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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을 떠나는 롯과 그의 딸들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25회

성화는 시대적 신앙을 반영한다…

→ 귀도 레니 Guido Reni (1575-1642, 이탈리아) 작품

그림은 시대를 읽게 하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특히 성경 내용을 주제로 한 성화는 시대적 신앙을 반영한 것이기에 교회사적 가치가 있게 된다. 그렇다고 성화 한 편에 성경의 내용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화는 중세 교회시대에 가장 많이 그려졌다. 교회 역사 중 가장 화려하게 만개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중세 가톨릭 시대에는 개인적으로 성경 읽는 것이 금지되었기에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교회 벽면에 그려놓았다. 성도들에게 성화는 곧 성경 이상의 권위를 가지게 된다. 그림 뿐 아니라 입체 형상의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모형들은 경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중세시대를 영적 암흑시대라 표현하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성경을 왜곡한 것에서 시작된다 할 수 있다. 교회 내부의 벽면은 모두 성경을 배경으로 한 성화로 장식되어졌다. 성화는 곧 성경 이상의 권위를 가지고 성상 숭배의 종교로 타락하기에 이른다. 중세 시대에 그려진 성화의 현실적 가격은 상상할 수 없는 가치일 것이다. 미술사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그림일 수 있으나 신앙적으로는 교회를 암울케 했던 모순된 그림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의 작품 <소돔을 떠나는 롯과 그의 딸들>은 경배의 대상이 아닌 성화여서 감동을 준다. 롯은 신앙의 사각지대에 살았던 인물이기에 경배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당연 그를 기억하는 것 역시 사각지대에 있기에 그를 쉽게 잊어버리게 된다. 두 사람이 길을 떠난다. 훗날 그 한사람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다른 한사람은 암몬과 모압 조상으로서 믿음의 사람들을 대적하는 존재가 된다.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요 그의 조카 롯의 역사다.

세상은 롯을 정직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롯을 표현 할 때는 언제나 정직한 롯이라 칭한다. 그러나 성경은 롯을 정직하다 말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에게 롯은 죽은 동생 하란을 대신하여 양육한 조카이면서 자녀와 같이 그의 신앙여정에 동행했던 동반자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없어 후계자 문제로 고민할 때 롯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없다면 당연 후계자 일 순위가 되어야 할 위치임에도 한 번도 후계자로 거론되지 않은 것은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영적인 문제가 있다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그의 이방 몸종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후계자(창15:2)로 세우려 했을 때에도 롯은 거론되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사라는 그의 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과 롯은 헤어져야 했다. 이유는 그들의 양들이 많아 졌기에 두 가문이 함께 생활할 수 없다는 표면적인 이유보다 영적인 다름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었다. 롯은 소돔 고모라 땅을 택했다. 그곳은 하나님의 동산 같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불모지 땅을 택했다.

하나님이 소돔 고모라 성을 멸하실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조카 롯을 구원해 주셨다.(창19:29)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다 구원받지 못하고 롯과 장성한 두 딸만 구원을 받게 된다. 롯은 멸망한 소돔성을 피해 피한 곳이 소알산이었다. 어떤 연유인지 롯은 그곳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했다.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굴에 거주하게 된다. 롯은 생각해야 했다. 소알에 머물기 두려웠다면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을 생각하고 그에게로 달려가야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롯은 그렇게 하지 않고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면서 결국 그는 아들이자 손자를 얻는 기이한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 딸들과 동침하여 모압과 암몬을 낳은 것이다. 이들 족속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족속이 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로에 사사건건 방해가 되는 악한 족속이 되었다.

귀도 레니의 소돔을 떠나는 롯과 그의 딸들은 산 페트로니오(San Petronio) 성당에 그려진 프레스코(fresco painting)다. 이 성당이 유명해 진 것은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가 지옥에서 고문당하는 장면을 담은 프레스코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프레스코는 석고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석고가 마르기 전에 그것이 굳기 전에 신속하게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한 번 그린 그림은 수정이 불가능하다. 그러하기에 화가의 손놀림이나 그림을 그리기 전 이미 화가의 생각에는 완성된 그림이 존재해야 했다. 귀도 레니의 생각 속에 존재했던 롯의 두 딸의 모습은 순전하고 순결한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직업여성으로 오해할 만한 창기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그렇게 그들의 윤곽을 잡은 것은 정상적인 신앙인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롯과 두 딸이 산속의 굴에 있을 때 그들은 사회로부터 단절이 된 것이 아니었다. 충분히 삼촌이면서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그들은 술을 구해 아버지를 취하게 했다. 술을 구했다는 것은 세상과 교류했다는 의미이고 그들의 행동은 믿음의 길에서 벗어난 당시 만행되었던 근친상간을 죄의식 없이 행했던 것이다. 그러니 귀도가 그려낸 롯의 두 딸은 직업여성인 창기의 모습으로 그려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성경은 신화가 아니라 실존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화가는 그 역사의 현장에 동화하여 작품을 담아내기 위해 해산의 고통이 있을 만큼 고민하며 묵상하여 핵심 관점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롯의 두 딸이 신앙의 길을 벗어난 세상과 더불어 살았던 모습을 그의 풍만하고 매혹적인 육체의 모습으로 담아냈다.

역사는 반복된다. 거룩한 역사가 반복되는가 하면 그러하지 못한 악의 역사도 반복된다. 좋은 것은 더 좋은 것으로 반복하여 빛의 열매를 거두지만 악한 역사 역시 더 악함으로 나타나 어둠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하나님은 상실한 마음 그대로를 놓아두신다.(롬1:28) 그래서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신다.(삼하22:27) 빛에 거하는 자는 더 밝은 빛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며, 어둠에 거하는 자는 더 짙은 어둠을 사모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길을 걷는 자는 더 큰 믿음이 주어질 것이지만 롯의 길을 걷는 자에게는 모압과 암몬의 길인 하나님의 거룩한 행보에 걸림돌이 되게 하신다. 소돔을 떠나는 롯과 그의 딸들을 담아낸 화가의 영성은 오늘 회개해야 할 우리들의 신앙 자화상일 수 있다.

박심원 목사
런던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순회선교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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