어져야 한다(attuned to their culture). 성경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우리의 문화와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 곧, 우리는 예수님처럼 성육신하는 사역을 하여야 한다.
-새로운 시대적 리더는 관계적이어야 한다(relational). 관계가 이전의 어떤 때보다 중요하다. 교회는 실제적이고, 가까이하기 쉬운 지도자(real and approachable leader)를 원한다. 곧, 관계 중심적이어야 한다. 교회나 공동체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알고, 들어주고, 반응하는 지도자에게 끌리는 것이 틀림없다.
-새로운 시대적 리더는 훌륭한 전달자(communicator)가 되어야 한다. 사회가 위협받고, 세계가 극적인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소요를 경험할 때, 우리는 자신의 비전을 전달할 수 있고,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윈스턴 쳐칠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시대적 리더는 기업가(entrepreneur)이어야 한다.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은 단순히 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성공하도록 하는 능력이다. 그들은 변화 속에서 기회를 보고, 그러한 기회들을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유익한 것으로 바꾸는 전략을 짤 줄 아는 사람이다.
-새로운 시대적 리더는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이다(risk taker). 위험을 피하고 기존상태를 보존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은 성공을 위해서 기꺼이 실패에 직면하는 사람이다.
이제 12월 한 달은 2018년을 향하는 올리브 산 마루턱에 오른 달이다. 한 번쯤 이 시점에서 우리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달의 말씀 ㅣ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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